- 산티아고 가는 길 - 집에 돌아가는 길 -
오늘은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Santiago de Compostela) 가는 날이다. 아침 7시에 버스를 타는데 오후 1시에 산티아고에 도착하니 6시간 여정이다. 히혼(Gijon)은 아스투리아스 공국(Principado de Asturias) 자치공동체인데 산티아고는 갈리시아 자치공동체 소속이다. 당초 히혼은 산탄데르에서 산티아고까지 가는 길이 너무 멀어 거치는 도시였는데 뜻밖에 너무 잘 쉬고 간다.
산티아고는 이 번이 두 번째이다. 2001년 여름휴가 때 가족과 한께 이곳에 왔다. 그때 투숙했던 호텔이 복층이어서 아이들이 좋아했던 기억이 있다. 대성당에 보관되어 있는 야고보의 팔을 보았다.
아침 6시에 택시를 타고 정류장으로 이동한다. 새벽이라서 택시 걱정을 했는데 전날 밤 예약을 해 놓으니 정확한 시간에 도착한다. 새벽인데도 승객들이 모여든다. 영어 사용 여행객들이 많이 보인다. 이들과 6시간 동안 여행할 일이 걱정스럽다.
스페인 버스는 대부분 VOLVO나 MAN에서 제작한 버스로 외장은 그럴듯하게 여유가 있어 보이나 내부 좌석은 좁다. 다리가 뻐근해도 어떻게 해 볼 방법이 없다. 3시간 정도면 그러려니 하지만 6시간 동안 좁은 자리에 가만히 앉아있다고 생각해 보라.
그리고 스페인 고속도로에는 휴게소가 없기 때문에 중간에 쉬어가는 것이 없다. 장거리 행 버스는 대부분 버스 내부에 화장실이 있기 때문에 정류장과 정류장 사이를 줄기차게 달리기만 한다. 중간에 머무는 정류장에서도 탑승객이 내리고 새롭게 타는 일이 끝나면 바로 출발하니 화장실을 다녀올 수도 없다. 버스 내 화장실을 이용하라는 것이다.
여기에 지금까지 경험에 따르면 주변에 꼭 진상 탑승객들이 타서 여간 성가시다. 오늘은 조금 편했으면 생각했는데 결국 그게 아니었다. 이 버스는 산탄데르에서 출발하기 때문에 이미 승객이 타고 있다. 좌석을 찾아가니 앞에 탄 젊은 여성 두 명이 좌석의자를 뒤로 젖히고 앉아 있어서 우리가 착석하는데 공간의 제약을 받는다. 내가 좌석을 세워달라고 요청을 했는데도 시큰둥한 반응을 보이며 응하지 않는다. 결국 내가 큰 소리로 다시 요청한 뒤에야 매우 불만족하게 의자를 세운다. 이 것 때문인지 젊은 여성들이 여러 가지 신경 거슬리는 행동들을 산티아고에 도착할 때까지 계속한다. 여행을 길게 하다 보니 이런 맹랑한 경험도 한다.
아침을 먹지 않고 버스를 타기 때문에 가는 도중 요기를 하려고 어제 방울토마토를 구입했다. 아내가 방울토마토를 주어서 먹는다. 빈속에 먹으니 시원했으나 딱 거기까지 좋았고 체한 것인지 트림이 명치에 잠긴 것 같이 답답하다. 두통이 느껴지고 뒷머리가 무겁다. 이 증상을 이번 여행에서 자주 겪는다. 여행 중이 아니라면 산책을 하면서 이겨보겠지만 버스 안이라 어떻게 할 수 없다.
버스는 내가 예상하는 방향으로 가지 않는다. 나는 해안선을 타고 바로 코루냐로 간 뒤 산티아고로 진입할 것으로 생각했는데 일단 루고(Lugo)로 와서 코루냐(Coruna)로 올라간 뒤 산티아고로 다시 내려온다. 운행시간이 긴 이유를 알겠다. 덕분에 차창 밖으로 본 것이지만 루고와 코루냐 도시 구경은 잘했다.
오후 1시 조금 넘어서 산티아고 버스정류장에 내린다. 버스정류장과 기차역이 함께 있다. 버스와 기차 정류장이 도심에서 다소 외곽에 있다 보니 택시 잡기가 쉽지 않다. 다소의 수고 끝에 택시를 타니 5분도 되지 않아 호텔에 도착한다. 그러니까 호텔과 정류장은 걸어서 갈 수 있는 거리이다. 단 짐이 있으므로 걸어간다는 것은 어렵지만...
호텔에 체크인을 한다. 호텔은 도심과 다소 거리가 있는 것을 빼고는 편하고 시설이 만족스럽다. 호텔 방 창에서 보는 아래의 풍경도 나름대로 시원하다. 그러나 내 몸 상태가 썩 개운하지가 못하다. 소화불량 증세가 계속되고 있어 머리와 몸이 무겁다. 아내에게 오늘은 조금 쉬어야겠다고 얘기한다.
그런데 지금까지 아무것도 먹지 않았으므로 무엇을 조금 먹어야 한다. 다행히 호텔의 식당이 열려있어서 밖에 나가지 않고 식사를 할 수 있었다. 식사는 매우 만족스럽다. 아내가 잘 먹었다. 나는 먹는 흉내만 냈다. 그리고 방으로 올라가 잠들었다.
오늘로 집을 나선 지 67일 째이고 마드리드를 떠난 지는 37일 째이다. 여행도 길어지니 조금 지친다. 스페인 살이 3개월 계획을 사전에 모두 자세하게 세울 수도 없는 것이었지만 일단 출국해서 여행 동선을 만들고 예약하고 움직이고 하는 것은 결코 만만한 일은 아니었다. 하루 여행 일정을 생각하는 것도 사실상 쉽지 않다. 내가 현지 언어에 불편함이 없고 경험도 있어서 큰 어려움은 없었다고 생각하지만 여행이 길어지니 나도 힘이 든다. 애플 걷기 앱에 기록된 여행 기간 중 일 평균 걸음 수만 해도 12,000보가 넘는다.
그래서 속으로 산티아고 가는 길이 집에 가는 길이라고 생각했나 보다. 산티아고 여행을 변곡점으로 이제 남하해서 마드리드로 향하니 나는 ‘아~여기서 이제 집으로 가는구나’하는 생각이 들 수밖에 없다. 집을 떠난 지 67일 인데도 한식을 먹은 기억은 마드리드 1번 그라나다 2번밖에 없다. 아내도 집에 가면 김치찌개를 해 먹겠단다.
가족도 그립다. 특히 하루가 다르게 무럭무럭 자라고 있는 손자가 보고 싶다. 아내와 나의 여행 중 대화의 많은 부분은 며느리가 보내주는 손자 동영상을 보고 느낀 감상들이다. 요즘은 손자가 생각이 많아져서인지 의사 표현 능력이 좋아졌다.
며느리는 손자를 데리고 우리 여행 기간 중 스페인에 오고 싶어 했지만 우리가 실제 여행을 하다 보니 쉽지 않은 일이었다. 우선 숙박과 이동을 준비하고 실행하는 일이 만만하지 않다. 가지고 다니는 캐리어 이동도 더욱 그렇다. 더구나 혹시라도 손자가 아프면 큰일이 되어 버린다. 우리만 해도 체력이 과거와는 다르다. 크고 작게 몸 컨디션에 기복을 느끼며 다니고 있다. 아쉽기는 하다.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Santiago de Compostela), 성 야고보의 도시. 산티아고 가는 길(Camino de Santiago)의 종착지 - 나는 이제 집으로 돌아가는 길목에 서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