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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기현서 Jun 06. 2024

스페인 3개월 살이(69)

- 아내가 좋아한 도시, 비고를 간다 -

 오늘은 비고(Vigo)를 간다. 비고는 산티아고 남쪽에 있는 항구 도시이다. 2001년 여름휴가 때 산티아고에서 비고를 거쳐 포르투갈로 들어갔다. 아마 산티아고에서 오전에 출발해 점심때 비고에 들어간 것 같다. 점심을 항구 부두에 있었던 해산물 식당에서 먹었는데 아내가 아주 기억에 남을 만큼 맛있게 잘 먹었다. 해산물 찜이었는데 양도 많고 따끈해서 아주 원 없이 먹었던지 스페인의 여러 도시 중 헷갈리지 않고 잘 아는 도시이다. ‘해산물’하고 말하면 ‘비고’라고 대답한다.


 그러니까 산티아고에서 비고에 가는 것은 순전히 아내의 음식에 대한 추억 때문이다. 그 장소에서 식당을 찾을 가능성이 없지만 한 번 가서 보자는 것이다. 그러니까 23년 전의 일이다.


 2001년 여름 비고는 승용차로 갔다. 그래서 비고에 들어서서 길목에 있는 항구에서 식사를 한 뒤 시내를 가로질러 포르투갈로 내려갔을 것이다. 그래서 시내에 대한 구체적인 기억이 없다. 특히 운전자는 주위 풍경을 자세하게 보기가 어렵다. 그저 특색이 없는 중소 항구도시로만 기억하고 있을 뿐이었다.


 기차역은 호텔에서 걸어서 갈 수 있는 거리이다. 캐리어를 끌고 가기에는 언덕길이 있어 어렵지만 그렇지 않다면 산책 삼아 15분 정도 걸어가면 된다. 아침 9시 30분 기차라서 8시 조금 넘어 천천히 산티아고 역으로 향한다. 산티아고 역도 도시 전체 분위기와 어울린다. 연륜이 느껴진다. 크지 않은 역사 내부는 여행객들과 인근지역에서 열차로 출근하는 사람들로 분주하다. 그러나 역사 내부는 열심히 오가며 청소하는 사람들의 수고로 대강 청결하다.



 비고 역에 도착하는데 소요되는 시간은 54분이다. 역에 도착하여 역사의 규모와 청결함에 깜짝 놀란다. 아니 중소 항구도시에 왜 이렇게 큰 역사가 있을까? 일단 나오면서 보니 대형 쇼핑몰과 함께 있다. 그런데 쇼핑몰의 규모도 너무 크고 잘 지어놓았다. 



 항구 도시의 구조가 그렇듯이 역사가 들어있는 쇼핑몰은 높은 지역에 있고 항구로 가는 길은 계속 내리막길이다. 내가 지도앱을 켜니 아내가 끄라고 한다. 항구는 아래쪽에 있을 거니 일단 내려가면 된다고 한다. 과연 항구가 나온다. 항구로 내려가면서 보는 도시는 의외로 청결하고 정돈이 되어있다. 



 항구에 도착하여 주변을 보니 과거의 기억에 해당되는 풍경을 찾아볼 수 없다. 그런데 우리가 있는 곳은 항구의 한쪽 끝에 있는 것 같다. 아내가 다른 쪽을 향해 걸어가 보자고 한다. 그런대로 산책길도 만들어져 있고 가는 도중 도시 풍경도 볼 겸 천천히 걸어간다. 


 다른 한쪽 끝에 도착한다. 카지노가 운영되고 있는 큰 쇼핑몰이 들어서 있고 그 주변에도 지하 주차장 등 여러 시설물들이 들어서 있다. 짐작으로는 저 쇼핑몰 자리에 식당들이 있지 않았나 짐작해 보지만 알 수가 없다. 그때 기억으로는 식사 후에 길을 건너 한 토산품가계에서 소라조개껍질로 만든 기념품을 샀다. 아마 지금도 집에 있을 것이다. 기억은 그것으로 끝나있다. 



 해산물 찜을 점심으로 먹자고 비고에 온 것이다. 지도앱에서 찾아보니 현재 있는 곳 뒤쪽 2차 골목에 해산물 식당들이 있는 것으로 나온다. 그곳으로 갔더니 과연 몇 개의 식당들이 골목에 밀집해 있다. 통상적으로 이런 식당들이 모여 있는 곳이면 믿을 만하다는 신념으로 한 식당을 골라 음식을 주문했는데 기대 수준과 크게 다르다. 물릴 수도 없고 속았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기분이 찝찝하다. 스페인에서 이런 일도 있다. 아내가 매우 불쾌하게 생각한다. 그런데 어떻게 할 것인가? 



 식사 후에 커피는 카지노가 들어가 있는 쇼핑몰의 테라스 카페에서 마시면서 휴식을 취한다. 그런데 쇼핑몰을 나와서 길 건널목을 건너니 눈앞에 토산품 가계가 보인다. 과거 머릿속에 남아있던 유리창 전시진열대가 보인다. ‘아, 이 가게다’라는 느낌이 강렬하게 들어온다. 그리고 주변을 다시 살펴보니 23년 전의 풍경과 겹쳐진다. 그러니까 쇼핑몰이 있는 그 자리에 과거 우리가 해산물 찜을 먹었던 식당들이 있었다. 그리고 그 주변은 대부분 공터이었는데 이렇게 개발이 된 것이다. 그래도 과거 추억의 장소를 찾았다. 해산물 찜은 실망스러운 수준이었지만 그래도 이 장소를 찾았으니 기분은 개운하다. 



아내가 기차역 쇼핑몰로 가서 그곳에서 시간을 보내자고 한다. 그곳까지 가는 것만 해도 오르막길이니까 넉넉잡으면 한 시간 정도 걸린다며...  기차역 쇼핑몰에서 충분한 휴식을 취했다.



 오후 4시 반 차를 타고 돌아와서 휴식을 취한 뒤 8시 넘어 호텔 식당에서 저녁을 먹는다. 스페인에서는 호텔 식당에 폭리가 없다. 시내의 식당과 비교해 차이가 없다. 특히 이 번 호텔의 식당은 음식을 잘한다. 아내는 샐러드와 클럽 샌드위치를 시켜 잘 먹었다. 만족도가 매우 높다.



 내일은 이곳을 떠나 레온(Leon)으로 간다. 아침 8시 14분 기차이다. 5시간 30분이 소요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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