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 40년 되던 해 2019년 늦가을
12. 드라치(Drach) 동굴을 가다(11.13)
드라치 동굴 가는 길
마요르카 오기 전에는 비수기의 조그만 섬에서 조용히 산책이나 하며 지낼 생각이었다. 그런데 호텔 체크인할 때 호텔 매니저가 드라치 동굴을 꼭 가보라고 한다. 지도를 보니 섬 동쪽 해안 항구 포르토 크리스티(Porto Cristi)에 있다.
독일 여행사를 접촉했다. 인원이 차서 신청을 받을 수 없다고 한다. 대중교통을 이용해 가기로 했다. 교통편을 봤더니 포르토 크리스티까지 가는 기차가 없다. 약 20킬로 전방의 마나코르(Manacor)가 종착역이다. 포르토 크리스티 가는 버스는 2~3시간 만에 한 대씩 있어 시간을 맞춰 보았다. 그런데 버스 왕복 시간과 관광 시간을 맞추는데 어려움이 있다. 그래서 기차로 일단 마나코르까지 가고 그곳에서 포르토 크리스티 가는 방법을 찾아보기로 했다.
팔마 시내 스페인 광장 지하에 인테르모달(Intermodal)이 있다. 기차, 버스, 지하철 종합터미널이다. 7시에 호텔에서 나와 인테르모달까지 도보로 이동했다. 마나코르 왕복표를 구입하고 출발했다. 기차는 매우 깨끗하다.
마나코르에 도착하니 가랑비가 날린다. 호텔 나올 때 우산을 가져간다고 챙겨놓고 담는 것을 잊어버렸다. 비 맞아도 싸지. 이른 시간이라 가게들도 열지 않아 우산을 구입할 곳이 없다.
기차역에서 현지인에게 택시 콜 번호를 좀 알려 달라고 부탁했다. 그러자 매우 반가운 표정이다. 자기가 바로 택시 운전사란다. 과연 그의 차가 역내 주차장에 있다. 택시가 드라치 동굴 매표소 앞까지 들어간다. 18 유로 지불했다.
첫 입장시간까지 1시간가량 남아 매표소에 있는 크고 깨끗한 카페테리아에서 아침 식사를 했다. 아내는 엑스프레소에 크라상을 나는 카페 콘 레체에 바게테 콘 로모 이 케소(Baguete con Lomo y Queso)를 먹었다.
드라치 동굴 어둠 속의 음악 콘서트
위키피디아에 따르면 드라치 동굴의 존재는 13세기에 이미 알려졌다. 그리고 드라치 동굴 안내 팸플릿은 드라치 동굴이 1896년에 마지막으로 탐사된 것으로 기술하고 있다.
동굴 관광은 1시간 정도 소요된다. 40여 명이 한 조가 되어 가이드를 따라가며 설명을 듣는다. 플래시를 사용한 사진 촬영은 금지된다.
우선 동굴의 규모가 엄청나게 크다. 조명을 받은 석순의 규모나 범위도 매우 다양하고 아름답다. 일행을 따라가며 핸드폰 카메라로 정신없이 사진을 찍었다. 빛이 부족해 사진 해상도가 아무래도 떨어질 것이다.
동굴 길은 어둡고 습기가 많아 다소 미끄럽다. 아내는 내가 사진 찍다가 넘어질까 봐 자꾸 걱정한다. 사진 그만 찍고 눈과 마음으로 보라고 한다. 잔소리가 귀찮아 내가 알아서 천천히 따라갈 테니 당신은 나를 잊고 먼저 가라고 했다.
언제 이 곳에 다시 올 것인가. 사진에 담아 가야지. 아이폰 11 프로에 울트라 와이드 앵글과 야간 촬영 기능이 있어 좁고 어두운 곳에서 구도를 잡는데 문제가 없다. 편리하다.
30분쯤 동굴을 통과하자 큰 지하 호수가 나왔다. 호수 가 바위 언덕에 100여 명이 앉을 수 있는 관람석이 있다. 호텔에 돌아와 자료를 검색해 보니 호수 이름은 마르텔(Martel)이다. 크기가 폭 38미터 길이 177미터이다. 약간 타원형으로 굽어 있다.
새파란 조명이 호수 중앙을 멀리서 비치는 것 말고는 칠흑같이 어둡다. 조금 있으니 불빛 등으로 장식된 배가 조용히 노를 저어 호수 오른쪽 끝에서 나온다. 피아노와 관현악 연주자들이 배 안에서 조명을 받으며 연주한다. 그 뒤를 두 개의 배가 역시 불빛 등으로 아름답게 배를 조명한 체 조용히 노를 저어 따라 나온다. 곡명은 기억하지 못하지만 우리 귀에 익숙한 조용하면서도 슬픈 곡이다.
숨 막히게 적막한 어둠 속에서 불빛 등으로 환하게 조명한 배가 우리 정면을 멀리 지나 왼쪽 끝으로 사라진다. 갑자기 눈물이 핑 돈다. 사람이 살다가 죽음의 강을 건너가는 것이 저런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갑자기 든 것이다. 지금도 마음이 저리다. 촬영을 금지해 촬영할 수 없었다. 매우 아쉽다.
콘서트가 끝나고 가이드의 안내를 받아 배를 타고 지하 호수를 돌았다. 참 신기하다. 땅속에 이렇게 큰 호수가 있다니. 비현실적인 풍경들이다. 조명 효과도 있을 것이다.
호수를 끝으로 보고 다시 지상으로 올라왔다. 아침을 먹었던 카페테리아가 바로 눈 앞에 있다. 뜻밖의 좋은 경험이었고 기억에 남았다. 아침 일찍부터 고생한 보람이 있다.
House of Majorica
드라치 동굴을 뒤로하고 포르토 크리스티 부두로 내려가는 중이다. 딱 그 길목 오른쪽에 산뜻하게 지어진 마호리카 진주 전시장이 눈에 들어온다. 나는 관광가이드 자료를 봐서 이미 알고 있었지만 이렇게 숨길 수 없고 피할 수 없는 자리에 떡 하니 있을 줄은 몰랐다.
눈썰미 매서운 아내가 이것을 놓칠 리 없다. 같이 들어가 보니 마호리카 진주 제조공정을 실제로 보여 준다. 그리고 상품 전시장에 들려 본인의 취향에 맞는 진주 장신구를 구입하는 플랜이다. 구매를 강요하는 것은 전혀 없다. 종업원들은 모두 자기 일을 하고 있다. 문의나 구매 의사를 표시하면 그때 와서 응대한다. 관심이 없으면 그냥 보고 나오면 된다.
그런데 사람 특히 여자 그리고 나이는 들었지만 아내의 마음이 어디 그러한가? 갑자기 저 것 딸이 차면 좋겠다고 얘기한다. 그리고 한국에서 사려고 하면 너무 비싸다고. 결과는 정해졌다. 내가 할 일은 신용카드를 꺼내 지불하고 면세 서류를 챙기는 것이다.
마호리카 진주는 양식 진주와 다르다. 그런데 자연산(natural)이라고 한다. 과거에도 그것이 궁금했다. 그런데 제조공정을 보니 이해된다.
장인이 대강 1센티 정도 지름의 흰 색깔 봉을 가스불 총으로 가열하여 무르게 한 후 젓가락 길이의 가는 철봉 끝으로 떼어낸다. 그리고 가는 철봉 끝에 달린 재료를 식혀가며 돌린다. 그렇게 크기와 형태 별로 다르게 진주 모듈을 만든다.
이 것을 바다조개 - 아마도 우리나라 자개농 만드는 조개로 추정 - 표면에서 채취한 물질을 녹인 액체에 최소 20번 담근다. 이 과정을 지나면 자개가 전혀 벗겨지지 않는다고 한다. 자개 액체 만드는 노하우는 코카콜라 진액 제조 비밀과 같이 절대 영업 비밀이다.
흰 색깔 봉은 메탈릭 크리스털(Metalllic Crystal)이라는 광물인데 독일 광산에서 채취해 제조한다고 하며 그 혼합 요소와 비율도 역시 절대 노출이 되지 않는다. 재료가 모두 자연산(natural)이니 자연산 진주(Natural Pearl)라고 부른다는 것이다.
그건 그렇고 마호리카 전시장에서 내려다 보는 포르토 크리스티 부두 풍경은 한 폭의 그림이다.
포르토 크리스티(Porto Cristi) 부두 한산한 식당에서 점심
점심때가 넘었다. 아침을 허술하게 먹어 아내가 점심에 의욕을 보이기 시작한다. 식당을 찾기 위해 부두까지 걸어 내려오는데 적막할 정도로 사람이 보이지 않는다.
가랑비는 계속 날리고. 비를 좋아하는 아내이니 우산 없는 것 빼고 불평은 하지 않는다. 다만 숱이 줄어가고 있는 머리에 비를 피하려 비닐봉지 하나 구해 머리에 덮는다. 머리를 보호하기 위해서는 패션이고 뭐고 없다.
부두 옆 배 형태로 생긴 아파트 건물 1층에 식당이 보인다. 깨끗하고 널찍한 식당인데 우리 밖에 없다. 완전히 비수기다. 그런데 한여름에는 관광객으로 북적거릴 것이다. 부두에 정박한 레저용 보트를 보면 안다.
아내는 전식으로 오징어 튀김 나는 소파 데 페스카도(Sopa de Pescado) 본식은 아내는 소고기 스테이크 나는 조개 스파게티를 먹었다. 아내는 우리나라 오징어 값이 비싸서 먹기 힘들다며 오징어 튀김에 레몬을 듬뿍 뿌려 먹는다. 본인이 좋아하는 소고기 스테이크도 푸짐하다. 무척 만족하고 행복하게 먹는다. 맥주도 한잔 비우고 자기가 한 잔 더 시켜 나에게 반 따라주고 나머지는 자기가 마신다.
아내는 식사 중 술을 잘 마시지 않는다. 그런데 오늘은 기분이 좋은 모양이다. 또 저녁은 먹지 않겠다고 한다. 비만해지면 안 되니까 저녁에 혹시라도 자기를 먹을 것으로 유혹하지 마라고 한다.
버스 타고 기차 타고 다시 팔마로
점심 먹고 나니 오후 3시가 넘었다. 팔마로 돌아가기로 했다. 기차를 타려면 다시 마나코르로 가야 한다. 식당 종업원에게 물어보니 마나코르 가는 버스가 마을 광장 정류장에 있다고 한다. 광장으로 걸어 나왔다. 과연 버스 정류장이 있다.
마나코르 가는 버스가 1시간당 한 대 꼴이다. 25분 남았다. 가랑비는 계속 흩날린다. 바람도 부는데 정류장에 서 있으니 으슬으슬 춥다. 피할 곳이 없다. 그냥 서 있는 수밖에. 아내는 정류장에서 백팩을 정리하고 있다. 아마 조금 전 구입한 마호리카 진주를 백팩에 잘 넣기 위해 정리하고 있을 것이다.
여기서는 버스 요금을 운전사에게 현금으로 지불한다. 승차 비용은 1인당 1유로 95센트다. 그냥 2 유로로 하지. 참 스페인 사람 들이다. 주머니에 넣어둔 동전이 한 주먹 잡혀서 동전을 없애려 세어 봤더니 딱 3유로 80센트다. 10센트가 부족하다. 우리 인생이 그렇다. 지갑에서 10유로 지폐를 꺼내 지불했다.
마나코르에 내려 다시 기차를 타고 팔마의 인테르 모달에 도착했다. 이제 알 만하고 익숙하니 떠날 때다. 내일 오후에는 발렌시아로 간다. 아내는 피곤하다며 씻고 일찍 자버려 저녁을 먹지 않았다. 그러나 내일 아침은 매우 충실하게 먹을 것이다.
아내의 음식에 대한 호기심과 나의 변명
여행 중에도 아내는 텔레비전 음식 프로그램을 본다. 음식 프로그램을 볼 때 아내는 영어, 스페인어, 독일어, 중국어 등 무슨 언어로 얘기하든 상관없이 다 잘 알아듣는다. 그리고 대강 정확하다. 그것이 나에게 매우 신기하다.
어제도 독일 방송 음식 프로그램을 보고 있었다. '독일 말인데 알아들어?' 하고 말했더니 '아 독일 말이야?' 한다. 그런데 알아듣는다.
아내는 음식 재료에 대한 이해가 많다. 식당에서 음식을 먹더라도 시각과 후각 그리고 혀의 촉각을 통해 들어간 재료를 대강 분석해 낸다. 음식에 대한 지식과 관심 그리고 호기심이 많다.
여행했던 도시들을 먹은 음식으로 기억하고 추억한다. 내가 아내를 위한 이번 여행에서 아내의 먹거리에 정성을 쏟아 주는 이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