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와 스페인 가을 여행(14)

결혼 40년 되던 해 2019년 늦가을

by 기현서

11. 소에르(Sollér) 가는 길(11.12)


독일 관광객과 단체여행 시작


당초 마요르카 여행 계획은 차를 빌려 돌아다니는 것이었다. 그러나 대부분 수동 기아 차이고 내비게이션이 없거나 구형이다. 그리고 주차가 만만하지 않았다. 그래서 현지 여행사 사이트에 들어가 1일 여행을 신청해 소에르(Sollér)를 간다. 예쁜 항구라고 한다.


아침 9시 20분 대성당 가까운 길 한 정류장에서 관광버스를 타니 우리 빼고 다 독일 사람들이다. 안내도 독일어 먼저 그리고 영어로 한다. 독일인이 운영하는 현지 여행사 사이트를 접촉했던 모양이다. 사이트가 영어로 운영되니 내가 알 수 없다. 그러나 문제 될 것도 없다. 버스는 출발했다.


만나는 장소에서 본 대성당과 바닷가 일출은 상쾌하고 아름다웠다.


소에르를 가는 길은 팔마에서 버스나 트램 기차를 타면 간단하다. 이 경우 잘 닦여진 고속도로를 타면 1 시간 정도 소요된다. 그러나 이번 여정 설명을 들어보니 그렇게 간단하게 가는 길이 아니다. 가이드는 팔마에서 출발해 소도시 잉카 - 육 수도원 - 사 칼로브라 - 소에르 항구 - 소에르 구시가 - 팔마의 여정으로 8시간 소요되며 가는 길도 트라문타나 산맥(Sierra de Tramuntana)의 산악도로라고 한다. 마요르카 섬에 산맥이 있다는 것을 처음 알았다.


캠퍼 신발의 고향 잉카(Inca)


캠퍼 신발은 1975년 마요르카 잉카에서 시작해 현재 40여 개국에서 400여 개 매장을 운영하고 있는 국제적인 신발 브랜드로 성장했다. 안토니오 플룩사(Antonio Fluxa)라는 구두 장인이 설립했다고 한다. 우리나라에도 매장이 있다. 일상적으로 신는 구두로 매우 질기고 편한 신발이다. 그러나 가격이 만만치 않다.


잉카는 머물지 않고 시내를 통과했다. 높은 건물이 보이지 않는 조촐한 스페인 시골 도시였다. 그런데 도시 이름이 왜 잉카 일까? 16세기 초 프란시스코 피사로(Francisco Pizarro)가 멸망시킨 남미의 잉카 제국과 이름이 같다. 무슨 연관이 있으려나... 나중에 알아 볼 일이다.


육(Lluc) 수도원


육 수도원은 DK 아이 위트니스 여행 가이드 북에도 소개되어 있다. 트라문타나 산맥 가운데 위치해 있다. 그래서인지 가는 길이 심상치가 않다. 바위로 이루어진 험준한 산길을 따라간다. 우리나라 산 풍경과는 사뭇 다르다. 바위로 덮여 있는 산세가 아주 거칠다. 길은 포장되어 있지만 승용차 두대가 겨우 비켜 갈 넓이로 버스가 가면 반대편에서 오는 차는 적당한 곳에 비켜 있다가 가야 한다. 아래는 깊은 계곡이다. 나같이 고소공포증이 약간이라도 있는 사람은 차 운전하기가 힘든 길이다.


수도원은 생각보다 크다. 13세기 한 목동이 검은 피부의 성모 마리아를 봤다는 곳에 지어진 것이라고 한다. 적막할 정도로 조용하고 잘 정돈되어 있다. 느낌이 그런지 주변의 큰 나무들도 정숙하다. 지금은 포장 도로가 만들어져 차로 올 수 있지만 과거에는 이 높은 곳까지 오는 것이 보통 일이 아니었을 것이다.


수도원이라 관광객도 가급적 말소리를 줄이고 조용히 돌아본다.


관광객을 위한 카페테리아와 기념품 가게도 있다. 카페테리아에서 엑스프레소에 호두를 갈아 넣은 비즈코초를 먹었다. 맛이 매우 담백하다. 우리나라로 치면 절 음식이다. 카페테리아에서 본 창 밖의 꽃이 유난히 선명하고 아름답다.


하얀 바위의 트라문타나(Tramuntana) 산맥


잉카를 지나 육 수도원 그리고 이어 사 칼로브라를 거쳐 소에르 가는 길은 계속 가파른 산악 도로다. 하얀 바위가 많이 보이는 높은 산 사이로 길게 뻗은 계곡의 구불구불한 도로를 타고 우리를 태운 버스가 가고 있다. 커브 길에서는 매우 느리게 조심하며 간다. 유리창 너머로 아래를 내려보니 아찔하다.


텔레비전 프로그램에서 종종 보는 실크로드의 위험한 산악 도로가 여기에도 있다. 다만 길이 포장되고 잘 다듬어 있지만 좁은 산악 도로인 것은 같다.


풍경은 절경이다. 그러나 흔들리는 차 안에서 사진을 찍기 때문에 그 분위기를 제대로 표현할 수 없다. 눈으로 보고 마음에 담아둘 수밖에 없다. 섬에 이런 산악이 있다니 신기하다. 풍경이 크다. 마음이 시원하다.


숨 막히는 사 칼로브라 만의 비경


산악 도로는 바다를 끼고 달리다가 조그만 만에 도착한다. 사 칼로브라(Sa Calobra) 마을이다. DK 아이위트니스 가이드 북은 숨겨진 아름다운 만으로 소개하고 있다. 비수기라 관광객이 많지 않다. 조용하다.


푸른 바다와 구름 그리고 그 옆에 치솟은 산과 조그만 섬 거기에 하얗게 부서지며 밀려오는 파도 등에 갑자기 눈이 확 트인다. 여기에 청량한 햇살과 흰 구름이 어우러져 아름다운 풍경을 연출한다. 비경이다.


관광비용이 조금 세다고 생각했는데 트라문타나 산악 풍경과 이곳의 비경을 보니 이제 이해가 된다. 가성비가 높다. 두어 시간 정도 점심도 먹고 주위 풍경을 바라보며 행복감을 느낀다. 풍경이 주는 마음의 위안이다.


아담하고 예쁜 소에르 항


DK 아이위트니스 가이드 북은 소에르를 예쁜 항구 마을로 묘사하고 있다. 우리가 먼저 도착한 곳은 부두였다. 많은 레저 보트가 정박해 있다. 부두를 감싸고 있는 언덕에 지어진 집들이 군더더기 없이 한 폭의 그림이다. 햇살과 공기가 청량하다. 상쾌한 마음으로 아내와 산책한다.


트램을 타고 소에르 구시가지로


소에르의 관광 명물은 트램이다. 이런 종류의 트램을 스위스 어느 소도시와 융프라우에서 타 보았다. 그러나 이 트램은 더 고색창연하다. 아마 소에르 항구와 구시가를 연결해주는 교통수단이었던 것 같은데 지금은 관광객을 태우고 다닌다. 20분 정도 끼익 끼익 거리는 소리와 함께 느리게 흔들리며 소에르 구시가 까지 간다. 체격도 큰 독일 관광객들이 좁은 의자에 붙어 앉아 즐거워한다.


소에르 구시가는 여타 스페인 소도시 풍경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광장이 있고 그곳에 성당이 있다. 시내는 어느덧 넘어가는 석양의 황갈색 햇살을 받아 음영이 명확한 가을 풍경을 보여주고 있다. 스페인 소도시의 고즈넉한 풍경이 여행자의 마음에 평안을 선물한다.


아내와 소에르 기차역 부근에 있는 조촐한 카페에 들어갔다. 아내는 엑스프레소 나는 카페 콘 레체를 주문했다. 종업원에게 '따끈하게 좀 해줘(Bien caliente, Por favor)' 하고 말했더니 말없이 돌아서서 미소 짓는다.


시골 마을에서 동양인이 스페인어로 주문한 뒤 덧붙여 조건을 다니 신기했던 모양이다. 커피는 정말 알맞게 따끈했다.


다시 팔마


버스를 이용해 팔마로 돌아가는 것으로 생각했다. 그래서 소에르 기차역에서 트램을 탈 때 다시 항구까지 가는 것이겠지 생각했다. 그런데 길이 다르다. 캄캄한 터널을 계속 통과하고 있다. 의아해서 곁의 승객에게 물어봤더니 팔마 가고 있는 트램이라고 한다. 단, 이 트램은 팔마 시내에는 들어가지 못하고 2 킬로미터 전방 외곽 기차역까지 간다고 설명해준다. 그러고 보니 탈 때는 인식하지 못했지만 처음에 타고 왔던 고색창연한 트램이 아니다. 40여 분 흔들리며 소와 양 그리고 염소가 노닐고 올리브 나무가 넓게 드문 드문 심어져 있는 평화스러운 시골 들판 풍경을 보며 별 일 없이 종점에 도착했다. 처음 타고 왔던 관광버스가 대기하고 있다. 다시 팔마 대성당 주변 출발지점으로 돌아왔다. 어두워졌다.


나중에 소에르 지도를 보니 팔마를 가기 위해 구시가에서 항구로 돌아올 필요가 없었다.


구시가지에서 먹은 부르고스 모르시야(Morcilla)


이제 아내의 식욕을 채워줘야 한다. 버스에서 내린 후 좀 걷다 보니 맥도널드 햄버거가 있다. '오늘 저녁은 맥도널드 햄버거로 때울까?' 하고 말했더니 아내는 대답을 안 한다. 생각이 따로 있다는 뜻이다. 그러더니 '맥도널드는 서울에도 있으니 여행 나온 뒤에는 생각이 안 나더라' 라고 말한다.


'어디 가서 뭘 먹이지?' 갑자기 생각이 복잡해진다. 아내를 잘 먹이지 못하면 그녀의 짜증은 다른 곳에서 폭발한다. 엉뚱한 트집을 잡는다. 한두 번 해본 경험이 아니다.


호텔을 찾아가는 길목에서 그런대로 분위기가 좋은 바 겸 식당을 찾아 들어갔다.


아내는 믹스드 샐러드와 달군 돌 판에 구워 먹는 쇠고기 스테이크를 주문했다. 나는 입맛이 별로이고 피곤하기도 해서 간단히 먹기로 했다. 한국에서 종종 생각났던 부르고스 모르시야 타파스를 주문했다. 모르시야는 우리 음식 중 순대인데 만드는 방식이 같다. 단 내용물이 조금 다르다. 부르고스에서 시작된 음식이라고 해서 부르고스란 수식어가 붙는다. 맥주와 곁들여 먹으니 요기도 되고 매우 맛있다.


아내는 샐러드가 싱싱하고 고기도 맛있다고 한다. 거기에 자기가 좋아하는 소스를 묻혀 익힌 새우를 베이컨으로 감싸 만든 타파스 까지 주문해 주었으니 먹는 입과 표정이 아이들 같이 오지게 만족한다. 맥주도 한 잔 했으니 배가 찾으리라.


내일 아침은 안 먹겠다고 한다. 알았어하고 대답했지만 그건 내일 아침 가봐야 알 일이다. 내 생각에는 자기 다짐을 통해 오늘 저녁의 과식을 합리화하는 것일 것이다.


마요르카에서 하루가 이렇게 지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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