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와 스페인 가을 여행(16)

결혼 40년 되던 해 2019년 늦가을

by 기현서

13. 팔마 마요르카를 떠나 발렌시아로(11.14)


마요르카를 떠나며


마요르카는 우리나라의 제주도이다. 19년 전 스페인에 2년 살면서 마요르카를 가보지 못했다. 임기가 3년이었으므로 3년째 휴가 때 가려고 했었다. 그런데 2년 마치고 갑자기 근무지가 멕시코로 바뀌면서 한 달 만에 스페인을 떠나야만 했다.


2년 전 10월에 2주 패키지여행으로 스페인을 왔다. 그러나 그 때도 마요르카는 당연히 포함되지 않았다. 그래서 이 번에는 꼭 오려고 했다. 그리고 왔다. 여름 성수기를 피했기 때문에 조용하게 산책할 수가 있었다. 무엇을 특별하게 보고 싶었다기보다는 이 곳 사람들의 한적하고 느리게 살아가는 모습과 늦가을의 적막한 풍경을 느끼고 싶었다.


사람 살아가는 것 본질은 다 똑같겠지만 그 방식은 다르다. 20년 해외 생활에서 내 삶의 방식도 알게 모르게 그리고 크든 작든 얼마간 바뀌어 그들을 닮은 것도 있다. 그래서 한국에 살면서 가끔 그들 삶의 방식이 그리울 때가 있었다. 내가 스페인을 다시 온 이유 중 하나이다.


마요르카 구시가의 미로를 다리가 아플 만큼 걸었다. 피곤하면 카페에 앉아서 쉬었다 가고 가게도 기웃거렸다. 일부러 느리게 움직였다. 찬 바람과 함께 가랑비가 날려도 불편하게 생각하지 않고 좁은 골목들을 돌고 돌았다.


뜻밖에 만난 하얀 바위의 거친 트라문타나 산맥과 사 칼로브라 마을의 비경 그리고 소에르 항구의 트램과 고즈넉한 황혼의 마을 풍경을 소중하게 간직한다.


버스와 기차 그리고 택시를 번갈아 갈아타며 찾아간 작은 항구 포르토 크리스티의 가랑비 내리는 적막한 거리와 드라치 동굴 속 호수 콘서트도 좋은 추억으로 남을 것이다.


마요르카 공항


낮에 본 마요르카 공항은 생각보다 크고 깨끗하게 정리되어 있다. 면세 서류를 챙겨 부가가치세를 환불받고 탑승구역으로 일찍 들어왔다. 아무래도 조금 쉬는 것이 나을 성 싶었다. 아내도 피곤한 모양이다. 탑승 대기 구역에 앉아서 밖을 보며 쉬고 있다.


아내는 평생 나를 따라다니며 공항을 오간 탓인지 말은 유창하지 못하지만 주변을 보는 시야가 넓고 위기 대처를 잘 한다. 숨어있는 사무실이나 화장실을 먼저 찾는다. 눈치도 빨라 자기 앞가림을 앙칼지게 해낸다. 방어능력이 훌륭하다.


오늘도 면세 환불 사무실을 찾는데 허둥대는 나보다 훨씬 빠르게 찾았다. 또 여권 내랴 서류 챙기랴 다급해 있는 나를 잘 훈련된 외과 간호사 같이 옆에서 눈치껏 뭐가 필요한지 알고 척척 챙겨 준다. 어디 가서 절대 밥 굶지 않을 성격이다. 그 점은 나를 매우 안심시켜 준다. 사실을 말하면 조금 영악스럽고 맹랑하다.


아내도 마요르카 일정을 만족스럽게 생각하고 있는 듯하다. 잘 지냈다고 한다. 나에게 당신이니까 이렇게 와서 여행하고 있다며 칭찬한다. 앞으로도 잘하라는 격려인 것 같기도 하고 진심인 것 같기도 하다.


이베리아 항공의 작은 비행기


마요르카와 발렌시아를 왕복하는 비행기는 크기가 작다. 한 줄에 2인 자리 두 개 즉 4인이 앉을 수 있는 폭이다. 핸드 캐리어는 탑승 전 입구에서 모두 회수해 비행기 짐칸에 별도로 싣는다. 백팩은 가지고 들어갈 수 있다. 이런 크기의 비행기를 타본 것은 처음이다. 35분 비행하기 때문에 불편한 것은 없었다.


하늘에서 본 황토 빛 도시 발렌시아


하늘에서 본 발렌시아는 밝은 햇빛을 받고 있었다. 마요르카를 출발할 때 흐렸는데 하늘에서 본 황토 빛 느낌의 환한 발렌시아는 상쾌함을 준다. 인구 백만의 규모가 큰 도시이다. 마드리드에 살 때 아베(AVE)를 타고 또 승용차를 이용해 방문한 적이 있다. 그런데 비행기로는 처음이다.


발렌시아에서 가장 오래된 호텔 팔라시오 레이나 빅토리아


팔라시오 레이나 빅토리아 호텔 예약은 익스피디아(Expedia)를 통해 했다. 방문 기간 중 발렌시아 호텔 투숙 가격을 조사해 보니 전체적으로 상당히 비쌌다. 도시에 무슨 행사가 있을까? 마드리드 보다 비싸다. 물론 여러 가지 저렴한 선택지가 있었지만 이 호텔이 주요 관광명소를 걸어갈 수 있는 곳에 자리하고 있어 정했다. 우리를 공항에서 호텔까지 태워 준 택시 운전사도 호텔 이름을 말하니 바로 발렌시아에서 가장 오래된 고급 호텔이라고 설명해 준다.


호텔 건물도 그렇지만 방도 현대식 호텔에서 느낄 수 없는 고풍스럽고 우아한 느낌이 있다. 조명도 아주 아름답다. 이런 호텔은 2006년 뉴욕에서 한 번 경험한 적이 있다. 아내는 희고 두꺼운 호텔 가운을 입고 대단히 만족해한다.


짐을 대강 정리하고 저녁을 먹을까 하고 밖에 나왔다. 퇴근 시간이라 사람들의 왕래가 많다. 식당들도 저녁 영업을 시작하고 호객 행위를 하고있다. 주위 건물들은 모두 고색창연한 아름다운 건물들이다. 거기에 조명 효과까지 있어 밤거리가 귀티를 내면서 아름답다.


밤공기가 차가워졌다. 그러나 마요르카 출발 전 다소 습하고 더움을 느꼈는지 그 차가움이 오히려 상쾌하다.


1925년 헤밍웨이가 머무른 호텔


호텔 승강기에 타니 승강기 벽에 헤밍웨이 사진과 함께 글이 보인다. 그 내용은 1925년 헤밍웨이가 이 호텔에 머물면서 '태양은 다시 떠 오른다' 란 작품을 집필했다고 한다.


마드리드에도 헤밍웨이가 자주 찾아갔던 엘 보틴(El Botin)이라는 식당이 있다. 관광 명소가 되어 예약 없이 자리 차지하기 어렵다. 마드리드에서 살 때 헤밍웨이가 자주 앉았다는 식당 2층 창가 옆 2인용 식탁에서 식사를 한 적도 있다.나도 이번 여행 출발 전에 온라인으로 테이블을 예약하고 확약 메일을 받았다.


나는 개인적으로 대학시절 헤밍웨이 작품을 세 개 정도 읽어 본 수준인데 우연하게 헤밍웨이 자취가 있는 곳을 몇 군데 가 보았다.


우선 미국 마이애미에서 근무할 때 플로리다 반도 끝 키웨스트에 있는 헤밍웨이 하우스를 가 본 적이 있다. 헤밍웨이가 이 곳에서 머물다 자살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다음은 쿠바 아바나 근교의 헤밍웨이 하우스이다. 헤밍웨이는 이 곳에서 '바다와 노인'을 집필했다. 해변가 꽤 넓은 면적을 차지하고 있다. 나름대로 산책이 가능했던 것으로 기억하고 있다.


또 헤밍웨이가 피델 카스트로와 함께 낚시하기 위해 탄 적이 있다는 '그란마 (Granma)' 라는 이름의 보트도 보았다. 이 보트는 피델 카스트로가 무장투쟁을 하기 위해 혁명동지들과 멕시코에서 쿠바로 타고 온 보트이다. 북한의 노동신문 격인 쿠바 공산당 기관지 이름이 '그란마'이다.


그런데 이번에 다시 그가 머물렀던 호텔에 머물다니.


파에야의 고향


파에야는 발렌시아에서 시작되었다. 발렌시아 지역이 쌀농사가 가능해서 이 음식이 유래되었을 것이다, 호텔에서 나와 걸어 다니며 식당 앞에 놓여있는 메뉴판을 보니 파에야의 고향답게 거의 모두 파에야 메뉴가 빠지지 않는다.


우리를 공항에서 태워 준 택시운전사가 파에야는 점심때 먹는 것이 좋다고 했다. 음식 칼로리가 워낙 높아 밤에 먹으면 소화가 더디고 쌀 찐다고 한다. 아내도 파에야는 버터와 기름을 많이 넣기 때문에 칼로리가 높을 수밖에 없단다.


배도 고프고 해서 사람들이 대강 많이 있는 식당을 골라서 들어가 파에야를 주문했다. 전식으로 모둠 하몬을 시켜 맥주를 곁들였다. 파에야는 대강 먹을만한 수준이었다.


아내가 귀국할 때 파에야 용 팬을 하나 사가면 어떻겠냐고 한다. 한국에는 바닥이 평평한 프라이 팬이 없단다. 자기가 요리하는 방법을 아니까 한국에 돌아가면 가끔 해 주겠다고 말한다. 귀가 솔깃하다. 잘 생각해 보자.


아내의 갑작스러운 돈 걱정


저녁 식사 도중 아내가 갑자기 돌아다니며 돈 쓰는 게 마음에 걸린다고 말한다. 자식들도 마음에 걸리고. 처음 10여 일 동안은 여행 기분에 휩쓸려 잊어버렸는데 이제 자꾸 그런 생각이 든단다.


평생 급여 생활자 아내로 살았으니 새가슴이 되어 그럴 것이다. 아내는 살면서 낭비가 없었다. 신혼 때부터 그랬다. 모든 아내들이 다 그렇겠지만. 내가 급여 생활자임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은행에서 돈 빌려본 적 없고 빚이 있어본 적이 없는 이유다. 항상 고맙게 생각하고 있다.


40년 결혼 생활은 결코 짧지 않다. 나도 1년 2개월이 지나면 칠순이 되는데 그 긴 세월을 같이 살아온 아내가 고맙다. 그래서 이번 여행을 아내의 취향에 맞춰하고 있는 것이다.


여행을 계획하는 처음부터 비용은 크게 고려하지 않았다. 조금 더 나이가 들면 건강이나 경제적인 문제가 더 어려워질 것이 뻔하다. 또 마음에 걸릴 일들이 더 많아질 수도 있다. 그래서 결혼 40주년을 핑계 삼아 건강할 때 무작정 길을 떠난 것이다. 순전히 내 의지이다.


그렇다고 더 가난해지지 않으니까 잊어버려 하고 위로했다. 그리고 당신은 이 정도 돈 쓰고 여행할 자격이 충분하니 걱정은 묶어 뒀다가 한국에 돌아가서 해도 늦지 않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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