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 40년 되던 해 2019년 늦가을
14. 아름다운 도시 발렌시아 1 (11.15)
대로와 골목에서 만난 아름다운 옛 건물 들
발렌시아는 이번이 세 번째 방문이다. 한 번은 발렌시아에 있는 야드로 도자기 회사 경영진과 만나는 업무 출장이었고 또 한 번은 차로 가족과 함께 온 여행이었다. 모두 1박 2일 여행으로 출장 때는 아베(AVE)를 타고 와 시내 호텔에서 머물며 다음 날 미팅 끝내고 마드리드로 바로 돌아갔을 것이다. 가족 여행 때에는 해변 호텔에 머물다 차로 발렌시아 성당에 와서 성배만 보고 떠났다.
그래서일까? 발렌시아에 온 기억만 나고 도시에 대한 기억은 흐릿하다. 아내는 시내의 가로수가 오렌지 나무라는 것과 해변가 호텔에서 파에야 먹었던 것 정도 기억하고 있다. 그리고 보니 야자수와 함께 오렌지 나무 가로수가 많다. 노란 오렌지가 매달려 있는 것이 매우 이국적이다.
여기서는 구시가의 관광 지역을 역사적 지구(historic zone)라고 부른다. 호텔에서 도보 방문이 가능하다. 오가는 중 길을 잃어 여기저기 헤맨다. 그러면서 새롭게 만난 발렌시아 도시 풍경은 뜻밖에 아름다웠다. 아름답게 느끼는 것은 주관적인 것이다. 그러나 곡선이 많은 오래된 건물들이 햇살을 받아 황토 빛 느낌의 빛을 발산하는 풍경은 내 마음을 따뜻하게 해 준다. 평안을 느낀다. 내가 도시를 돌아다니며 사진을 찍는 이유 중의 하나이다.
건물들 사이에 노상 카페들이 들어서 있다. 공기가 차가운데 사람들이 카페에 둘러앉아 시끌벅적 수다를 떨며 음식을 먹고 있다. 나는 춥지 않을까? 음식이 식을 텐데 하고 쓸데없는 걱정을 하며 그 여유로운 풍경을 사진으로 남겨 둔다.
식어가는 커피 한 잔 또는 차가운 맥주 한 잔 앞에 놓고 다리 꼬고 앉아 길거리 풍경을 하염없이 바라보고 있는 사람들도 있다. 그들의 자세에서 급한 것을 찾아볼 수 없다. 나도 다리도 피곤하고 또 급할 것이 없는 여행자이다. 아내와 함께 쉬어 간다. 그러나 노상이 아니고 카페 안 창가에 자리 잡는다.
발렌시아 대성당과 바실리카 성당
1262년에 지어졌다는 발렌시아 대성당을 아침 식사 후에 산책 삼아 걸어 도착했다. 스페인은 가톨릭 전통이 매우 강한 곳으로 어느 도시를 가나 잘 조성된 성당이 있다.
오전 10시에 개장할 것으로 생각했는데 사람들이 들어간다. 행색으로 볼 때 예배 보러 들어가는 것 같다. 함께 따라 들어간다. 대성당 입구에 집시로 보이는 사람들이 앉아 구걸을 하고 있다. 대 성당은 겉에서 보는 것보다 안으로 들어오니 아주 웅장했다. 겉은 오히려 평범한 편이다. 내부는 엄숙하면서도 화려함이 감추어져 있고 조명이 아주 아름답다.
내 기억으로 성당 내부 한 채플에 전설의 성배가 보관되어 있는데 찾을 수가 없다. 2002년 방문 때 벽에 설치한 것을 봤는데 보이지 않는다. 귀석과 보석이 박힌 화려한 성배였던 것 같은데 어디 있을까? 몇 번 돌아봤는데 없다. 예수님이 최후의 만찬 때 그렇게 화려한 잔을 사용했을까 하는 논란 속에서 발렌시아 대성당은 이것이 예루살렘에서 온 진짜 성배임을 주장한다. 다시 한번 가서 확인해 볼 생각이다.
아기자기한 도자기 박물관
공식 이름은 '도자기와 곤잘레스 마르티 호사 예술품 국립 박물관'이다. 긴 이름을 가지고 있다. 박물관은 크지 않지만 입구가 범상치가 않다.
발렌시아는 도자기 생산으로 알려진 도시이다. 도자기 다국적 기업이 된 야드로(Lladro)가 이곳에 있다. 우연이 아닐 것이다.
박물관 내에는 다양한 도자기가 전시되어 있다. 중국 도자기도 있고 로마 시대 도자기도 있다. 전시품 외에도 도자기를 활용해 만든 화려한 방이 몇 개 있다. 계단도 도자기로 장식되어 있다. 스페인 건축을 보면 벽에 도자기 그림이 있는 것을 종종 본다. 지금도 장식용 도자기 벽 그림이 생산되고 있다.
이 박물관의 역사는 모르지만 아마 곤잘레스 마르티가 살던 집과 도자기 수집품을 국가에 기증해 만들어진 박물관이 아닐까 싶다. 그래서 곤잘레스 마르티 호사 예술품이라는 표현이 박물관 이름에 붙어 있다. 명칭은 국립박물관인데. 주마간산 격으로 보더라도 최소한 한 시간은 소요된다.
다시 보고 싶었던 야드로(Lladró) 도자기 전시관
야드로는 스페인의 대표적인 도자기 브랜드이다. 우리나라에는 많이 알려져 있지 않다. 그러나 세계적으로 애호가들이 많다.
나는 야드로에 대한 특별한 기억을 가지고 있었다. 2002년 월드컵 행사를 앞두고 2001년 초 야드로 본사에서 경영진에게 2002년 월드컵을 활용한 한국 테마 도자기를 만들어 마케팅을 해 볼 생각이 있는지 물어보았다. 중국, 일본, 태국, 인도 등을 테마로 한 도자기는 있는데 한국 테마가 없었다. 아쉬웠다. 그래서 월드컵을 계기로 제안해 본 것이다.
여기서는 다 설명할 수 없지만 야드로의 제품 개발 시스템은 독립성을 가진 개발자들이 아이디어를 만들어 매년 제출하고 제출된 많은 아이디어를 가지고 경영진이 검토한다고 한다. 아이디어가 선정되면 팀을 만들어 개발에 착수한다. 그 과정이 보통 몇 년 걸리며 경영진은 아이디어를 절대 강요하거나 제안하지 않는다고 한다.
제안 브리핑이 끝난 뒤 경영진은 나에게 야드로가 매년 개발했던 도자기를 회사 내부 전시 보관실에서 보여주었다. 일반 판매대에서는 볼 수 없는 대작 들이어서 내심 놀랐다. 그 당시 경영진은 야드로에 3,000명의 도자기 예술가들이 근무한다고 했다. 그때 속으로 도자기가 이렇게 큰 산업으로 성장할 수가 있구나 하고 생각했다.
그 후 나는 발렌시아 야드로 경험을 몇 번 아내에게 얘기한 적이 있다. 그래서 이번에 발렌시아 여행을 하며 아내에게 그 야드로 도자기들을 꼭 보여주고 싶었다.
우선 야드로 홈페이지를 검색했다. 그런데 과거와는 다르게 지금은 야드로 도자기 박물관이 만들어져 있는 것이 아닌가. 홈페이지에 의하면 박물관 방문을 위해서는 사전 방문 신청을 하고 승인을 받아야 한다. 나는 일정을 고려하여 온라인 신청하고 기다렸더니 3일 후에 관람 일자와 시간을 정해 승인을 해주었다. 도자기 제조 공정까지 보여주는 방문 일정이다.
시내에서 조금 외곽에 위치한 야드로 본사의 도자기 전시관에 정해준 시간에 맞춰 도착했다. 이 지역 명칭은 지금 정확하게 기억나지 않는다. 도자기 마을이라고 한다. 박물관 입구에 도착하니 정문에서 연락을 받은 직원이 정중하게 맞이해서 대기실로 안내해 준다. 영어 발음으로 짐작해 볼 때 호주인 방문객들과 함께 한 시간 동안 전시관 투어를 했다. 깨끗한 영어 발음을 하는 안내자가 자세하게 설명해 준다. 야드로 이미지와 맞아떨어진다.
투어 후 사진 촬영이 가능하다고 해 중요한 작품을 사진으로 담았다. 내가 처음 본 시점으로부터 18년이 흘렀기 때문에 그 사이 전사품이 다양해졌다. 또 도자기로 만든 장식용 전등 사업을 시작했다는데 그 값이 매우 비싸다. 정말 고부가가치 산업이다. 하단의 베니스 테마 도자기 가격이 20만 유로라고 한다..
‘오늘의 메뉴’ 파에야를 먹다
발렌시아는 파에야의 고향이다. 로운리 플래닛 가이드 북에 나바로(Navarro)라는 파에야 식당이 유명한 것으로 소개되어 있다. 야드로 박물관에서 택시를 타고 시내 중심에 있는 나바로 식당으로 바로 왔다. 그런데 좌석이 오후 3시까지도 나지 않는다고 한다. 우리나라 젊은이들 몇 명도 와서 그냥 가는 것이 보였다.
그러나 고객들이 먹고 있는 파에야를 곁눈질해 보니 그저 그런 것 같아 미련 없이 나왔다. 다른 주변 식당에서 파에야가 본식인 오늘의 메뉴(Menu of the Day)를 먹었다. 전식이 샐러드인데 두부 치즈가 포함되고 매우 싱싱했다. 양도 풍부하여 아내가 아주 맛있게 먹는다. 이런 샐러드를 먹고 싶었다며.
파에야도 짜지 않다. 스페인 사람들은 파에야를 짜게 먹는다. 그래서 우리가 주문할 때는 뽀까 쌀(Poca Sal! 소금은 조금만)이라고 말해주는 것이 좋다. 그래도 짜게 해온다. 그래서 나는 아예 무이 뽀까 쌀(Muy Poca Sal, 소금 아주 적게)이라고 주문한다. 그런데 아무 말도 안 했는데 짠맛이 적당하다.
후식으로 커피와 케이크도 나오고 1인당 10유로 50센트이다. 가성비가 매우 높다. 뭐 오늘의 메뉴이니까. 나는 아침을 많이 먹어서 반 정도밖에 먹지 못했다. 아내는 그릇을 다 비웠다. 아니 벌써 다 먹었어? 했더니 내가 당신보다 아침을 적게 먹었잖아 하고 말한다.
허망한 메르카도 센트랄(Mercado Central)
메르카도 센트랄을 지도로 확인하고 찾아갔다. 우리말로 중앙 시장이다. 유럽에서 가장 크고 좋은 메르카도라고 알려져 있다. 그런데 문이 닫혀있다. 오늘이 휴일인지 아니면 개보수를 하고 있는 것인지 알 수 없다. 문 닫은 시장은 황량하다.
시장 주변 노천카페에서 여행객들이 소란 떨며 맥주를 마시거나 파에야를 먹고 있다. 들려오는 말로 판단해 보니 동구 사람들 같다. 영어도 아니고 불어, 포르투갈어도 아니다.
예쁜 발렌시아 골목 풍경 그리고 파에야 팬 구입
메르카도 센트랄을 뒤로하고 지도를 보지 않은 채 이곳저곳 걷기 시작한다. 건물과 사람을 구경하며 그저 발 가는 곳으로 간다. 아내도 일체 불평이 없다. 나름대로 즐기고 있다. 내가 사진 찍는 시간에 아내는 상점을 기웃거리며 눈요기한다. 눈요기할 것도 많다.
갑자기 '이리 오세요' 아내 목소리가 들린다. 놀래서 돌아봤더니 가게에서 드디어 파에야 팬을 발견했다. 나보다 돈을 내라는 것이다. 적당한 사이즈를 12유로를 지불하고 샀다. 들어보니 무게가 꽤 된다. 가지고 갈 일이 벌써 걱정된다. 파에야를 열심히 만들어 줄 모양이다.
석양의 황토 빛 햇살을 받기 시작한 골목길 풍경이 정겹다. 그 골목 속 노천카페에 사람들이 앉아 음료를 마시고 있다. 아! 그런데 오늘 왜 이렇게 사람들이 많지? 하고 혼잣말했더니 아내가 귀가 밝아 금세 '오늘 금요일이지 않아?' 하고 대답한다.
아! 그렇지. 금요일 오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