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와 스페인 가을 여행(22)

결혼 40년 되던 해 2019년 늦가을

by 기현서

19. 북쪽으로 670킬로 부르고스를 향해(11.20)


그라나다 버스 정류장 노숙인 아침식사를 사주다


부르고스는 그라나다 북쪽 670킬로 미터 직진 거리에 있다. 마드리드 버스 정류장에서 부르고스 가는 버스를 다시 갈아타야 한다. 오전 8시 그라나다를 출발해 부르고스 도착하는 시간이 오후 5시 45분이다. 결국 하루 종일 버스 탄다. 호텔에서 5시에 일어나 준비하고 택시를 불러 6시 반에 그라나다 버스 정류장에 도착했다.


택시에서 내리자마자 30대 정도 되는 백인 노숙자가 갑자기 달라붙어 춥고 배가 고프니 카페 콘 레체 한 잔 마시면 좋겠다고 한다. 한눈에 봐도 추워 보였다. 그러나 잔돈이 없었다. 노숙자는 계속 따라붙어 잔돈이 없으면 정류장 안 카페테리아가 열려 있으니 거기에서 따뜻한 커피를 한 잔 사달라고 조른다.


2년 전 이때 모로코 탕헤르 항구에서 스페인 가는 페리 선을 타기 위해 이른 아침 선착장에 도착했다. 계단을 오를 때 아주 메마른 노인이 짐을 옮겨 주겠다고 했다. 그때 순간적으로 나보다 나이 든 노인에게 어떻게 짐을 맡기나 하고 거절했다. 그 일을 페리가 출발한 뒤에야 크게 후회하였다. 그 노인은 내게 도와줄 것을 요청했는데 거절한 것이다. 이 일이 머리에 남아서 그 후 종종 마음에 떠오르곤 했다. 아내에게도 산책 중에 과거 일을 회상하며 몇 번 얘기했다. 문득 그때 일이 생각났다.


짐을 아내에게 맡기고 노숙인과 함께 카페테리아로 갔다. 주문을 하라고 했더니 큰 소리로 카페 콘 레체 큰 것 달라고 한다. 그리고 보카디요 하몬 이 케소(바게트 빵에 햄과 치즈를 넣은 샌드위치) 큰 것 하고 외친다. 나이 든 종업원이 나를 쳐다본다. 눈짓으로 허락했다. 5 유로 조금 더 되는 돈을 지불해 주고 돌아왔다. 아내에게 자초지종을 얘기했더니 '모로코 생각났구나' 하고 말한다.


노숙인이 커피와 보카디요를 들고나가며 나를 보며 활짝 웃고 손을 흔든다. 표정이 밝고 동작이 가볍다. 문득 살아간다는 것이 어디나 쉽지 않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풍경이 바뀐다


스페인은 50만 평방 킬로미터의 면적을 가지고 있는 나라로 면적으로 볼 때 꼭 크다고 할 수는 없다. 그러나 동서남북 풍경과 지형이 매우 다르다. 또 스페인어가 공용어이긴 하지만 그것도 지방마다 말이 조금씩 다르다.


북부 갈리시아 지역 스페인어는 가에고(Gallego)라고 불린다. 포르투갈어와 약간 닮아 있다. 바르셀로나가 중심인 카타루냐 지역은 카탈란(Catalan)이라고 부르는 스페인어를 사용한다. 프랑스어 발음과 유사성이 있다. 북부 바스크 지역은 공식적으로 바스크어를 사용한다. 동양어를 말하는 것 같다. 전혀 알아듣지 못한다. 길 지표도 스페인어와 바스크어 두 언어로 표시되어 있다. 마드리드를 중심으로 중부에서 쓰는 스페인어를 카스테야노(Castellano)로 부른다. 우리가 스페인어라고 부르는 언어이다. 과거 카스티야 왕국의 언어란 뜻이다. 그만큼 다양성이 많은 나라이다.


지형은 북쪽으로 갈수록 우리나라와 비슷하다. 산악 지형이다. 부르고스는 중북부 지역에서 위쪽에 있다. 남부 그라나다에서 중부의 마드리드 그리고 중북부의 부르고스로 가며 날씨와 풍경이 바뀐다. 남부의 올리브 평원은 중부로 가며 점점 사라지고 가을걷이가 끝난 황토의 땅이 넓게 펼쳐진다.


또 마드리드를 지나 부르고스로 3 시간 올라가면서 평원이 다소 거칠어진 산악 지세로 바뀌고 있다. 정확하게 말하면 오르내리는 평원이라고 해야 할까? 날씨도 그라나다를 떠나 마드리드로 가며 점점 흐려지고 회색 빛 구름이 평원에 낮게 깔려 있다. 그러던 것이 부르고스를 가면서 비가 날린다. 중간에 눈이 오기도 했다. 아마 지대가 높은 곳인 모양이다.


부르고스는 다른 지역보다 바람이 많고 추운 곳이다. 기온을 체크해 보니 현재 기온이 5도이다. 비도 내리니 부르고스 정류장에 도착하면 바로 택시를 타야 할 것 같다. 애플 맵에 정류장에서 호텔까지 거리가 1.2 킬로미터로 나온다. 가깝다.


이곳에서 머물며 북부의 빌바오, 산탄데르, 산 세바스티안을 가볼 생각인데 그렇게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꼭 목적지를 정하고 여행하는 것은 아니므로 갈려고 생각하다 못 가면 그뿐이다.


40년 전 들었던 호세 루이스 모랄레스의 노래를 들으며


버스의 라디오에서 귀에 익은 노래가 나온다. 기억을 되살려 보니 거의 40년 전 즐겨 들었던 호세 루이스 페랄레스(Jose Luis Perales)의 ‘이 코모 에스 엘(Y Como es el?)’이다. 노래 제목이 가사에 포함되어 나오기 때문에 기억했다.


1981년 베네수엘라 카라카스에서 살 때 이 노래를 엘피 판으로 많이 들었다. 집에 찾아보면 아직 가지고 있을 것이다.


호세 루이스 페랄레스를 위키피디아로 검색해 보았다. 1945년 생으로 아직 스페인에 생존해 있고 가요계의 원로로 잘 활동하고 있다. 그는 다른 스페인 가수 훌리오 이글레시아스(Julio Iglesias)와 같은 시대에 활동했다. 그러나 나는 호세 루이스 페랄레스 노래를 더 좋아했다. 유 투브 뮤직에 들어가 노래를 찾아 다시 들으며 잠시 추억에 잠겼다.

엘 시드(El Cid)의 고향 부르고스에 도착하다


마드리드에서 3시간 달려 엘시드의 고향 부르고스에 도착했다. 두 번 째다. 19년 전 가족과 함께 차로 한 번 온 적이 있다. 기억이 뚜렷하지 않지만 성당과 부르고스 성 그리고 시내를 잠시 배회하고 돌아갔던 것 같다. 성당과 시내는 기억에 없고 부르고스 성만 기억에 남아 있다. 그때 어느 광장 좌판에서 산 동전 넣는 작은 가죽 지갑을 아직도 가지고 있다.


찬 가랑비가 바람에 흩날린다. 짐을 끌고 비를 잠시 맞으며 택시 정류장으로 나와 택시를 탔다. 비 오는 부르고스 시내는 퇴근 때인데도 번잡하지 않다. 조용한 도시이다. 그 조용함을 찾아 부르고스를 왔다. 실켄 그란 테아트로 부르고스 호텔(Hotel Silken Gran Teatro Burgos)에 투숙했다. 조촐한 현대식 호텔이다. 방도 매우 정갈하다.


부르고스는 11세기 스페인 전설의 기사 엘 시드(El Cid)의 고향이다. 정사에는 그의 족적이 뚜렷하지 않은 모양인데 구전되는 야사에는 영웅이다. 어렸을 때 엘 시드라는 영화를 본 적이 있다. 위키에서 찾아보니 1961년에 만들어졌고 찰톤 헤스톤과 소피아 로렌이 주연했다. 엘 시드와 그의 아내 도냐 히메나(Doña Jimena)의 묘가 부르고스 대성당에 있다. 여기서 5박 6일을 보내고 여행의 최종 목적지인 마드리드로 다시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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