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 40년 되던 해 2019년 늦가을
18. 알람브라의 노란 가을(11.19)
그라나다 문을 지나 알람브라 가는 숲길
알람브라 궁전을 가는데 도시에서 궁전 입구까지 걸어 올라가는 것은 처음이다. 애플 맵으로 호텔에서 거리를 측정해 보니 약 1.1 킬로미터가 나온다. 가까운 거리이다.
아침 식사 후 알람브라 궁전 가는 길 탐색에 나섰다. 법원 건물 옆 좁은 골목이 올라가는 입구이다. 알람브라 궁전 가는 길 표시가 되어있다. 골목길은 가파르지만 걸을만 하다. 올라가다 보니 성문이 있다. 그라나다의 문이라고 지도에 표기되어 있다.
그 문을 지나니 숲 속 길이다. 숲 속 길이 끝나는 지점에 왼쪽으로 길이 나 있고 그 길의 끝에 알람브라 궁전 입장 매표소가 있다. 이른 아침 숲 속 길은 고즈넉하다. 숲 속의 차갑고 신선한 공기로 코 속이 시원하다. 나무 사이로 살짝 비치기 시작한 햇살이 숲을 깨우고 있다. 아내와 그 조용한 숲 속 길을 걸으며 이런 호사를 언제 또 누릴 수 있을 것인가 생각했다.
인적이 없고 잘 정돈된 숲 길을 올라가다 길을 잘 못 들어 갔다. 주변의 사람 사는 동네이다. 알람브라 궁전을 외곽에서 잘 올려볼 수 있는 곳도 발견한다.
알람브라 궁전 올라가는 길이 노랗게 물들어 간다. 은행나무도 아닌데 나무 잎이 대부분 노랗다. 수종 때문일까 아니면 이곳의 기후 때문일까.
알람브라 궁전 방문은 이번까지 네 번이지만 두 번은 승용차로 한 번은 버스로 왔다. 이번과 같이 도심에서 걸어 올라가는 것은 처음이다. 처음 골목길에 들어섰을 때 가파른 길을 따라 계속 가야만 할 줄 알았다. 그런데 그라나다의 문을 통과하니 완만한 숲 속 길이다. 이렇게 편안한 숲길을 따라 산책하다니. 그래서 호사한다는 생각을 한다. 아름다운 기억이다.
독일인과 중국인들
이번 스페인 여행에서 독일인과 중국인들을 많이 만난다. 내 입장 시간은 오후 1시 30분이지만 예약 티켓을 가지고 어떻게 입장하는가 알고 싶어 매표소 주변을 탐색했다.
오전 입장 예약자들이 몰려드는데 대부분 단체 관광객이다. 독일인 가이드와 중국인 가이드가 각각 자국어로 인솔하는 소리를 듣는다. 마드리드, 마요르카, 발렌시아, 그리고 그라나다까지 독일인과 중국인 관광객을 계속 만나고 있다. 11월은 가장 비수기라고 하는데 왜 이들이 많은지 잘 모르겠다.
한국인 관광 단체도 한 팀이 있다. 우리 관광객의 특징을 제삼자적 입장에서 봤다. 우선 복장이 단정하고 세련되었다. 그다음 소란스럽지 않고 목소리도 크지 않다. 좋았다. 반면 중국인들의 목소리는 매우 크고 어수선하다.
특이한 것은 독일인들의 목소리가 작지 않다는 것이다. 프랑크푸르트에서 거주할 때 독일 사람들은 체격이 큰 것에 비해 말소리는 작았다. 그런데 독일 밖에서 만난 그들의 목소리는 중국인들과 같이 부담되는 정도는 아니지만 그렇다고 절대 작은 것만도 아니다.
다시 만난 알람브라의 노란 가을 색깔
19년 전 만난 알람브라의 가을은 지금보다 더 늦은 11월 하순으로 기억하는데 하루 종일 가랑비가 날려 으슬으슬했다. 그리고 나자레스 궁전 돌 벽에서 느껴지는 냉기가 싫어 궁전의 천정과 벽면의 섬세하고 아름다운 세공을 대충 보고 나온 기억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을의 차가운 가랑비 속의 알람브라 궁전은 처연함이 있었다. 그 기억이 추억으로 남아 있다.
알람브라 궁전은 넓기도 하지만 건물도 아름답고 잘 보존되어 있다. 또 조경이 일품이다. 그래서 비 오면 비 오는 대로 흐리면 흐린 대로 햇살이 비치면 더 좋고 어디에다 카메라를 가져다 대도 그림 같은 사진을 찍을 수 있다.
2년 전에도 알람브라의 사진을 많이 찍어 왔다. 그런데 지금도 찍고 있다. 안 보였던 숨은 풍경들이 보는 각도와 시각에 따라 변화무쌍하게 나타난다. 그때는 10월 하순 경이었다. 맑은 날씨에 파란 하늘이 잘 어우러져 사진 찍기가 좋았다. 반면에 방문객이 많았고 패키지 관광이어서 여유부릴 시간이 없었다.
그런데 이 번에는 급할 것 없다. 다리 아프면 벤치에 앉아 쉬어 가면 된다. 실제 그렇게 했다. 날씨도 청명 하지는 않지만 햇살이 비친다.
아내가 안 보인다. 어디 갔나 싶어 아래 길까지 한참 찾아보다 다시 식당 쪽으로 올라오다 보니 아내가 그 중간에 자리한 기념품 가게에서 멋쩍게 웃으며 나온다.
알람브라 궁전 내에 알람브라 파라도르(Parador) 호텔이 있다. 궁정 내 저택을 호텔로 개조한 것인데 아주 아름다운 건물이다. 그곳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입구가 덩굴 꽃으로 예쁘게 장식된 식당이 있다. 지난번에도 한 번 들어가 보고 싶었는데 시간이 없다 보니 그러지 못했다.
식당에 들어갔다. 조그만 살롱으로 안내한다. 음료수와 간단한 샌드위치 그리고 렌틸 콩으로 만든 따뜻하고 걸쭉한 수프를 주문했다. 수프는 물론 아내의 몫이다. 맛있게 잘 먹는다. 살롱은 잘 꾸며져 있다. 음식을 기다리며 그리고 음식을 먹고 난 후 느리게 가져다주는 청구서를 참을성을 가지고 기다리며 그 분위기를 즐긴다. 돈과 시간의 호사다.
알람브라의 가을은 그렇게 노랗게 익어간다. 관광객도 많지 않아 그 속에서 마음껏 여유를 부린다.
2년 전 사람들에게 밀려갈 수밖에 없었던 헤네랄리페 궁전도 사진을 찍을 수 있을 만큼 충분한 공간이 만들어지고 있다. 다만 봄과 여름의 아름다운 꽃들이 없는 것이 아쉽다.
노란 나뭇잎과 오후의 황토 빛 햇살 그리고 노랗고 붉은 색조의 성벽이 어우러져 빚어내는 가을의 아름다운 색깔들을 카메라가 과연 얼마나 잘 표현할까?
발목과 다리가 피로하다
아침 일찍부터 알람브라 숲속 언덕을 두 번 오르내리고 또 궁전 내에서 이곳저곳으로 옮겨 다닌 걸음 수가 2만 2천보다. 오후 5시경 내려와 저녁을 먹기 위해 식당을 찾으려 하니 마땅한 곳이 찾아지지 않는다. 그러고 보니 그라나다는 그동안 발렌시아나 마요르카 등에 비해 들어갈 만한 식당이 썩 눈에 띄지 않았다.
발렌시아는 식당과 카페가 너무 많았다. 어디를 가나 쉽게 접근할 수 있었는데 그라나다는 적당한 곳을 찾으려면 발품을 팔아야 한다.
아내는 소고기 스테이크를 먹고 싶단다. 그녀는 젊어서부터 소고기 스테이크에 가는소금을 뿌려 먹는 것을 좋아했다. 식당 찾으려 길거리를 오르내리다 보니 발목과 다리가 뻐근하다. 겨우 찾은 식당에서 아내는 치킨 수프와 등심 스테이크를 주문해 주고 나는 입맛이 없어 수제 햄버거 하나 주문하여 맛없이 먹었다. 전체 음식값에서 아내의 비중이 삼분의 이 정도이다. 속 좁게 내가 먼저 계산한 것이 아니고 아내가 물어봐서 영수증을 보니 그렇다는 것이다.
아내가 잘 먹고 건강하게 여행하니 얼마나 다행인가? 그 반대를 생각해 보면 계산이 나온다.
식사 후 또 1 킬로 미터 정도 걸어서 호텔로 와 일찍 잠든다. 내일 아침 일찍 버스로 그라나다를 떠나야 한다. 마드리드를 경유해 부르고스로 간다. 엘 시드(El Cid)의 고향 부르고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