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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기현서 Oct 23. 2020

분당 구미동의 가을

- 산책 일기 -

분당 구미동 ... 내가 25년 동안 살고 있는 동네이다. 분당에서 마지막으로 개발된 지역으로 남쪽 용인시와 경계가 되는 지점이다. 그러니까 1993년에 분양받고 1995년 늦은 가을에 입주하여 지금까지 살고 있다. 평생 새가슴 가지고 급여 생활하며 재테크 재주도 없어 당시 분양받은 그곳에서 살고 있다.


1987년까지 서울 잠원동 한강변 아파트에서 살았다. 그런데 갑자기 해외 발령을 받았다. 생각 없이 집을 팔고 해외 갔다가 돌아오니 판 아파트는 값이 6-7배로 뛰어버렸다. 그래서 무주택자로 있다가 분당에서 살게 된 것이다. 그 당시 구미동은 내가 사는 아파트 단지만 덩그렇게 있었고 그 주변은 논과 밭이 어우러진 구릉지대이었다. 날림으로 조성된 탄천은 살벌했고 물은 정화되지 않은 하수들이 흘러 냄새가 나고 맑지 못했다.  


그러던 곳이 이제 주변 환경이 좋아져 살만하다. 봄에는 벚꽃을 중심으로 여러 봄꽃이 피고 가을에는 단풍이 보기 좋게 물든다. 소공원들이 곳곳에 조성되어 조용하게 앉아 쉴 수도 있다. 사는 공간인 아파트는 시간이 흘러 낡아가고 있지만 살아가는 바깥 공간은 매우 쾌적하다. 특히 구미동은 분당 다른 곳에 비해 인구가 많지 않다. 또한 불곡산 줄기와 탄천 사이에 있어 분당 다른 동네보다 공기가 좋고 조용하다. 임산 배수 지대이다.


그런 구미동의 가을이 갑자기 깊어졌다. 어제보다 오늘 아침 다소 기온이 내려갔다고 생각했는데 점심때가 지나면서 바람이 느껴지며 쌀쌀해졌다. 가을 햇빛이 청명하고 하늘이 파란 탓일까? 오늘 보는 나뭇잎 단풍 색깔이  훨씬 진해졌다. 봄의 벚꽃이 화사하게 핀 뒤 쉽게 지듯 가을 단풍도 보기가 아름답다고 생각되는 순간 지기 시작한다. 물들 것 같지도 않았던 나뭇잎들이 물들고 강아지풀과 갈대 그리고 억새풀들이 역광에 아름답게 비칠 때 가을은 지나가 버린다.


세상이 온통 시끄럽다. 우리나라도 시끄럽고 미국, 영국, 일본, 중국, 중동 시끄럽지 않은 곳이 없다. 코로나 19와 그로 인한 삶의 어려움, 분쟁, 정권투쟁, 범죄와 폭력 등으로 어지럽다. 나는 국내문제는 온라인 매체로 정보를 접하고 해외 정보는 BBC World, CNN International, Alzazeera, France 24, DW 등 온라인 방송을 청취한다. 영국식 영어 발음과 억양에 익숙해지기 위해 SKY News를 청취하기도 한다. 기타 스페인 방송과 멕시코 방송을 온라인 스트림으로 듣고 있다. 그래서 세계 전 지역 상황을 눈으로 보고 있다. 결론은 사람 사는 것 똑같고 참 어렵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런들 어떻게 할 것인가? 한낱 소시민이....


아내와 쌀쌀해진 동네 가을 길을 산책하며 이런저런 얘기하면서 '아직은 남은 시간이 있어서 장담할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대충이나마 살아온 것이 생각해보면 꿈만 같다'라고 말했다. '다시 되돌아가서 살아보라고 하면 거절할 것'이다. 청량한 가을 햇빛 속에 맑은 공기 마시며 단풍을 보며 산책하고 동네 커피점에서 따끈한 커피 한 잔 할 수 있는 여유를 이제 찾았다. 번민하면서 앞만 보고 달려왔던 길을 다시 가고 싶지는 않다.


우리 동네 오리역 하나로 마트 구내에 'Cafe Da'라는 적당한 규모의 카페가 생겼다. 보기 좋고 차분한 실내 인테리어를 했다. 외부 베란다에도 테이블이 있다. 카페 사장이 따끈하고 알맞게 진한 커피를 보기 좋은 잔에 담아 준다. 아메리카노 맛이 적당하게 무거우면서 구수하다. 아내와 산책하다 종종 들리는데 항상 카페 밖 베란다에 자리 잡고 3-40분 정도 시간을 보낸다. 그 재미가 쏠쏠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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