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으로부터 40년여 년 전 필자가 베네수엘라 카라카스에서 해외근무를 할 때 북부의 카리브해에 연한 푸에르토 라 그루즈(Puerto La Cruz) 항구를 여행할 때이었다. 마을의 좁은 골목길을 지나고 있을 때 시멘트 가옥의 열린 문 안의 어두운 공간에서 푸르고 맑은 눈을 가진 열 살 남짓의 남자 흑인 어린애가 동양인 이방인을 놀란 눈으로 쳐다보고 있었다. 필자도 순간적으로 어떻게 흑인이 맑은 푸른 눈을 가지고 있을까 생각하며 놀라운 마음을 가지고 눈을 마주치고 떼지 못한 경험이 있다.
그때 순간적으로 느꼈던 애잔하고 묘했던 감정이 이후 중남미 흑인에 대한 미디어나 자료를 접할 때 꼭 선명하게 되살아 나곤 한다. 아주 드물게 푸른 눈을 가진 백인들의 숨겨진 유전자로 인해 푸른 눈의 흑인이 태어난다고 한다.
현재 중남미 흑인을 학계에서는 '아프리카계 중남미인(Afro-Latin American)'이라는 용어를 사용하지만 일반적으로는 흑인(Black, Negro)라고 부른다. 이들의 규모는 중남미 흑인을 어떻게 구분하고 정의하는가에 따라서 달라지기 때문에 사실상 정확하게 산정하는데 어려운 측면이 있다. 인구센서스를 하더라도 본인이 흑인임을 표시해야 하는데 흑인의 유전자를 가지고 있는 혼혈인 경우에 통상적으로 이를 거부하기 때문이다.
흑인의 범주를 아프리카 흑인, 흑인과 백인 혼혈인 물라토(Mulatto), 흑인과 인디오 원주민의 혼혈인 잠보(Zambo), 백인, 흑인, 인디오 원주민의 혼혈인 파르도(Pardo) 등을 모두 포함하면 그 규모는 130 백만에 이르는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Prinston Univ. Project on Ethnicity and Race in Latin America, May, 2022).
중남미 흑인의 존재는 16세기부터 시작되어 19세기까지 계속되었던 대서양 노예무역의 결과이다. 1526년 포르투갈 노예 무역상들이 중부와 서부 아프리카 흑인들을 브라질로 데리고 온 뒤 스페인, 영국, 프랑스, 화란, 덴마크 등 당시의 유럽 열강들이 노에 무역에 종사했다. 4세기에 걸친 노예무역의 규모는 자료가 완벽하지는 않지만 대강 1,200만 명을 상회하고 있다. 자료에 의하면 수송중 사망한 흑인의 규모도 180만 명을 넘고 있음을 볼 때 당시 노예무역의 잔혹함을 엿볼 수 있다.
중남미로 수입된 흑인 노에들은 사탕수수, 카카오, 커피, 기타 농산물을 경작하는 대농장이나 광산으로 팔려나갔다. 또 일부는 상류계층의 가사를 보는 하인으로 종사하였다.
1519~1867년 기간 중 미주대륙에 유입된 흑인 노예들의 최종 도착지역 기준 비중을 보면 브라질이 38.5%로 가장 높고 이어서 영령 카리브 18.4%, 스페인 식민지 17.5%, 프령 카리브 13.6%, 북미 9.7%, 화란령 카리브 2.0%. 덴마크령 카리브 0.3% 순이다(Stephen D. Behrendt, Institute for African and African'American Research, Harvard Univ.).
흑인 인규 규모가 큰 국가들을 보면 브라질(14,518천 명), 아이티(10,594천 명), 콜롬비아(4,671천 명), 페루(2,850천 명), 베네수엘라(2,641천 명), 푸에르토 리코(1,863천 명), 도미니카공화국(1,201천 명), 에콰도르(1,042천 명), 쿠바(1,008천 명), 니카라과(600 천 명), 파나마(477천 명), 칠레(465천 명), 코스타리카(390 천 명) 등이다.
전체 인구 규모 대비 흑인 인구 규모가 1% 미만 국가들은 아르헨티나(149천 명), 엘살바도르(50천 명), 파라과이(40천 명), 볼리비아(23천 명) 등이다. 아르헨티나의 부에노스 아이레스 항구는 흑인 노예 무역선의 기항지로 많은 흑인 노예들이 이곳을 통해 여타 스페인령으로 이동했다. 따라서 당시 흑인 노예의 인구 규모가 작지 않았으나 끊임없이 그 규모가 축소되었다.
이 원인에 대해서는 아르헨티나 정부가 흑인 인구 규모를 축소하기 위해 계획적으로 인종청소(genocide)를 했다는 주장에서부터 전염병 확산설 등 여러 가지가 있으나 증명된 바는 없다. 다만 흑인들이 스페인 독립전쟁과 삼국 전쟁 당시에 참전하여 많은 인원이 사망했던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이 것도 아르헨티나 정치지도자들이 흑인 규모를 축소시키기 위해 의도적으로 위험한 전투에 흑인들을 보내 전사시켰다는 논란도 있다.
브라질을 포함한 중남미 사회계층에서 흑인들의 위상은 가장 아래에 속해있다. 어느 국가를 막론하고 원론적으로 인종차별이 금지되어 있고 일상생활에서 더욱 표현되지는 않고 있지만 전통적으로 형성된 인종에 기초한 중남미 사회계층에 따른 차별의식은 문화적 요소로 뿌리 깊게 유지되며 보이지 않게 현재에도 잘 작동하고 있다.
중남미에서 생활하다 보면 흑인 계층 내에서도 피부 색깔의 진함과 옅음으로 서로 차별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필자가 도미니카공화국 산토도밍고에서 근무할 때 대선이 있었는데 백인과 흑인의 혼혈인 현지 직원에게 누구를 지지할 것인가 물었더니 백인 후보를 지지한다고 했다. 그래서 지금 흑인 후보가 더 젊고 유능하다고 평가되고 있는데 왜 그를 지지하지 않는가하고 물었다. 그리고 그의 대답은 당시 나에게 충격을 주었다. 그는 나에게 '그는 나보다 더 검다'라고 대답했다.
그래서 도미니카 공화국의 역사책을 읽어보았다. 이러한 내용이 있었다. 대농장을 하사 받은 스페인 정복자가 스페인으로부터 신부를 구하지 못하고 혼자 지내던 중 흑인 여자 노예 사이에서 태어난 혼혈 아들에게 농장을 유산으로 물려주었는데 이 혼혈인 농장주는 자신의 아버지보다 훨씬 잔혹하게 흑인 노예를 다루었다는 것이었다. 그는 자신이 흑인 노예 출신이라는 열등감을 극복하기 위해 차별화를 시도한 것인데 그때 사용했던 표현이 '너희들은 나보다 더 검다'라는 것이었다. 이 건을 통해 필자는 당시 중남미 유색인종들의 숨겨진 열등감에서 오는 애환을 깊게 느낄 수 있었다.
과거 필자가 흑인의 푸른 눈을 보고 애잔함을 느껴졌던 것은 본능적으로 그런 애환이 감상적으로 전해졌던 것이 아닐까 싶다. 한국인이 해외에서 아리랑 노래를 접할 때 이유없이 울컥한 마음이 드는 것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