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기현서 Sep 26. 2022

자원의 저주:
벼락경기와 불경기의 순환

 중남미는 자연자원이 풍부한 지역이다. 따라서 중남미 경제는 자연자원인 일차산품 가격이 등락하면서 벼락 경기와 불경기 사이를 오가는 상황을 반복하고 있다. 즉 일차산품 가격 불안정(price volatility)이 중남미 경제를 어렵게 하는 가장 큰 원인이 되어왔다. 


 벼락 경기는 식민지 시대 커피, 담배 같이 시장에 새롭게 소개되어 유행되어 갑자기 수요가 증가할 때 도래한다. 또는 금, 은, 광물, 석유. 가스, 농축산물 등 기존에 채굴되거나 생산되어 사용되고 있는 상품이라고 하더라도 신규 공급지가 발견되거나 수요 급증에 따른 가격 상승이 있을 때 일어난다. 


 한편 불황은 시장의 일차산품에 대한 선호 변화, 자원고갈, 대체 재화 출현, 과잉생산 등으로 가격 폭락이 발생해 생산원가를 맞출 수 없을 때 발생한다.


 벼락 경기와 불경기의 순환은 자원 보유 중남미 국가들에게 과거부터 반복적으로 일어난 경제현상으로 21세기에 들어선 현재에도 들어서도 지속되고 있다. 이러한 환경은 자원에 의존해 경제를 운용하고 있는 중남미 국가들에게 경제적 불안정성을 안겨주는 주요 요인으로 작용해왔다.


 경기순환에 영향을 주는 일차산품에는 금, 은, 철, 구리, 리튬 등 광산물, 석탄, 석유, 가스 등 화석연료, 대두, 밀, 커피, 담배, 고무, 염료, 사탕수수 등 농산물, 쇠고기, 양고기, 양모, 가죽 등 축산물 등이 있다. 

 

 식민통치 기간 중 스페인을 통해 유럽에 유입된 중남미 생산 금과 은이 산업혁명의 촉매가 되고 유럽 경제를 활성화시키는 재원으로 사용되었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금과 은 외에도 코치닐(cochineal)과 인디고(indigo) 등 천연염료, 담배, 커피, 코코아, 사탕수수 등 기호상품, 다이아몬드 등 귀석, 헤네켄(Henequen), 구아노(Guano), 초석(nitrate), 고무 등도 개별 국가 차원에서 벼락 경기와 불황의 순환을 이끄는 동력이었다.  


 20세기 들어 멕시코, 에콰도르, 베네수엘라, 볼리비아, 브라질 등에서 새롭게 석유와 가스 등 에너지원이 발견되면서 중남미 지역 경제의 자원의존도는 더 높아졌다. 아르헨티나의 육류와 곡물 등 식량자원도 전통적인 일차산품으로 벼락 경기와 불황의 순환을 이끌어가는 요인이었다.


                                              중남미 역사 속 자원의 호황 현황

 일차산품에 대한 수급 변화는 교역조건에 바로 영향을 준다. 이는 일차산품의 수요와 공급이 가격에 비탄력적으로 반응하기 때문이다. 

 우선 중남미 일차산품에 대한 수요가 증가하면 그 가격이 상승해 교역조건이 좋아진다. 일차산품의 특성상 수요가 증가한다고 하더라도 공급을 바로 늘릴 수 없기 때문이다. 이는 중남미 경제에 유익하게 작용한다. 


 이와 반대로 수요가 감소하면 바로 공급량을 축소해야 하는데 또 그렇게 할 수가 없다. 따라서 상품 가격 하락으로 교역조건이 악화되며 이 결과 자원 의존 중남미 경제는 불경기에 빠져들게 된다. 


 21세기 들어서도 일차산품 수급상황 그리고 이에 따른 가격 상승과 하락으로  야기된 벼락 경기와 불황의 순환은 계속되고 있다. 2003년 하반기부터 시작된 일차산품 국제 가격 상승은 2013년 상반기까지 계속되었다. 이 기간 중 중국 경제의 빠른 성장과 세계 경제의 확장으로 일차산품에 대한 수요가 크게 증가하자 석유, 구리, 철 등 광물자원은 물론이고 농산물 가격도 급등하였고 그 순환기간이 예외적으로 길었다. 


 이러한 상황에 힘입어 중남미 경제는 기간 중 안정성장을 이루고 대외부채를 축소시켰다. 또한 개별 국가별로 외환보유고도 늘려 2008년 발생한 세계적 외환위기도 어렵지 않게 비켜갈 수 있었다. 


 그러나 2013년 들어 중국 경제성장의 둔화로 일차산품 수요가 감소하고 이 결과 가격까지 하락하자 중남미 경제는 역성장세를 보여주기 시작했다. 특히 중남미 총생산량의 거의 반을 차지하고 있으며 중국에 대한 수출에 크게 의존하고 있던 브라질 경제가 타격을 받아 역내 전체 경제성장에 부정적으로 작용했다.


 전 세계적으로 볼 때 개별 국가별 자원의 수혜는 균등하지 않다. 광물은 많이 보유하고 있지만 농축수산물이 부족한 나라도 있고 그 반대인 경우도 있다. 양 쪽을 모두 풍부하게 보유하고 있는 국가는 많지 않다. 중남미 지역은 이러한 측면을 잘 보여주고 있다. 


 자원은 국가경제개발전략의 중요한 자산으로 이를 현명하게 관리하고 활용하면 자원이 없거나 부족한 국가보다 더 빠르고 깊게 경제개발목표를 이룰 수 있다. 그러나 자원으로 인해 경제개발이 원활하게 이루어지지 못하고 오히려 ‘자원의 저주’라는 표현이 적합한 국가들의 사례도 적지 않다.


 우선 자원의 생산과 수출로 발생하는 수익은 정부가 추진하는 경제개발과 국민복지증진에 사용된다. 즉, 경제개발의 구체적 목표인 산업 발전에 필요한 도로, 철도, 정보, 통신 등 각종 인프라 건설의 재원이 되며 국민복지증진에 필요한 보건의료, 빈곤 개선, 사회복지 등에 소요되는 정부예산의 근원이다.


 그러나 중남미 역내 국가들의 자원기반 경제개발은 여러 가지 제약으로 당초 계획한 성과를 이루지 못했다. 자원의 개발과 수출이 진행되면서 일명 ‘자원의 저주’로 불리는 ‘화란 병’에 오염되고 경제 사회적 불평등이 심화되었다. 여기에 부패 만연으로 부정적 경제개발 환경이 조성되어 과거부터 현재까지 악순환이 계속되고 있다. 


 이 결과 ‘자원이 중남미에 축복인가 아니면 저주인가’에 대해 학자들 간 많은 분석과 토론이 있기도 했다. 중남미 경제개발에서 자원의 역할 즉 과연 그것은 어떤 위치에 있고 어떻게 활용해야 하는가에 대한 논의는 과거에서부터 지금까지 꾸준하게 이어지고 있다. 


 변화하고 있는 세계 경제무역환경 속에서 중남미 각국들의 자원에 대한 관점과 이에 따른 관리방안(governance)도 그동안 계속 변화해 왔다. 특히 논의의 중심에는 1948년에 설립된 유엔중남미경제위원회(ECLAC)가 있다. 


 중남미경제위원회는 중남미 역내 국가의 경제개발에 자원의 중요성을 인정하고 역내 경제개발의 동력으로 활용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였으며 이러한 입장을 현재에도 유지하고 있다. 

이전 09화 푸른 눈을 가진 검은 피부: 중남미의 흑인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