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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기현서 Sep 24. 2022

중남미 정치의 기원:
자유주의와 보수주의

 현재의 중남미 정치를 분석하고자 하면 과거 중남미의 자유주의(Liberalism)와 보수주의(Conservertism)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이는 프랑스혁명 그리고 이어진 나폴레옹 전쟁으로 유럽이 요동치던 1808년에 시작된 중남미 독립전쟁(Latin American Independence War)에서 부터 그 뿌리가 시작되어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1790년대에 진행된 프랑스혁명은 중남미 지식인 계층에게 계몽 사조(The Enlightenment)를 유입시켰다. 이 계몽 사조는 중남미 사회에 자유, 평등, 인민주권으로 특징되는 자유주의 사상에 관심을 증폭시키는 계기를 만들었다.


 19세기 초 자유주의자들은 민주주의 정부 시스템, 가톨릭 교회의 지배구조 타파, 사회계층구조 철폐, 노예제도 폐지 등을 주장하기 시작하였다. 자유주의자들의 주장들은 당시까지 중남미 사회를 지탱해준 가치체계를 부정하는 것으로 기득권 계층을 중심으로 하는 보수주의자들의 저항을 받기 시작했다.


 보수주의자들은 기존의 정치제도와 계층구조를 선호하며 만약 정치체제가 자유화되면 중남미 사회에 혼란과 무질서가 팽배할 것이라고 믿었다. 특히 이들은 암묵적으로 노예와 농노를 기반으로 하는 사회 시스템이 무너져 소수 백인 기득권 계층을 향한 인디오 원주민, 흑인, 메스티소 등 유색인종 계층의 인종적 저항으로 이어질 가능성을 경계하고 있었다.


 여기에서 특기할 사항은 자유주의자와 보수주의자들 간의 충돌이 진행되는 가운데 중남미 특유의 '카우디요(Caudillo)'로 불리는 지역 군벌세력이 등장하게 된 것이다. 이들은 대부분 특정 지역에서 대대로 소유하고 있는 대토지를 기반으로 군대를 조직하고 무장해 독립전쟁에 참여하며 세력을 키운 정치군사적 지도자들이었다.


 카우디요들은 중남미 독립전쟁과 이후 국가건설과정에서 더욱 심해진 자유주의자들과 보수주의자들의 분쟁 속에서 이념의 옳고 그름에 치우치기보다는 자신들의 정치경제적 이득에 도움이 되는 쪽으로 움직이는 실사구시적 입장을 가지고 있었다. 이들은 자유주의자와 보수주의자들 간의 분쟁 속에서 어느 한쪽 편을 무력으로 지지하였다.


 19세기 전반기 중 자유주의 이념은 스페인과 포르투갈의 식민통치로부터의 해방이라는 담론이었지만 후반기에는 국가건설(Nation Building) 과정에서 매우 중요한 실천적 도구이었다. 당시의 정치 지도자들은 스스로 자유주의자임을 자처하며 나름대로의 자유주의 이념을 설파하였고 헌법에 재산권 보장, 시장경제, 시민권과 인권의 보장, 법 앞의 평등 등을 삽입하고 이를 위한 국가제도와 기관을 형성하는 등 구체적인 실천도구로 활용했다.


 자유주의자들은 식민지 시대부터 이어져  세습 특권, 중상주의, 국교로서의 가톨릭 교회, 왕권 등을 배격함으로써 이들을 지키고자 했던 보수주의자들의 저항을 받았다. 이러한 저항은 종종 개별 국가별로 내전 상황에 이르기도 했다. 내전 등에도 불구하고 19세기  중남미 정치는 대체적으로 이들이 주도하였다.


 20세기 들어서면서 자유주의자들의 중남미 정치 주도력은 급속하게 쇠퇴하기 시작했다. 자유주의 이념과 가치는 지향하는 목표와는 다르게 실망스러운 성과를 냈으며 또한 구호와도 다르게 자유민주주의가 아닌 독재정치로 흐르는 경우가 많았다. 이 결과 발생한 다양한 정치 사회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대안으로 실증주의(Positivism)적 대안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실증주의는 정치 사회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과거의 경험과 관찰에 바탕을 둔 과학적 접근이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이에 따라 당시에 발생하고 있는 정치 사회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자유주의 이념에 따라 헌법이 보장하고 있는 자유의 가치가 ‘질서와 발전(Order and Progress)'이라는 실증된 가치에 의해 제한되어야 한다는 담론이 정치사회의 동의를 받으면서 19세기 중후반기를 주도했던 자유주의자들의 정치권력은 급격하게 쇠퇴하였다..


 이 결과 20세기 초기부터 중남미 개별 국가별로 시기와 수준의 차이가 있지만 권위주의 정부, 정부 주도 경제운용, 보호무역 정책의 실시 등 자유주의 이념과 상반된 보수적이고 권위주의적인 정치적 환경이 조성되어 유지되었다. 이러한 상황은 1970년 대 말까지 이어졌는데 1980년대 중남미 외채위기를 맞이해 자유주의 이념이 ‘신자유주의’라는 모습으로 새롭게 다시 등장했다.


 신자유주의 이념은 정치적으로는 자유민주주의 확산 그리고 경제적으로는 '워싱턴 컨센서스(Washington Consensus)'로 불리는 신자유경제정책이 실시로 나타났다. 이 결과 정치적으로는 권위주의적 군부독재정권이 무너지고 민선정부가 들어서 억눌렸던 시민권과 인권이 회복되었다. 또한 경제적으로는 중남미 경제의 고질이었던 하이퍼 인플레와 외환부족 상황을 해결하고 거시경제적 성장을 이루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자유주의 경제정책은 경제적 불평등을 해결하지 못한 채 '가난한 다수 대중(The Poorest Majority)'을 만들어 냈고 이들이 정치일선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계기를 만들었다. 그리고 그 '가난한 다수 대중'들이 21세기 들어 확산된 자유민주주의 체제가 보장하는 선거를 통해 대중영합적 좌파정권을 확산시키는 동력이 되었다..


 중남미 좌파정권의 물결은 개별 국가별로 그 수준의 차이가 있지만 자유주의 정치이념을 왜곡하고 신자유주의 경제정책을 배제하면서 중남미 자유주의적 압지를 상당한 수준으로 후퇴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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