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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기현서 Sep 23. 2022

콜롬버스의 교환
(Colombian Exchange)

 유럽인들의 아메리카 대륙 도착은 그동안 존재도 모른 채 서로 떨어져 있던 구대륙과 신대륙이 비로소 접촉을 하게 되는 역사적 계기이었다. 이 접촉으로  양 대륙 간 생활환경의 변화가 발생했는데 그 변화 범위는 인종, 동식물, 질병, 문화 등을 포함해 매우 광범위하다. 이를 총체적으로 말해 ‘콜럼버스의 교환(The Columbian Exchange)’이라고 한다.


 우선 인종과 동식물의 교환이 먼저 이루어졌다. 인종 간 교환은 매우 자연스러운 것이다. 초기에는 스페인과 포르투갈로부터 백인 유럽인이 유입되었지만 노예무역이 이루어지면서 아프리카로부터 흑인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동식물은 유럽인들이 필요에 의해 의도적으로 가져온 것이 다수이다. 그러나 흑색 또는 갈색쥐와 같이 선박의 화물에 숨어 들어오거나 지중해 잡초와 같이 목축용 가축의 털 속에 풀씨 형태로 붙어 들어온 뒤 토종 풀을 대체해 버린 경우도 있다. 병균과 바이러스도 의도와 관계없이 전파되어 면역력이 없는 많은 원주민의 생명을 빼앗아갔다. 


 특히 양 대륙 간 식물의 교환은 전 세계 인류의 삶의 방식과 자연의 풍경을 변화시킬 정도로 그 영향이 컸다. 아메리카 대륙은 중앙아메리카, 안데스, 동부 브라질 등 3개 지역을 중심으로 서로 다른 농작물이 재배되고 있는데 이러한 농작물들이 유럽 농업 시스템 속으로 매우 빠르게 유입되어 생활방식에 변화를 주었다. 


 가장 중요한 사례는 감자이다. 감자는 안데스 산맥 지대에서 재배되는 작물인데 1600년대에 북유럽에 소개된 뒤 확산되어 유럽 농촌인구 증가에 크게 기여했다. 그러나 1840년대 아일랜드에서는 감자잎 병의 만연으로 감자 기근이 들어 인구의 20%가 사망하는 원인이 되기도 했다. 


 카사바 속(屬) 뿌리 식물인 마니옥(Manioc)은 일명 유카(Yuca)라고도 불리는데 유럽을 거쳐 아프리카로 들어가 서아프리카 지역의 주식의 하나가 되기도 했다. 


 안데스 지역에서 재배되던 옥수수도 아프리카 지역에서 매우 중요한 식량자원이 되었다. 그러나 유럽에서는 가축사료로 사용되었다. 


 토마토가 빠진 이태리 음식은 상상하기 힘들다. 토마토는 중앙아메리카에서 재배되던 식물이 유럽에 전해진 것이다. 


 땅콩은 남미에서 경작되던 것이 유럽을 통해 인도, 중국, 서아프리카로 퍼져 나갔다. 서아프리카의 피넛 수프 그리고 미국과 캐나다의 피넛 버터를 생각해보라. 


 메소아메리카의 아스텍 제국에서 제사용 또는 물물교환용으로 귀하게 사용되던 카카오 콩이 스위스와 화란의 초콜릿으로 변신하였다. 카카오 콩은 이후 유럽을 거쳐 서아프리카로 건너갔는데 현재 카메룬, 아이보리코스트, 나이지리아 등 국가가 전 세계 생산량의 2/3를 공급하고 있다는 것은 다소 역설적이다. 


 유익한 식물만 교환된 것은 아니다. 담배가 그 사례이다. 담배는 1550년대 까지 유럽을 포함한 아시아, 아프리카, 호주 등지에서 알려지지 못했다. 그러나 16세기 하반기 아메리카 원주민이 제사에 사용하거나 활력 유지를 위해 말려서 말아 피우던 것이 유럽을 통해 전 세계에 퍼지고 오늘날의 담배 산업이 되었다. 


 한편 유럽의 농작물과 농업시스템의 아메리카 대륙 이식도 아메리카 대륙의 농업 풍경을 바꾸었다. 우선 밀, 포도, 낙엽과수, 올리브 등 지중해성 농작물이 기후가 허락하는 지역에서 재배되었다. 


 밀은 멕시코에서 칠레에 이르기까지 선선한 고원, 내륙 계곡, 개방 평야 등지에서 경작되었고 포도, 낙엽과수, 올리브 등은 이보다 제한된 지역에서 재배되었다. 특히 20세기 초반 이후 아르헨티나 팜파스는 세계의 밀 경작지가 되었고 칠레 중부 계곡은 과수 산지가 되었다.


 동물의 교환은 식물과는 다르게 아메리카 대륙이 유럽에 영향을 주지 못했다. 중남미에서 서식하는 야마(llama)나 알파카(alpaca) 등은 유럽에서 흥미 이상의 관심을 끌지 못했다. 다만 칠면조 정도가 유럽인이 식용으로 사용할 수 있는 동물로 간주되었다. 


 한편 유럽에서 사육되었던 동물들이 아메리카 대륙으로 이식되어 목축업의 근간이 되고 아메리카 대륙의 생활방식, 풍경, 경제구조를 바꾸었다. 즉. 소, 말, 당나귀, 염소, 양, 돼지 등이 유입되어 광활하고 비옥한 초원에서 사육되었다. 이 결과 목축업은 광업과 함께 중남미 식민지 경제의 중요한 축이 되었으며 지금까지 그 중요성이 계속되고 있다. 


 유럽 동식물의 중남미 이식과 함께 농업과 축산업 시스템도 함께 들어와 자리를 잡았다. 각 지역마다 많은 목장과 농장이 만들어졌는데 그 운영방식에 따라 아시엔다(Hacienda), 파젠다(Fazenda), 에스탄시아(Estancia), 폰도(Fondo), 란초(Rancho) 등으로 불리었다.


 정복자로 온 유럽인은 의도적인 것은 아니었지만 병균과 바이러스를 유입시켜 면역력이 없는 많은 원주민들의 사망을 유발해 원주민 인구감소를 가져왔는데 이것이 아프리카 흑인 노예 유입의 계기가 되었다. 


 특히 유행성 감기(Influenza), 발진티푸스(Typhus), 홍역(Measles), 볼거리(Mumos), 황열병(Yellow Fever), 말라리아(Malaria), 천연두(Smallpox) 등이 중남미 원주민들에게 매우 치명적이었다. 콜럼버스가 아메리카 대륙에 도착했던 1492년 기준 원주민 인구는 약 5천만 명 수준이었으나 1세기가 지난 뒤 원주민 인구는 90%가 줄어들었다. 


 콜럼버스의 교환의 백미는 인종 간 혼혈이다. 정복자로 온 유럽 백인과 아메리카 원주민 사이의 혼혈은 메스티소(Mestizo), 흑인과의 혼혈은 물라토(Mulatto)라고 불렀다. 아메리카 원주민과 흑인과의 혼혈은 잠보(Zambo)로 불리면서 인종적으로 가장 큰 차별을 받았다.  


 콜럼버스의 교환은 역사적 일화가 아니며 현재도 진행되고 있는 현상이다. 이민을 통해 인구가 끊임없이 교환되고 있고 동식물의 이동도 계속 이루어지고 있다. 예를 들면 노르웨이 연어 양식 산업이 자연환경이 비슷한 칠레 남부에서 그대로 이어져 칠레의 중요한 수출산업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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