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남미는 300여 년 동안 이베리아 반도 국가들인 스페인과 포르투갈의 식민지배를 받았다. 이 결과 중남미에는 이베리아 반도의 역사적 그리고 문화적 유산(Iberian Heritage)이 깊게 뿌리내리고 있다. 그리고 이 문화유산은 중남미 정치, 경제, 사회 등 모든 부문에서 보이지 않는 강력한 영향을 주고 있다.
그렇다고 중남미 문화가 이베리아 반도 문화의 복사판이라는 것은 아니다. 중남미에는 인디오 원주민들의 전통문화에 이베리아 문화가 더해졌고 아프리카 흑인 노예의 유입과 19세기 말부터 시작된 유럽인들의 이주로 인해 중남미는 다양한 인종과 문화가 서로 혼합되어 유럽 등 서구 문화와 차이를 보여주는 중남미 고유의 문화가 형성되어있다. 또한 중남미 지리와 기후환경이 문화 형성에 주는 영향도 매우 크다는 것을 생각해보면 더욱 그렇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남미에서 활동을 하다 보면 불가피하게 이베리아 반도의 역사적 그리고 문화적 유산을 접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경험하게 된다. 특히 현재의 중남미 사회 상황과 부진한 경제개발을 얘기할 때 이베리아 문화유산이 종종 언급되고 있다.
이베리아 문화는 토착문화에 이베리아 반도를 지배했던 로마제국과 무어족(Moors)의 가치와 문화적 속성이 혼합된 것으로 중남미 식민지로 이식되었다. 우선 식민지 정복 시기에 스페인 왕실은 식민지 정복자들에게 정복지를 통치할 수 있는 총독의 지위를 부여하면서 라틴푼디오(Latifundio)라는 대규모 사유지 농장 소유권을 주었다.
이는 로마제국이 이베리아 반도를 점령하는 과정에 군인들이 점령 후 현지에 정착하는 것을 장려하기 위해 라티푼디움(Latifundium)이라는 대규모 사유 농장을 주었던 것에서 시작한 것으로 이렇게 형성된 대규모 농장 체제는 중세를 넘어서 계속 이어졌고 결국 중남미에까지 이식된 것이었다.
참고로 잉카제국을 정복한 프란시스코 피자로(Francisco Pizarro)도 1529년 잉카제국을 정복할 경우 총독의 지위를 스페인 왕실로부터 보장받은 뒤 1533년 잉카제국의 수도인 쿠스코에 입성했다. 그는 1535년 지금의 페루 수도인 리마를 건설하고 잉카제국의 전 영역을 통치했으며 자신을 포함한 부하들에게 대규모 영지를 나누어 주었다.
라티푼디오는 필연적으로 착취적인 경제 사회적 구조로 운영되었다. 즉 소규모 인구를 구성하는 농장 소유주(Latifundista)가 독점적 권력을 가지고 자유인으로서의 소작농, 노예들을 통제하며 착취하는 구조이었고 이를 통해 부를 계속 축적하고 세습하였다.
이러한 경제 사회적 구조 속에서 농장주는 결과적으로 농장에 종속되어 생계를 영위해 나가는 다양한 계층의 가부장으로서의 위치를 유지할 수밖에 없었는데 이러한 상황은 여러 가지 문화를 형성하는 결과를 가져왔다. 우선 소규모 인구를 구성하는 농장 소유주 등 상류층과 그렇지 못한 하류층 간의 경직된 계층주의, 개인우월주의(Personalism), 가부장주의(Parentalism), 숙명론(Fatalism), 족벌주의(Nepotism) 등이 그것들이다.
그리고 이러한 문화로부터 만들어진 결과는 부패, 범죄, 폭력, 남용 등이며 현재에도 중요한 정치 경제 및 사회적 이슈가 되고 있다.
사회적 계층은 처음에는 상류층인 백인과 인디오 원주민이라는 하류층으로 양분되었다. 그러나 식민지 경영이 진척되면서 상류층인 백인도 이베리아 반도 출신과 중남미 출신으로 나뉘어 차별화되었고 다시 토지소유 계층과 전문인력 계층으로 나뉘는 등 백인들 내부에서도 계층이 만들어졌다. 하류 계층은 인디오 원주민에서 출발했으나 백인과의 혼혈로 메스티소(Mestizos)라는 인종이 형성되어 인구가 크게 늘어나 이 계층에 속했다. 또 아프리카로부터 흑인 노예들이 유입되고 백인 또는 인디오 원주민, 메스티소 간의 혼혈이 생겼다.
이렇게 형성된 다양한 인종과 경제적 부를 배경으로 다시 상류층, 중류층, 하류층 등 사회적 구분이 형성되었다. 또 각 계층 내에서도 피부색의 농도, 경제적 부 등의 조건에 따라 심리적 계층은 더 깊고 다양하게 형성되었다. 아직도 '저 사람은 나보다 더 검다'라는 표현이 있을 정도로 심리적 계층 간 괴리감은 크다. 이러한 계층 간 거리는 아직도 중남미 사회에서 보이지 않게 잘 작동하고 있는 문화적 현상이다.
개인우월주의(Personalism)는 타인의 영역에 영향을 줄 수 있는 개인의 능력을 자신의 명예와 존재가치로 여기는 의식을 의미하고 있다. 이는 구체적인 일상생활에서 특정한 호의나 영향력을 서로 주고받는 관계 즉 인맥형성의 형태로 나타나고 있다. '신뢰할만한 사람', 피를 나눈 관계'라고 말하면서 법과 규범의 위반과 회피를 일으키는 중요한 문화적 배경이 되고 있다.
가부장주의(Parentalism)는 대규모 농장주가 가부장의 입장에서 농장과 연관된 소작농, 자유인으로서 고용된 노동자, 노예들의 생계를 책임지고 보호해주는 대신 그들로부터 노동과 충성을 되돌려 받는 관계이었다. 물론 양자 간의 관계는 힘의 균형이 가부장 쪽에 쏠려있었기 때문에 당연하게 착취와 폭력이 수반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은 이를 운명적으로 받아들였으며 족벌주의와 숙명론의 배경이 되었다.
이러한 가부장주의적 문화는 현재까지 정치 경제 및 사회 전반에 당연한 것으로 녹아들어 가 있다. 중남미 정당정치도 가부장적 위치에 있는 특정 정치인이 중심이 되어 세력이 뭉쳐 움직이는 행태를 보여주고 있으며 이 결과 중남미 정당과 정부에 팽배해 있는 엽관제(Spoil System)의 배경이 되고 있다.
숙명론(Fatalism)은 중남미 사회에 팽배해 있는 심리적 상황으로 중남미인들은 의식적 또는 무의식적으로 '자신들의 운명은 대부분 숙명적으로 이미 결정되어있고 이를 변경한다는 것은 어렵다'라고 믿으며 스스로 현실상황을 받아들인다는 것이다.
따라서 사회적 계층 관계도 이미 이미 사전에 예정된 것이므로 이에 대한 저항을 하기보다는 대부분 숙명론으로 받아들이고 적응하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이러한 문화 인식은 중남미인들의 모든 일상생활에서 수시로 엿보이고 있다. 중남미인들이 복권 구입에 관심을 크게 가지고 있는 것도 숙명론이 그 배경에 있음을 알 수 있다.
족벌주의(Nepotism)는 중남미의 오래된 관습이다. 또한 가부장주의와 개인주의와 서로 연관되어 있기도 하다. 식민지 시대부터 기득권을 유지해온 상류계층은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 결혼 등 각종 연대 방안을 찾아 자신들만의 보이지 않는 기득권 공동체를 유지하며 족벌주의에 바탕을 둔 정치 및 경제권력을 독점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중남미인들도 숙명론에 젖어 이를 저항 없이 받아들이고 순응하는 경향을 보인다.
이러한 문화적 배경은 중남미 사회의 고질인 부패, 범죄, 폭력 상황을 더욱 악화시켜왔다. 그러나 21세기 들어서 대의민주주의가 확산되고 가난한 다수(The Poorest Majority)의 의식이 깨우쳐지며 시민사회운동이 활발해지면서 이를 타파하려는 움직임이 점점 강화되며 확산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