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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기현서 Sep 20. 2022

인디오 문명

 콜럼버스가 1492년 신대륙에 도착하기 이전 시기 이 지역에 거주하고 있던 인디오 원주민의 규모는 학자들의 연구결과에 따라 1,200만 명 수준에서 1억 명에 이르기까지 차이가 나고 있다. 대체적으로 볼 때 이베리아 반도의 역사적 유산에 호감을 가지고 있는 학자들은 당시 인구 규모를 작게 추산하고 있는데 이는 이베리아 반도 정복자들에 의해 인디오 원주민 인구가 결과적으로 크게 감소했다는 비난을 줄이기 위한 것으로 간주되기도 한다.


 당시 인구 규모에 대한 데이터도 없고 정복자들이 그나마 존재했던 기록물들을 모두 파괴하였기 때문이다. 다만 당시 거주지역의 면적, 식품 생산 규모 등을 추정하여 그 규모를 짐작해 볼 뿐이다.


 콜럼버스의 신대륙 도착 이전에 5천여 개의 인디오 원주민 부족들이 멕시코, 중미, 카리브, 남미에서 나름대로의 정치 사회적 체제를 만들어 거주하고 있었다. 이들은 중남미 지형이 산맥, 사막, 고원, 열대우림, 대초원 등으로 서로 단절되어 있기 때문에 고립되기 쉬었고 언어와 관습 등이 차이가 있어 소통이 어려운 환경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제한된 범위에서나마 상당한 수준의 교역과 교류를 계속하였다.


 인디오 부족들은 거주지역 및 생활방식 그리고 사용언어 등 다양한 기준에 따라 크게 서부 고원지대 인디오 원주민 그룹과 중동부 저지대 및 카리브 원주민 그룹 등 두 개로 나뉜다.


 서부 고원지대 인디오 원주민 그룹은 다시 크게 아즈텍(The Aztecs), 마야(the Mayas), 칩차(The Chipchas) 그리고 잉카(The Incas)로 나뉜다. 여기에서 아즈텍과 잉카는 콜럼버스 도착 시기에 이미 광대한 영토를 가지고 있는 제국을 이루고 있었다.  다만 마야는 9세기부터 쇠퇴하기 시작해 콜럼버스 도착 당시에는 많은 마야족 인디오 원주민들은 그들이 건설해놓았던 도시를 버리고 열대우림으로 흩어지거나 유카탄 반도의 치첸이자(Chichén-Itzá)와 같이 북쪽의 톨텍(Toltec) 부족 등의 지배를 받는 등 이미 몰락한 상태이었다. 칩차는 콜롬비아 쿤디나마르카(Cundinamarca) 분지와 동부 산맥(Estern Cordillera)을 중심으로 형성된 문화로 이즈텍과 잉카에 비해 그 세력이 강하지 못했다. 아즈텍과 잉카제국의 정치 사회체제의 근간은 정복과 조공체제이었다.


 중동부 저지대 및 카리브 원주민 그룹은 서부와는 다르게 수렵, 화전, 어업에 의존하여 생계를 이어가는 부족들을 중심으로 이루어졌다. 주요 부족은 멕시코 북부의 치치멕(Chichimec), 칠레 남부의 아라우칸(Araucan), 초노(Chono), 알라카루푸(Alacaluf), 야간(Yaghan), 오나(Ona), 테후엘체(Tehuelche), 푸엘체(Puelche), 파라과이와 아르헨티나의 과라니(Guaraní), 브라질의 투피(Tupi), 헤(Gé)그리고 카리브의 아라왁(Arawak), 시보네이(Ciboney), 카리브(Carib) 족 등이다. 이 중 아라우칸 족에 속한 마푸체(Mapuche) 족들은 19세기 말까지 정복되지 않았다.


 중남미 인디오 문명을 얘기할 때 흔히 아즈텍, 잉카, 마야 문명을 언급한다. 아즈텍 문명은 14세기 초 멕시코 북부에서 남하한 아즈텍 족이 1325년 멕시코 중부고원에서 테노치티틀란(Tenochtitlán)이라는 도시를 건설한 것에서부터 시작한다. 이들은 스스로를 멕시카(Mexica)라고 불렀는데 인근 지역을 정복해 복속시켜 나가며 제국을 건설했다.


 스페인 정복자 헤르난 코르테스(Hernán Cortés)가 1519년 테노치티틀란에 도착했을 때 도시규모가 20만 명에 달했다고 한다. 아즈텍 제국은 1521년 허무하게도 헤르난 코르테스 소규모 군대의 공격을 받고 패배해 몰락했다. 테노치티틀란은 지금의 멕시코시티이며 스페인은 이곳에 최초로 뉴스페인 부왕청울 설립해 중남미 식민지 통치의 주춧돌을 놓았다.

 잉카제국의 기원은 신화에 쌓여있다. 그들의 최초 왕인 만코 코팍(Manco Copac)과 그의 자매이자 부인인 마마 옥요후안코(Mama Ocllohuanco)가 티티카카 호수(Lake Titicaca)에 있는 섬에서 태양신 인티(Intí)로부터 태어나 세상을 가르치고 지배하라는 지시를 받았다고 한다.


 아들은 이 지시에 따라 13세기 쿠스코 계곡(Cuzco Vally)으로 남하해 쿠스코 지역 원주민을 흡수하고 쿠스코 왕국(Kingdom of Cuzco)을 세운 뒤 세력을 확장했다.

 

 쿠스코는 케추아어(Quechua Language)로 '중앙' 또는 '배꼽'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는데 이는 쿠스코가 세상의 중심임을 뜻한다. 잉카 제국은  이후 15세기까지 계속 확장해서 티티카카 호수 남부지역 아이마라 부족을 정복하고 태평양 연안 저지대 그리고 칠레 남부 마울레 강(Maule River) 북쪽까지 세력을 확장해 전체 영토의 남북 길이만 4,000 킬로미터에 달했다.  


 잉카제국은 정치 사회적으로 매우 탄탄하게 조직되었고 기술 수준이 높았으나 1532년 스페인의 프란시스코 피자로(Francisco Pizarro)가 이끈 소규모 군대의 정략과 공격으로 패망했다. 잉카제국의 아타후알파(Atahualpa) 왕은 1533년 처형되고 제국은 일단 무너졌다. 그러나 아타후알파 왕의 형제인 만코 잉카 유판키(Manco Inca Yupanqui)가 다시 스페인에 저항하였고 이 저항은 그의 아들 투팍 아마루(Tupac Amaru)에 까지 이어졌으나 1572년 그도 전쟁에서 패해 처형당했다.


 마야문명은 기원전 3000년 경에 중미 고원에서 형성되어 북부로 뻗어 유카탄 반도(Yucatán Peninsular)에까지 이르렀다. 기원전 7세기경에 도시들이 과테말라 북부 저지대, 멕시코 동남부 지역, 벨리스 북부에 형성되기 시작했다고 한다. 기원 후 3세기경에는 영토를 온두라스 북부의 코판 강 계곡(Copán River´s Valley) 그리고 멕시코 걸프만 타바스코(Tabasco)까지 세력을 확장했다.


 마야 도시들의 규모는 4~4.5만 명 수준으로 50여 개에 달하는 독립국가들과 협력을 하면서 관계를 형성해왔다. 그러던 것이 8~9세기부터 쇠퇴하기 시작해 10세기에는 중부 멕시코의 똘덱(Toltec) 부족에게 유카탄 반도를 점령당하기도 했다. 이후 13~15세기 중 일시적으로 흥하기도 했으나 결국 스페인 군의 침입 전에는 사실상 멸망했다. 마야문명의 몰락 원인을 밝혀내기 위해 많은 연구가 진행되었고 전쟁설, 기근설, 사회체제 붕괴설, 전염병 확산 등 다양한 주장이 나왔으나그 어떤 것도 일관성 있는 지지는 받지 못하고 있다.


 인디오 문명은 스페인의 정복으로 급격하게 무너졌다. 특히 스페인 정복자들의 인디오 문명의 파괴와 함께 많은 인디오 원주민들이 살상되거나 광산과 농장에서 과중한 노동착취로 사망함으로서 인구가 크게 감소했다.  여기에 신대륙에 존재하지 않았던 각종 전염병이 확산은 인디오 원주민 전체인구 감소에 결정적 원인이었다. 주요 전염병은 선페스트(bubonic plague), 홍역, 인플루엔자, 디프테리아, 백일해, 발진티푸스, 결핵 등이었다. 말라리아와 황열병은 아프리카 흑인이 신대륙에 유입되며 확산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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