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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기현서 Oct 02. 2022

20세기 이후 중남미 경제 돌아보기

 20세기 중남미 경제는 크게 두 번의 성장기를 경험했다. 첫 번째는 20세기 초부터 시작해 1929년 세계 대공황 시작할 때까지이다. 두 번째는 개별 국가별로 차이가 있지만  1930~50년대 중 어느 시점부터 시작해 1980년대 초까지이다.


 첫 번째 성장기인 20세기 초 중남미 국가들은 신생 독립국가의 모습에서 벗어나 경제성장에 필요한 철도, 항만, 도로 등 물리적 인프라 건설과 함께 중앙은행 설립, 세관 확충, 세제 개혁 등 제도적 인프라를 갖추기 시작했다. 또한 문맹퇴치를 위해 교육제도를 정비하는 등 인간개발에도 노력을 했다.


 두 번째 성장기는 물리적 인프라 확충과 각종 제도 정비에 힘입어 제조업과 서비스 산업이 성장하고 인간개발 개선에 따른 노동생산성도 높아져 역내 전체적으로 경제가 안정적으로 운영되던 때이었다.  


 이러한 경제성장에도 불구하고 식민 시대부터 계속되고 있는 부의 불공평한 분배는 전혀 개선되지 않고 중남미 경제의 뿌리 깊은 고질이 되었다. 특히 중남미 경제정책 입안자들은 대부분 식민 시대부터 이어온 기득권 계층들이었기 때문에 부의 불공평한 분배는 경제성장 시기에도 변함없이 유지되었을 뿐만 아니라 일반인들도 이를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는 운명론적인 인식을 가지고 있었다.


 기간 중 경제성장의 구체적 성과는 개별 국가 간 차이가 있다. 이 차이는 성장과정 중 발생한 크고 작은 경제위기를 어떻게 극복할 수 있었는가에 따라 결정되었다. 예를 들면 1차 경제성장 시기에는 경제성장이 일차산품 붐을 포함한 몇 가지 전제조건의 존재 여부에 달려있었다. 전제조건 중 가장 중요한 것들은 정치적 안정, 수출 가능 일차산품 다양성, 국내 시장 규모 등이었다.


 이 중 정치적 안정이 가장 중요했다. 일차산품 수출로 발생한 부가 불공평하게 분배되어 이에 대한 사회적 저항이 강해지면 정치적 긴장이 발생하고 정국 불안으로 이어져 경제성장을 저해하였다. 1910년에 발생해 10년 동안 계속된 ‘멕시코 혁명’이 그 사례로 멕시코는 이 혁명이라는 명칭의 내전으로 인해 이 시기 경제성장에 큰 어려움을 겪었다. 당시 멕시코 정부는 경제성장보다는 군비 충당에 더 급급했다.

 1929년 세계 대공황 발생으로 일단 침체를 경험한 중남미 경제는 곧바로 회복되기 시작했다. 대부분 국가들은 수입대체를 위한 산업화와 국내 시장을 위한 농업개발 정책을 실행해 경제를 빠르게 회복시켰다. 회복의 속도는 개별 국가 별 차이가 있다. 브라질과 콜롬비아가 가장 빠른 회복세를 보여 주었으며 과거 농축산물 수출을 주도한 아르헨티나와 쿠바 등은 여러 가지 국내적 요인 때문에 성장 속도가 느렸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역내 국가들의 수입대체 산업화가 빠르게 진행되면서 중남미 경제는 상당한 성장세를 계속 유지했으나 기간 중 거시 경제적 불균형이 누적되어 1980년 초 외채위기 상황에 처하게 되었다.


 전대미문의 외채위기를 맞이해 개별 국가들은 그 대응방식과 수준, 보유자원, 산업, 정부역량 등에 따라 위기극복 성과와 시기에 차이를 보였다. 중남미 국가 중에서 칠레는 가장 모범적으로 외채위기를 극복해 21세기 들어 안정적인 경제성장을 할 수 있는 기틀을 마련했다.


 중남미 외채위기는 반세기 가깝게 중남미 경제의 성장모델이었던 수입대체 산업화 전략을 폐기시키고 워싱턴 컨센서스로 구체화된 신자유주의 경제성장모델이 새로운 대안으로 등장하는 계기를 만들었다.


 워싱턴 컨센서스는 신자유주의 경제 패러다임의 구체적인 정책처방이다. 1990년대 미국 등 서방 국가들이 중남미 국가들에 대해 제시하였던 미국식 시장경제체제 확산 전략이다. 이 용어는 1989년 미국 국제경제연구소의 정치경제학자 존 윌리엄슨이 당시 경제위기로 어려움을 겪고 있던 중남미 국가들에 대한 개혁 처방을 워싱턴 컨센서스(Washington Consensus)로 명명한 데서 유래하였고 1990년대 초 미국의 재무부, 국제통화기금(IMF), 세계은행(World Bank) 등 미국 워싱턴에 있는 기관들의 논의를 거치면서 개념이 정립되었다.


 워싱턴 컨센서스는 외채지불불능으로 덜미가 잡힌 중남미 국가들에게 조건부로 부과한 경제구조조정 방향으로서 정부예산 삭감, 자본시장 자유화, 외환시장 개방, 관세 인하, 국가 기간산업 민영화, 외국자본에 의한 국내 기업 합병ㆍ매수 허용, 정부 규제 축소, 재산권 보호 등의 정책을 포함하고 있다. 실제로 이러한 정책들은 동구 사회주의 국가의 체제 전환과 1990년대 후반 아시아의 외환위기 극복과정에서도 채택되었다. 그러나 이 정책은 세계의 경제시스템을 미국의 자본과 기업이 진출하기 쉽게 만들어 미국의 이익을 증진시키기 위한 것이라는 비판도 있다.


 중남미 국가들은 경제의 패러다임을 신자유주의로 바꾼 뒤 실시된 워싱턴 컨센서스 실시로 그동안 경제 운용의 고질이었던 하이퍼 인플레이션을 진정시켰고 정부 재정 상황이 개선되었으며 동시에 경제도 성장세를 보여주는 등 거시경제 지표상의 안정과 성장이라는 긍정적 성과를 이루었다.


 그러나 워싱턴 컨센서스 정책 방향에 따라 실시된 정부 규모의 축소, 국영기업 민영화, 시장개방에 따른 국내 기업의 도산 등으로 많은 실업이 발생하였다. 또한 국영기업 민영화 과정에서 정부와 정치권 그리고 국내외 기업들이 결탁해 많은 부정부패가 발생했다. 국영기업 민영화는 정부 보조금으로 저렴하게 제공되었던 수도, 전기, 가스 등 기초 공공서비스 가격을 인상시켰으며 민영화 기업들의 이익만 증대시켰다.


 중남미에서 실행된 신자유주의 경제정책은 결과적으로 모든 국가에서 빈부의 차이를 더욱 악화시켰으며 가난한 다수 대중(The Poorest Majority)의 규모를 늘렸다. 이들은 결국 '신자유주의 경제정책 배격'과 정부 주도 사회복지를 늘리겠다는 대중영합적(Populist) 좌파 지도자들의 정치적 자산이 되어 21세기 중남미 좌파정권의 확산을 가져왔다.


 새롭게 정권을 담당한 중남미 좌파정권들은 원론적으로 신자유주의 경제정책을 지양하고 경제에 대한 정부의 역할을 증대시켰다. 다만 그 수준과 방식에는 많은 국가들 간에 큰 차이가 있다. 베네수엘라와 같이 급하게 신자유주의 경제정책을 폐기하는 국가도 있지만 칠레와 브라질과 같이 신자유주의 경제정책의 근간을 해치지 않으면서 사회복지 확대 정책을 취하며 균형을 유지하는 국가들도 있었다.


 특히 좌파정권들은 신개발주의를 주장하며 자원개발 확대를 통한 경제 사회개발 정책을 추진했다. 신개발주의는 자원개발을 과거와 같이 다국적 기업 등 민간자본에게만 의존하지 않고 정부가 적극 참여하여 국가와 정부의 수익을 늘리고 이렇게 해서 조성된 재원을 가지고 산업발전과 사회복지 확대를 도모한다는 논리이다. 그런데 이 시기는 중국 경제의 성장 등 국제 경제가 확대하고 있어 자원의 국제 가격 상승 사이클이 10년에 이르는 등 경제환경이 우호적이었다.


 좌파정권들은 개선된 정부 재정과 자원개발을 포함한 중남미의 개선된 경제상황을 보고 유입된 외국인 투자 확대로 경제상황이 좋아졌다. 특히 사회복지 확대로 빈곤이 개선되고 중산층이 확대되는 등 사회정책의 성과를 보여주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은 자원 수익에 기반한 사회복지정책만 확대하고 적절한 산업개발정책을 실행하는 데 성공하지 못함으로써 이어진 자원의 국제 가격 2012년 후반기부터 나타나기 시작한 자원의 국제 가격 하락의 여파를 견디지 못했다.


 경제상황의 악화는 그동안 정부의 수혜를 받아왔던 가난한 다수 대중의 사회적 저항으로 이어졌으며 좌파정권이 퇴출되고 중남미 전체적으로 우파정권이 출현하는 계기가 되었고 새롭게 등장한 우파 정권은 다시 신자주유주의 경제정책으로 회귀하였다. 다만 그 수준은 역시 개별 국가별로 차이를 보여주고 있다.


 중남미 경제 운용 패러다임은 국내외적 요인과 상황에 따라 계속 바뀌어왔으며 그 배경에는 자원경제가 있다. 정치적 환경보다는 실제적으로 자원의 국제 가격의 상승과 하락이 중남미 경제정책 방향에 큰 영향을 주고 있다. 이러한 상황은 향후에도 충분하게 예상되고 있는 것인데 다만 중남미 경제도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과거보다는 더 개선되고 조화가 강조되는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다는 것을 감안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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