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카인은 남미 서부 지역, 즉 콜롬비아, 페루, 볼리비아, 에콰도르에서 재배되는 코카(Coca) 식물의 잎에서 추출한 향정신성 물질이다. 코카인이 인체에 주입되면 뇌의 보상회로(Reward Pathway)를 활성화시켜 쾌감, 흥분, 만족감 등을 일으키고 자주 사용하면 중독성에 이른다.
코카 잎은 오래전부터 인디오 원주민들이 습관적으로 씹어 즙을 먹어왔다. 이는 추위나 배고픔 그리고 육체적 통증 등을 이기는 수단으로 사용되며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는데 이제는 인디오 원주민 공동체의 문화현상으로 인정되고 있다.
참고로 스페인 정복자들이 중남미에 들어온 뒤 코카 잎을 '악마의 전령(evil agent of devil)'이라고 부르며 사용을 금지했지만 인디오 원주민들이 코카 잎을 씹지 않은 상태에서는 노동을 하지 못한다는 것을 알고 다시 사용하게 하였다. 서구에서는 19세기 후반에 코카 잎에서 코카인 액을 추출해 진통제 등 의약품으로 사용되었다.
코카 잎에서 추출된 코카인은 코카인 반죽(Coca Paste)으로 만들어져 갈거리에서 밀매되었다. 그 순도는 40~91%로 다양한데 보통 담배나 대마초에 섞어 사용되었다. 콜롬비아에서는 이를 바수코(Basuco) 그리고 아르헨티나, 우루과이, 브라질 등에서는 파코(Paco)로 불렸다.
1960년대 후반 콜롬비아에서 납치나 절도 등 불법행위를 해오던 파블로 에스코바르(Pablo Escobar) 가 1970년 대 초반부터 페루, 볼리비아 등에서 코카인 반죽을 수입해 순도가 높은 코카인 파우더로 정제하였다. 그리고 이를 뉴욕(New York)과 마이애미(Miami)를 통해 미국 전역에 불법으로 공급하기 시작했으며 이를 기반으로 메데인 카르텔(Medellín Cartel)을 결성했다.
1960~1970년대 기간 중 세계적으로 향정신성 물질에 대한 수요가 급증하였고 콜롬비아는 코카인의 불법 생산, 가공, 유통의 중심지역이 되었다. 코카인이 유통되기 이전 1970년대 전반기까지 주로 마리화나가 미국으로 밀수출되었지만 1970년대 후반부터 코카인이 헤로인과 함께 주종 밀수출 마약으로 등장했다.
2011년 블룸버그 통신은 콜롬비아거 세계 최대 코카인 생산지이고 미국은 최대 소비지라고 지적했다. 코카인 가격은 콜롬비아 원산지에서 1킬로그램에 약 1,800불 정도이지만 미국 뉴욕에서는 30,000불에 이르고 있다. 이 가격도 코카인 수급상황, 마약 카르텔 내부 상황, 미국 등 관련 국가들의 마약 유통 단속, 원산지와의 거리, 소비지역 소득 수준 등 여러 가지 요소들에 따라 크게 달라진다.
콜롬비아 마약범죄조직 구분과 범위, 구체적 범죄활동은 시기에 따라 변화해 왔다. 마약 카르텔 등 범죄조직은 통상적으로 콜롬비아 무장혁명군(FARC), 국가 해방군(ELN) 등 좌파 게릴라 단체들이나 콜롬비아 통합 자위대(AUC) 등 우파 민병 자위 조직들과 구분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 무장단체들도 대부분 활동자금 마련 명목으로 마약의 생산, 가공, 유통 등 불법행위를 자행해 온 것은 마약 카르텔과 다를 바 없었다.
콜롬비아 마약범죄조직은 크게 3 세대로 구분된다. 1 세대는 메데인 카르텔(Medellin Cartel)과 칼리 카르텔(Calí Cartel)이다. 이 카르텔들은 코카 잎 생산과 코카인 제조, 운송, 유통 등 코카인 사슬(Cocaine Chain)의 모든 단계를 수직적으로 통합해 장악했다. 이를 위해 중앙집권적 계층적 조직구조를 만들어 명료한 명령전달 및 보고체계를 운용했다.
2 세대는 메데인 카르텔과 칼리 카르텔로 대표되는 대형 카르텔들이 정부의 소탕작전으로 1993년과 1995년에 각각 해체된 뒤 등장한 소형 카르텔(Baby Cartel)들이다. 이들은 코카인 사슬에서 특정 부문을 장악한 뒤 상호 연합(federation)하는 형태로 더 큰 조직을 만들었다.
북부 계곡 카르텔(Norte de Valle Cartel)과 북부 해안 카르텔(North Coast Cartel)이 대표적이다. 이들은 연합체 성격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1세대의 특징인 강력한 보스를 가지고 있지 못해 항상 내부 이해관계에 따라 상호 간 무장투쟁이 발생했다.
3 세대는 소위 ‘바크림(BACRIMs:Criminal Bands)’라고 이름 지어진 범죄단체들이다. 이들은 주로 2006년 우파 콜롬비아 통합 자위대(AUC) 소속 민병대 자위 조직들이 해체되면서 해체에 반대하는 그룹들을 중심으로 형성된 범죄 신디케이트이다. 주요 활동은 마약 밀매 유통이며 이외 강절도, 납치, 청부살인, 착취, 인신매매 등 범죄활동을 하고 있다.
이들은 코카인을 온두라스 등 중미로 통해 멕시코 마약 카르텔들에게 전달하고 수수료를 받는데 1킬로 당 약 12,000불을 받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아울러 국내에서 마약 밀매 유통도 하고 있다.
메데인 카르텔은 안티오키아(Antioquia) 주 수도인 메데인에서 결성되었다. 보고타 다음으로 큰 도시인 메데인을 근거지로 1976년에 결성된 아후 1993년 붕괴될 때까지 마약밀매, 살인, 납치, 착취, 무기거래, 테러, 뇌물수수, 자금세탁 등 많은 범죄활동을 한 조직범죄 단체이다. 메데인 카르텔은 당시 미국으로 유입된 코카인의 80%를 담당했다.
메데인 카르텔은 에스코바르(Pablo Escobar), 오초아(Jorge Luis Ochoa Vásquez), 가차(José Gonzalo Rodríguez Gacha), 레데르(Carlos Lehder)등이 주도했다. 그러나 메데인 카르텔은 1993년 전설적인 보스였던 에스코바르가 콜롬비아 정부군에 사살당하면서 붕괴되었다.
에스코바르는 ‘코카인 왕(The King of Cocaine)’이라는 별명을 가진 전설적인 마약왕(drug lord)으로 메데인 카르텔을 이끌며 콜롬비아 정치와 사회에 많은 악영향을 끼쳤다. 그러나 그는 빈민 계층을 향한 자선행위도 병행하여 그의 도움을 받은 빈민들은 그를 로빈 후드라고 부르기도 했다.
콜롬비아 경찰은 그를 타격하기 위해 1986년 블로케 데 부스케다(Bloque de Busqueda: Search Bloc)라는 특수부대를 만들어 운영했다. 이 특수부대가 1993년 12월 파블로 에스코바르를 사살했다.
칼리 카르텔은 콜롬비아 남부 바에 데 카우카(Valle de Cauca) 주 수도인 칼리를 근거지로 1970년대 만들어진 후 1995년 붕괴될 때까지 마약 유통, 살인, 납치, 착취, 무기거래, 테러, 뇌물수수, 자금세탁 등 다양한 범죄활동을 했던 조직범죄 단체이다.
길베르토 오레후엘라(Gilberto Rodríguez Orejuela), 미겔 오레후엘라(Miguel Rodríguez Orejuela), 론도뇨(José Santacruz Londoño), 부이트라고(Hélmer Herrera Buitrago)등 4인이 설립 주체이다. 메데인 카르텔과는 달리 칼리 카르텔 수뇌부는 상류 가정 출신들이어서 카르텔의 별명이 ‘칼리의 신사들(Los Caballeros de Calí)’로 불리어지기도 했다.
칼리 카르텔은 메데인 카르텔과 1981년 M-19 등 납치 테러 조직을 타격하기 위해 ‘납치자들에게 죽음을(MAS)’이란 무장조직 공동 창설하고 자금세탁을 위해 파나마 은행(First InterAmericas Bank)을 공동소유하며 미국 내 코카인 시장을 합의 분할-뉴욕지역은 칼리 카르텔, 마이애미 및 플로리다 지역은 메데인 카르텔이 독점, 캘리포니아는 경쟁지역 유지– 하는 등 일정기간 동안 협력관계를 유지했다.
그러나 1986년 메데인 카르텔의 가차가 칼리 카르텔의 영역인 뉴욕에 발을 들여놓기 시작하고 메데인 카르텔 수뇌부인 오초아가 칼리 카르텔의 제보로 체포되었다는 의혹이 발생하자 1987년부터 이들은 적대감을 가지고 냉혹한 무장대치 관계를 이어갔다.
칼리 카르텔은 영국 및 이스라엘 용병 세력과 연계하거나 미국과 콜롬비아 정부에 정보원을 두는 등 광범위한 정보 감시망을 운용했다. 이러한 배경 때문에 미국 마약단속국(DEA)은 칼리 카르텔을 ‘칼리의 KGB’라고 불렀다.
칼리 카르텔은 한 때 유럽 코카인 시장의 90%를 장악하기도 했다. 그러나 콜롬비아 경찰과 정부군의 지속적인 추격으로 오레후엘라 형제를 포함한 주요 창설 수뇌부가 거의 체포되면서 1995년에 붕괴되었다.
북부 계곡 카르텔은 칼리 카르텔이 붕괴된 뒤 이에 승복하지 못한 일부 대리자(Lieutenant)급 간부들이 만든 조직범죄단체이다. 여기에는 렌테리아 만티야(Carlos Alberto Rentería Mantilla), 오르티스 에스코바르(Juan Carlos Ortiz Escobar), 라미레스 아바디아(Juan Carlos Ramiréz Abadía), 몬토야 산체스(Diego León Montoya Sánchez) 등이 참여하였다.
북부 계곡 카르텔은 메데인과 칼리 카르텔이 붕괴된 뒤 콜롬비아의 가장 강력한 마약조직범죄단체로 성장했다. 이 결과 북부 해안 카르텔 등 다른 마약밀매 조직범죄단체, 콜롬비아 무장혁명군(FARC), 국가 해방군(ELN), 콜롬비아 통합 자위대(AUC) 소속 민병 자위대들은 종종 북부 계곡 카르텔과 전략적 제휴를 하며 마약 밀매 활동을 하기도 했다.
2003년 이후 콜롬비아 경찰과 정부군은 미국과 공조해 북부 계곡 카르텔에 대한 무력공격을 지속적으로 실시하였다. 이 결과 카르텔 주요 보스들이 체포되거나 피살당해 2008년 이후 북부 계곡 카르텔은 사실상 붕괴되고 말았다. 그러나 카르텔의 잔여 요원들은 다시 새로운 범죄조직을 결성하였는데 이들이 소위 바크림(BACRIM)으로 불리는 3 세대 범죄조직이다.
북부 해안 카르텔은 1980년대에 결성되어 콜롬비아 북부지역 특히 카리브 해안을 장악하고 마약밀매를 포함한 살인, 무기밀매, 테러, 인신매매 등을 해온 조직범죄 단체이다. 중심 활동 도시가 바랑키야(Barranquilla)인 관계로 바랑키야 카르텔(Cartel de Barranquilla: Barranquilla Cartel)이라고도 부른다.
이 카르텔은 바랑키야를 중심으로 번성한 가문들이 참여해 운영했으나 주요 보스들이 체포되거나 피살되며 활동이 종식되었다.
콜롬비아 정부는 2006년 전후부터 새롭게 형성된 범죄 신디케이트인 일명 바크림(BACRIMs:Criminal Bands)을 그 조직구조에 따라 세 가지 형태로 구분하였다.
첫째는 ‘A 타입’으로 2,000명 내외의 조직원을 보유하면서 전 지역을 대상으로 동시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형태이다. 이 타입은 상하 간 일관된 조직구조와 인프라를 가지고 있다. 클란 데 골포(Clan de Golfo)와 로스 라스트로호스(Los Rastrojos)가 여기에 속한다.
둘째는 ‘B타입’으로 주(Departmento:Province) 단위 수준에서 영향력을 행사하는 바크림으로 주로 과거 좌파 반정부 무장단체 조직원으로 활동하다 평화협상에 불만을 품고 나온 인력으로 구성되어 있다. 통상적으로 100~150명의 조직원을 보유하고 있다. 여기에는 로스 푼티에로스(Los Puntilleros), 로스 펠루소스(Los Pelusos)등이 있다.
셋째는 ‘C타입’으로 소규모 도시나 농촌지역을 중심으로 형성된 범죄단체로 중대형 바크림의 용병 역할을 함과 동시에 독자적으로 살인, 납치, 강탈, 착취 등 범죄활동을 하고 있다.
2017년 중 콜롬비아 국방부는 다시 바크림을 크게 세 가지로 분류하고 있는데 첫째는 무장조직 그룹(GAO)으로 타입 A와 타입 B가 여기에 포함된다. 둘째는 조직범죄그룹(GDO)으로 타입 C가 여기에 해당된다. 셋째는 잔류 무장조직 그룹(GAOR)인데 2017년 콜롬비아 무장혁명군(FARC)이 무장해제를 할 때 불복한 약 1,200여 명의 민병대 출신으로 구성되어 있다.
클란 데 골포(Clan de Golfo)는 조직 보스의 이름을 따 클란 우수가(Clan Úsuga)로 불리기도 한다. 안티오키아(Antioquia) 주 우라바(Urabá) 지역을 근거로 한 자위 민병대로 출발하여 통합 자위대(AUC)의 주축으로 활동했다.
2006년 통합 자위대 해체를 반대해 새로운 범죄조직으로 결성되었는데 2013년 산토스 대통령은 클란 데 골포를 ‘현재 전국 수준으로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유일한 범죄조직’이라고 언급하기도 했다.
마약밀매, 납치, 갈취, 살인, 인신매매, 불법 광업 등 다양하게 범죄활동을 하고 있으며 조직 규모는 약 1,500명으로 추정된다. 콜롬비아 내 19개 주에서 활동하고 있으며 멕시코의 시날로아 카르텔(Sinaloa Cartel), 로스 세타스(Los Zetas) 등과도 제휴하고 있다.
현재 클란 데 골포의 보스는 우수가(Dairo Antonio Úsuga)로 일명 오토니엘(Otoniel)이라고 부른다. 콜롬비아 정부는 클란 데 골포를 바크림과 그리고 무장조직 그룹(GAO)으로 분류해 대처하고 있다.
로스 라스트로호스(Los Rastrojos)로 불리는 바크림도 2006년 통합 자위대 해체에 반대했던 민병대 출신을 중심으로 결성되었는데 초기에는 북부 계곡 카르텔 무장조직으로 활동하다가 북부 계곡 카르텔이 붕괴되면서 독립하였다. 콜롬비아 정부는 이 조직을 바크림과 무장조직 그룹(GAO)으로 분류하고 있다.
로스 라스트로호스는 클란 데 골포 바크림과 적대관계를 계속하고 있다. 마약밀매, 납치, 갈취, 살인, 인신매매, 불법광업 등 다양한 범죄활동을 하고 있다. 콜롬비아 국방부는 트로이 작전(Operación Troya)을 수행하여 2016년 9월까지 이들을 모두 소탕한 것으로 발표했다.
여기에 좌파 무장혁명 단체들과 이들에 대항하는 콜롬비아 통합 자위대(AUC)도 전쟁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납치와 마약밀매를 해왔다.
콜롬비아 무장혁명군(FARC)은 좌파 게릴라 단체로 1964년에 결성되었다. 2016년 6월 23일 쿠바 아바나에서 콜롬비아 정부와 종전협정을 체결한 뒤 같은 해 11월 30일 평화협정을 체결할 때까지 정부에 대한 무장 투장을 계속했다.
이들은 평화협정에 따라 2017년 6월 27일까지 무기를 정부에 반납하고 무장활동을 종료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평화협상을 거부한 약 1,200명의 무장혁명군은 해체 당시 중간 간부들의 지휘를 받아 현재까지 오지에서 간헐적으로 무장투쟁을 지속하고 있다.
콜롬비아 무장혁명군은 1964년 마루란다(Manuel Marulanda Vélez)가 이끄는 콜롬비아 공산당(PCC) 당원들 중심으로 결성되었다. 무장혁명군 규모는 2001년에 16,000명에 이르기도 했지만 그 뒤 6,000~8,000명 수준으로 감소했다.
2008년 마루란다가 심장마비로 사망한 뒤 무장혁명군은 카노(Alfonso Cano)가 지휘했다. 2011년 11월 카노는 정부군과 전투 중 사망하고 일명 티모첸코(Timochenco)로 불리는 에체베리(Rodrigo Londoño Echeverri)가 무장혁명군을 이끌었다. 콜롬비아 정부와 평화협상에 임한 혁명군 지도자가 바로 티모첸코 이다.
이들의 마약밀매 사업은 당초 코카인의 원료가 되는 코카 생산에 세금을 징수하는 수준이었다. 그러나 차츰 코카 생산에서부터 코카인 파우다 제조와 유통에까지 이르자 기존 마약 카르텔뿐만 아니라 미국의 주목을 받게 되었다.
특히 미국은 마약근절을 위해 무장혁명군 활동 종식이 필요함을 인식하고 콜롬비아 정부와 함께 실시하고 있는 콜롬비아 플랜(Plan Colombia)을 강화했다. 이 결과 세력 확장에 한계를 느낀 무장혁명군은 출구전략으로 콜롬비아 정부와 평화협상을 추진하게 되었다.
국가 해방군(ELN)은 좌파 혁명 무장조직으로 마르크스주의와 해방신학 이념을 가지고 있다. 1964년에 만들어져 현재까지 정부와 무장투쟁을 계속하고 있다. 국가 해방군 규모는 1,380~3,000명 정도로 추정되고 있는데 국가 해방군은 미국, 유럽연합, 캐나다, 페루 등에서도 테러단체로 분류되고 있다.
국가 해방군은 1959년 쿠바 혁명과 체 게바라(Che Guevara)에 매료된 바스케스 카스타뇨(Fabio Vázquez Castaño)를 비롯한 일련의 학생들이 주축이 되어 쿠바에서 게릴라 훈련을 받은 뒤 무장단체이다. 가난한 농민 출신들이 주류였던 콜롬비아 무장혁명군과 다르게 국가 해방군에는 좌파 이념과 해방신학에 매료된 젊은 학생들이 많이 참여하였다.
바스케스 카스타뇨가 사망하자 해방신학 이념을 가진 일련의 신부들이 조직을 이끌어 오다가 가르시아(Antonio García)가 이어받아 현재까지 국가 해방군을 지도하고 있다.
국가 해방군도 활동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마약밀매, 납치, 착취, 은행털이 등 다양한 범죄활동을 하였다. 특히 마약밀매와 납치를 주요 수입원으로 활용하였는데 2000~2007년 중 이들은 액 3,000여 건의 납치를 행했으며 현재도 200~300명 정도의 피납자를 가지고 있는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국가 해방군과 콜롬비아 정부 간 평화협상은 과거부터 여러 차례 추진되었지만 합의에 성공하지 못했다. 산토스 정부도 협상을 계속하였지만 성과룰 거두지 못했다. 다만 2017년 10월 1일~2018년 1월 12일 기간 중 양자 간 일시적 휴전협정이 체결된 바 있고 대선 기간인 2018년 5월 25일~29일 기간에 국가 해방군이 일방적으로 휴전을 발표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들은 다시 2019년 1월 17일 보고타 소재 국가경찰학교에 차량 폭발 테러를 감행했는데 이 공격으로 21명이 사망하고 61명이 부상당했다. 국가 해방군은 이 공격을 일방적 휴전 기간 중 정부군이 자신들의 근거지를 폭격한 것에 대한 정당한 보복이라고 주장했다.
콜롬비아 통합 자위대는 1997년 4월 18일 좌파 무장단체에 대항하기 위해 결성된 여러 지방의 우파 민병대들이 연합해 만든 조직이다.
우파 민병대는 좌파 무장단체에 대항해 싸우는 것이었으나 이 과정에서 많은 범죄와 인권유린을 자행해 국내외적으로 거센 비판을 받았다. 우파 민병대에 의해 살해된 인명이 94,754명으로 기간 중 좌파 무장단체에 의해 살해된 35,683명에 비해 3배 가깝게 더 많았다. 이는 그만큼 우파 민병대 활동에 범죄적인 요소가 많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
콜롬비아 통합 자위대에는 21개의 민병대 조직이 참여하고 있다. 이중 중부의 막달레나 민병대(Autodefensas Campecinas del Magdalena Medio), 코르도바-우라바민병대(Autodefensas Campecinas de Córdoba y Urabá)가 가장 강력하였다.
민병대 조직들도 활동자금 확보를 위해 마약밀매, 테러, 납치, 살인, 착취, 강탈, 집단학살, 토지 갈취 등 다양한 범죄활동을 했다. 이들은 마약밀매를 위해 코카 생산에서부터 코카인 제조와 유통까지 참여하며 마약 카르텔 등 마약범죄조직과도 연계를 강화하였다.
콜롬비아 정부는 좌파 무장단체와 전투에서 필요한 경우 민병대를 비공식적으로 활용했다. 그러나 이들의 범죄활동이 폭력적이고 전국적으로 확대되어 국민적 비판을 받자 이를 의식한 우리베(Álvaro Uribe) 정부는 2006년 콜롬비아 통합 자위대 수뇌부와 협상을 통해 해체를 합의하고 무장해제시켰다.
그러나 수뇌부의 해체 결정에 동의하지 않는 일부 민병대원들은 무기를 반납하지 않고 불법 범죄단체인 소위 바크림(BACRIMs)을 조직해 코카인 불법유통 등 각종 범죄활동을 계속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