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상 휴게실에는 어느새 정혜와 소희만 남았다. 전체회의가 끝나고 담배라도 피워야겠다며 올라왔던 사람들이 썰물처럼 빠져나가자 옥상에는 적막함마저 감돌았다. 둘 뿐이라는 것을 확인한 정혜가 소희에게 나지막하게 물었다.
그런데 이번 공모전은 이전에 하던 거랑은 좀 다른 것 같지 않아?
정혜는 이 말을 소희에게 물어도 될까 고민했다. 정혜가 회사에서 가장 친하게 지내는 소희라지만 김 차장이 맡고 있는 기획 2팀 사람이었다. 정혜가 알고 있는 기획 2팀 이야기나 회사의 소식은 거의 대부분 소희를 통해 들었다. 붙임성이 좋아 두루두루 잘 지내는 소희가 자신을 잘 챙겨주어 늘 고맙다고 생각하고는 있었지만 한편으로는 조심스럽기도 했다. 그래서 김 차장의 싸늘한 눈빛도 차마 터놓지 못했다. 특히 오 차장 병가 후 부쩍 김 차장과 소희가 가깝게 느껴지는 까닭이었다
그러니까 말이야. 당장 사업할 수 있게 써오라는 거잖아. 솔직히 기획팀에서 하던 일을 공모전으로 한다는 게 좀 이상하긴 해.
소희는 아무렇지 않게 대답했다.
최근에는 좀 뜸했지만 사내 공모전은 종종 진행되던 이벤트였다. 직원들의 다양한 목소리를 아이디어 형태로 듣고 여러 부서가 협력하며 소통하는 기회를 만들면 좋겠다며 오 차장의 제안이었다. 공모전은 총무팀 혹은 인사팀에서 진행하는 일이었고, 회사가 커오는 데 나름 도움이 된 조직문화 중 하나였다. 그런데 오늘 김 차장이 말한 공모전은 아이디어 수준이 아니라 실제적인 사업계획서를 말하고 있었다. 정혜는 소희에게 말하지 못했지만 김 차장을 위한 김 차장에 의한 공모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오랜 시간 회사의 성장에 함께 한 오 차장과 달리 김 차장은 다른 회사에서 스카우트되어 온 사람이었다. 오 차장이 이끌던 기획팀을 1팀과 2팀으로 나눈 것은 급 성장세를 타고 있던 회사의 경영 전략이었다. 오 차장에게 본부장이 되어 회사의 전반적인 운영을 총괄해 달라는 제안도 있었던 것 같다. 그러나 오 차장은 회사가 내실 있게 성장하기 위해서 체계적인 확장이 필요하다고 했다. 과거와 같은 방식으로 회사의 실무를 한 사람이 총괄하기에 회사가 너무 커졌고, 도약한 김에 날아올라야 한다고 했다.
날아오르려면 날개를 달아야 해.
오 차장은 일명 양 날개 전법이라고 했다. 자신이 오른쪽 날개를 맡을 테니 균형을 맞추어 왼쪽 날개를 달자고 제안했다. 새로운 왼쪽 날개가 자리를 잡을 때까지, 오른 날개와 함께 날아오를 수 있을 때까지 자신이 실무에 있겠다고 했다. 오른 날개와 왼 날개가 균형을 이루고 활짝 날아오를 수 있게 되면 자신은 두 날개가 달린 몸통이 되겠다고. 본부장이 몸통 역할 아니냐며 어울리지 않게 너스레를 떨기도 했다. 그때 본부장 하겠다고. 아직은 실무를 놓을 수 없다고.
김 차장을 기획 2팀장으로 적극 추천한 사람도 오 차장이었다. 오 차장은 외부 모임에서 김 차장을 소개받았다. 곁을 잘 내어주지 않는 성격답게 인사만 나눈 정도였지만 꽤 눈여겨보았던 것 같았다. 업계에서 꽤 굵직한 성과를 가지고 있었지만 다소 작은 회사에 있었던 김 차장은 회사의 은밀한 스카우트 제의에 적극적으로 임했다. 나중에 오 차장은 당시의 일을 회상하면서 김 차장의 똑똑함은 정평이 나 있었다고 했다. 자신이 생각하는 날개에 부합하는 사람인 줄 알았다고 했다. 그러면서 똑똑함만 회자하던 이유를 그때 알았어야 했다고. 진짜 똑똑한 사람은 맞는 것 같다고도 했다.
오 차장에게서 날개 이야기를 처음 들은 날 정혜는 사모트라케의 니케 조각상을 떠올렸다. 루브르 박물관 양 갈래 계단 사이에서 강인한 위용을 뿜어내는 조각상의 정수는 날개였다. 머리도 팔도 없는 이 조각상은 너무도 당당했다. 조각상을 바라보는 수많은 사람을 이끌고 당장이라도 날아오를 것 같았다. 정혜는 활짝 편 두 날개 덕분에 조각상의 아름다움이 배가된다고 생각했다. 날개를 가까이 보려고 오른편에서 다가가는데 가이드가 말했다. 오른쪽 날개는 왼쪽 날개의 본을 떠 석고로 만든 것이라고. 찾지 못한 머리, 팔, 발, 오른쪽 날개 중에 오른쪽 날개만 복원되었다고. 정혜는 머리보다 팔 보다 어쩌면 날개가 두 개인 것이 중요할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그날을 떠올린 정혜는 자신도 곧 날아오를 수 있을 것 같았다.
오 차장이 자신들을 이끌고 금방 날아오를 줄만 알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