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팀에서도 공모전 이야기는 전혀 몰랐던 거야?
정혜는 공모전에 대한 의구심을 지울 수가 없었다. 이렇게 갑작스레 회의 중에 공지하는 것도, 여기저기 소식이 빠른 소희가 몰랐다는 것도 이상했다.
그러니까. 뭐가 있으면 분명히 우리한테 먼저 이야기했을 텐데. 우리 어제도 잠깐 회의했었는데 그때도 아무 말 안 하셨거든. 어제 오전에 회의하고 오후 내내 임원진들하고 계시긴 했어. 우리 차장님. 거기서 뭐 있었나?
기획 2팀원들은 김 차장을 우리 차장님이라고 불렀다. 정혜는 그럴 때마다 소희가 정말로 김 차장님을 좋아하거나 존경하고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회의실에서 본 김 차장의 싸늘한 눈빛이 떠올랐다. 정혜는 그 눈빛을 꽤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다. 유독 정혜만을 향해있는 눈빛이라는 것도 알고 있었다.
그런데 왜?
정혜는 자신이 김 차장에게 무얼 잘 못했는지 도통 알 수가 없었다. 아주 잠깐 소희에게 털어놔볼까 생각했다. 눈치 빠른 소희라면 뭔가 알고 있지는 않을까 싶었다. 그러나 정혜는 이내 마음을 접었다. 자신도 이해되지 않는 느낌투성이의 말들을 어떻게 이해시킨단 말인가. 정혜는 명치끝까지 답답함이 차올랐다.
그나저나 날씨가 너무 좋네.
들어가기 싫다.
각기 다른 의미의 한숨을 내뱉던 정혜와 소희 사이로 청량한 바람이 불었다. 업무 시간에 갖는 휴식은 불편했지만 달콤했다. 기획 1팀원들이 오 차장 대신 전체 회의에 참석한 자신을 기다릴 수도 있다고 생각이 들었지만 이미 상수가 전했으려니 싶었다.
답답한 빌딩과 파란 하늘은 묘한 조화를 이루고 있었다. 계절은 지리한 여름의 끝자락을 지나 가을을 향해 열심히 달리고 있었다. 하늘은 한껏 높아졌고 하늘에는 구름이 간간이 피어 있었다.
너 뉴질랜드 가봤어?
정혜의 뜬금없는 질문에 소희가 눈을 가늘게 뜨고 쳐다봤다.
지난 연말에 남은 연차 다 쓰라고 해서 말이야. 엄마 모시고 뉴질랜드 패키지 다녀왔잖아. 뉴질랜드 좋지. 그런데 너무 멀더라.
소희는 작년 겨울에 따뜻한 뉴질랜드에 다녀왔었다. 소희는 이제 사무실에 들어가려고 하는 것 같았다. 바지를 탁탁 털더니 들고 왔던 음료수 병을 주섬주섬 챙기고 있었다.
나는 회사 들어오기 전에 뉴질랜드 가 있었잖아.
아. 생각난다. 네가 말했었어. 대학원 졸업하고도 취업이 너무 안 되어서 다 때려치우고 갔었다고.
내가 너한테 그런 말도 했었냐? 하하.
주변을 정리한 소희는 내려가자고 손짓을 했다. 정혜는 정신이 퍼뜩 들어 따라가면서도 답답한 마음을 가누기 힘들다고 생각했다. 정혜가 나지막히 중얼거렸지만 소희는 듣지 못한 것 같았다.
지금 생각하면 거기가 천국이었던 걸까 싶어.
정혜는 대학원을 졸업하고 뉴질랜드에서 두 달간 지냈다. 졸업만 하면 뭐라도 될 줄 알았건만 졸업과 동시에 할 일이라고는 사회에 덩그러니 버려진 듯한 공허함과 싸우는 것뿐이었다. 대학원까지 가서 열심히 채우고 뭐라도 된 줄 알았는데 사회에 나와보니 빈자리 투성이었다. 채워야 할 것들은 계속 생겨나고 있었다. 그저 주어진 일에 대한 행위와 실천을 고민하던 시절이 얼마나 행복했는지 돌이키면서 지독히도 답답한 미래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에 대한 존재론적 고민이 깊어지자 정혜는 떠나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온화한 곳에서 다 비워내야겠다고 생각했다. 가벼워지고 싶었다.
오클랜드 노스쇼어에 있는 홈스테이에 도착하던 첫날, 하늘을 열심히 올려보는 정혜에게 아주머니는 뉴질랜드를 구름의 나라라고 소개했다. 뭉게뭉게 피어난 구름은 정혜가 이제까지 알던 구름과 달랐다. 구름 위에서 사는 신들의 이야기는 이런 구름을 보고 자란 사람들이 만들었으리라 싶었다. 이런 구름을 본다면 누구라도 구름 위 세상을 상상할 것이었다. 정혜는 자주 걸었다. 동네에서 걸어 다니는 사람은 정혜밖에 없었다. 어쩌면 일상을 사는 사람들에게 걷는다는 것은 여유를 부리는 사치일지도 몰랐다. 버스카드를 사러 윗동네 정류장까지 걸어서 다녀왔다는 정혜에게 홈스테이 아주머니는 그곳이 걸어서 갈 수 있는 곳이었냐고 물었다. 걷는 것 말고는 딱히 할 게 없었던 정혜는 다시 누리기 어려운 사치를 부리는 중인 거라고 스스로 다독이는 날들이었다.
한적하고 여유로운 주택가를 걷다 보면 굳이 올려보지 않아도 하늘과 마주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 끝에는 뭉게뭉게 피어오른 구름이 있었다. 다른 세상이 있을 것만 같았다. 조금만 더 걸어가면 그곳에 들어갈 수 있을 것 같았다. 구름이 피어오르면 희망이 피어올랐고 정혜는 희망찬 미래에 닿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정혜는 뉴질랜드에서 돌아온 지 얼마 되지 않아 이 회사에 입사하게 되었다. 어쩌면 이곳이 그 구름 뒤 세상일 것 같았다. 설령 아닌 날이 있더라도 그곳으로 만들어가자고 마음먹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