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2. 공모전

by 기혜선

전 부서 회의가 끝나가고 있었다. 중앙에 있던 김 차장이 일어섰다.


사업 기획서 공모전을 실시하려고 합니다. 시장 상황과 회사 여건을 고려하여 현실성 있는 기획서를 선발하고자 합니다. 부서나 직급 상관없이 누구나 지원할 수 있으며 선정된 기획서는 실제 사업으로 추진될 예정입니다. 물론 제안해 주신 공모자는 사업 운영의 핵심 책임자로 발령되고, 고가에도 반영하겠습니다.


김 차장의 직접적인 공지에 사람들은 달떴다. 회의 내내 생각의 곁가지들을 쳐내느라 바빴던 정혜는 사람들의 웅성거림에 거리를 두려 애썼지만 여러 생각들이 불쑥불쑥 고개를 들었다.


공모전이라...




너 공모전 낼 거지?


회의가 끝나고 옥상에서 만난 소희가 다짜고짜 물었다. 공모전에 달린 조건은 파격적이었다. 사업 운영 책임자로 승진이라면 회사 내 중요 보직으로 이동일 것이며 고가에 반영한다는 것은 인센티브를 넘어 다음 해 연봉 계약에도 반영하겠다는 뜻이었다.


내가 내도 될까?


김 차장의 싸늘한 눈빛을 떠올리며 정혜가 혼잣말처럼 내뱉는 말을 듣고 소희가 버럭 소리를 질렀다.


무슨 소리야? 최정혜가 아니면 누가 하냐?



오 차장은 정혜의 사수였다. 크지 않던 초창기 회사에 입사한 사람들은 대부분 오 차장에게 일을 배웠다. 덕분에 회사에 오 차장의 부사수가 넘쳐났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자신이 오 차장의 부사수라고 말하고 다녔다. 그렇게라도 오 차장과 연결된 관계임을 말하고 싶은 것 같았다.


오 차장은 자타공인 회사의 중심이었다. 회사에서 진행되는 중요한 프로젝트뿐만 아니라 임원진들은 사소한 일도 오 차장과 의논하고 싶어 했다. 자존심이 세고 몹시 깐깐한 그녀는 호불호가 분명했고 거침없이 의견을 표출하여 사람을 당황하게 하는 일도 많았다. 하지만 회사 일에서만큼은 안 된다고 말하지 않았다. 누군가는 어려움을 말할 때 방법을 찾아오는 사람이었다.


오 차장 주변에는 사람이 들끓었다. 하지만 그녀는 쉽사리 곁을 내어주는 사람이 아니었다. 선물을 들고 오 차장을 찾아온 사람 중 열이면 아홉은 그 선물을 다시 들고 돌아갔다. 만약 들고 온 선물이 조금 과하기라도 하면 불호령이 떨어졌다. 일이나 잘하라고.


어쩌다 오 차장이 외근 중일 때 방문했던 사람들이 두고 간 선물은 직원들 몫이 되었다. 정혜를 비롯한 기획팀원들의 서랍에는 늘 오 차장이 나누어준 홍삼 한두 포가 있었고, 탕비실에는 오 차장에게 전달되지 못한 타바론 홍차 티 세트나 수제 청이 비치되었다. 어떤 명절에는 오 차장 앞으로 배송된 과일 선물 세트에서 사과 한 알, 곶감 세 알이 분배되기도 했다.


이렇게 깐깐하기로 소문난 오 차장이 유난히 찾는 사람이 정혜였다. 오 차장이 맡은 프로젝트의 PM은 대부분 정혜가 맡았다. 하나이던 기획팀이 둘로 분리될 때도 오 차장은 정혜를 먼저 챙겼다. 회사에서 정혜는 공공연하게 오 차장의 오른팔로 불렸다. 오 차장의 오른팔이라면 정혜의 업무 능력에 대한 사람들의 인정은 당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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