왔다.
누군가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했다. 회의실 차분했던 공기가 산만하게 흩어졌다. 사람들이 일제히 일어섰다. 정혜도 엉거주춤 자리에서 일어났다. 기획 1팀이라고 쓰인 팻말 뒤에 나란히 앉아있던 후배 상수도 일어나 있었다. 상수는 여차하면 달려 나가 너도나도 인사를 건네는 무리에 끼고 싶은 듯 보였다. 정혜는 상수의 옷깃을 살짝 잡아당겼다.
이쪽으로 오실 거야. 같이 인사해요.
김 차장 뒤에는 이미 한 무리의 사람들이 따르고 있었다. 누군가는 김 차장과 안부를 나누기 위해 다가갔고 누군가는 김 차장의 자리를 정리했다. 그사이 누군가는 김 차장이 마실 따뜻한 차를 준비했다. 그사이에서 정혜는 어색함을 숨기려 애쓰고 있었다. 부산한 사람들 사이에 끼고 싶지 않았다. 최대한 입꼬리를 올리고 김 차장이 자기 쪽으로 다가오길 기다렸다.
혼자가 아니라 다행이야.
정혜는 자리를 비운 오 차장님 대신 상수를 데려오길 잘했다고 생각했다.
김 차장님이 본부장 된대.
며칠 전 정혜의 입사 동기이자 기획 2팀 소희가 비밀이라며 알려준 소식은 이미 회사에 파다했다. 앞서 몇 년 동안 본부장이 선임된다면 당연히 오 차장일 것이라는 게 사람들의 생각이었다. 15년 넘는 시간 동안 주요 프로젝트를 추진하며 회사를 이만큼 키운 사람이 오 차장이라는 데 별다른 이견은 없었다. 그런 오 차장이 본부장 승진을 앞두고 돌연 병가에 들어갔다. 15년 동안 긴 연차한 번 써 본 적 없는 그녀였다. 돌아오지 못할 것이라는 소문은 곧 김 차장이 본부장에 오를 것이라는 소문에 묻혔다. 사람들의 입이 바빴다.
상수 대리 오랜만이네. 일은 어때요? 오 차장님 안 계셔서 힘들지?
나란히 꾸벅 인사를 하는 정혜와 상수를 보고 김 차장이 다가왔다. 차장님 덕분에 잘 지낸다는 상수의 뻔한 답이 마음에 들었는지 김 차장은 깔깔거리면서 상수의 어깨를 토닥였다. 그리고 정혜를 흘끗 쳐다봤다.
싸늘한 눈빛.
자신을 쳐다보는 김 차장의 눈빛을 알고 있는 정혜였다. 그럼에도 도통 익숙해지지 않는 눈빛이었다. 그 눈빛에 매번 당황하는 자신이 싫었다. 정혜는 매번 김 차장을 만날 때마다 그랬듯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우물거리는 사이 어느새 김 차장은 맞은편에 있는 소희에게로 향하고 있었다.
소희는 김 차장이 자신을 향하자 차장님! 하고 부르더니 양팔을 머리 위로 흔들었다. 정혜는 매일 같은 팀에서 보는 사이에 저렇게 매번 반가울까 생각했다. 김 차장은 자신과 같이 기획 2팀에서 참석한 소희에게 일찍 왔는지 물었다.
정혜는 상수가 자신을 흘끗 쳐다보고 있는 걸 알았지만 모르는 척 머리카락을 넘기며 자리에 앉았다. 상수는 정혜에게 뭔가 묻고 싶은 눈치였다. 아니면 뭐라도 이야기해 주길 바라는 눈치였다. 하지만 이내 하반기 전 부서 회의를 시작한다는 안내 방송이 흘러나왔다. 정혜는 얕게 한숨을 쉬었다. 안도감 같은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