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독을 넘어 독해로
저는 요즘 중학교 1학년 친구들과 미디어리터러시 수업이 한창입니다.
"성착취물 소지만 하도 징역 3년, 벌금 3000만 원"
얘들아. '소지'가 뭐니?
이건 무슨 뜻일까?
한자어가 등장하면 아이들에게 뜻과 의미를 확인하는 일이 자주 있습니다. 당연히 알 거라고 생각했던 말도 확인이 필요합니다. 돌다리도 두드려야 하니까요.
가끔.. 아이들은 단어의 뜻을 알고 있어도 문장 안에서 쓰임의 맥락을 이해하지 못할 때가 있습니다. 특히 비유나 상징으로 쓰인 경우는 더욱 그렇습니다.
글을 '읽을 줄은 알지만' 무슨 말인지 모르는 상황, 즉 ‘낮은 독해력’은 초등 고학년부터 중학생까지 매우 빈번하게 관찰됩니다. 문제는 아이들이 스스로 "모르겠다"라고 말하지 않는다는 데 있습니다. 그저 조용히 넘어가거나, 문맥을 오해한 채 답을 작성하지요. 말하자면, 읽기는 되지만 이해는 안 되는 상태입니다.
초등 저학년까지의 읽기는 주로 ‘해독’ 중심입니다. 글자를 알고, 문장을 또박또박 읽는 것부터 챙길 필요가 있습니다. 그러나 3~4학년 무렵부터는 읽기에 새로운 요구가 더해집니다. 문장의 의미를 정확히 이해하고, 글 전체의 구조나 의도를 파악하는 능력. 바로 독해력(reading comprehension)입니다.
독해력은 어휘와 해독 위에 쌓이는 더 높은 읽기 능력입니다.
단어를 안다고 해서 문장을 이해하는 것은 아니고, 문장을 읽는다고 해서 글의 맥락을 파악하는 것도 아닙니다. 그러다 보니 초등 중학년부터 ‘읽기 문제’가 슬며시 고개를 듭니다. 읽기는 잘하는 줄 알았는데, 수학 문제를 이해하지 못하고, 사회·과학 교과서를 부담스러워하는 아이들 말입니다.
독해력은 글 안의 정보를 정확히 파악하고, 글쓴이의 의도와 감정을 읽어내며, 나아가 자신의 배경지식과 연결해 의미를 구성하는 복합적인 능력입니다. 다음과 같은 세 가지 요소가 유기적으로 작동합니다.
어휘력 – 문장을 이해하기 위한 기본적인 언어 자산
배경지식 – 글의 의미를 연결하고 확장시키는 기반
인지전략 – 요약, 추론, 예측 등 글을 이해하고 해석하는 전략적 사고
예를 들어, ‘그의 입가엔 알 수 없는 미소가 떠올랐다’는 문장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 장면의 전후 맥락, 인물의 상황, 암묵적인 의도 등을 추론할 수 있어야 합니다. 단순히 미소를 ‘기쁜 표정’으로 받아들이는 것은 절반의 독해에 불과합니다. 혹시 인물이 뭔가를 숨기고 있지는 않은지, 겉으로는 웃지만 속마음은 복잡한 건 아닌지, 혹은 상황을 비꼬는 냉소는 아닌지 등 다양한 가능성을 상상하고 추론하는 것이 곧 독해력입니다.
겉으로 드러난 표현 뒤에 숨어 있는 의미를 알아차리는 것, 글쓴이의 말 너머에 있는 의도를 읽어내고 글과 자신의 경험을 연결하는 다리를 놓는 것 모두 독해력에서 비롯되지요. ‘글을 읽는다’는 것은 단순히 문장을 해석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만의 생각과 의미를 만들어가는 과정입니다. 읽기의 주체로 서는 것, 그것이 독해력의 본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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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 저학년의 경우, 독해는 인지 전략보다 감정이입과 상황 이해를 중심으로 접근하는 것이 더 효과적입니다. 이 시기 아이들은 아직 논리적 분석보다는 직관적인 이해와 공감을 통해 글의 내용을 받아들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읽은 내용을 설명하게 하기’보다는, ‘느낀 점을 말해보게 하기’가 더 중요한 접근일 수 있습니다.
책을 함께 읽을 때, 아이가 단순히 글자를 소리 내어 읽는 데 그치지 않고 그 상황에 몰입하고, 인물의 마음을 상상해 보는 경험을 하게 해 주세요. 다음과 같은 질문이 도움이 됩니다.
“이 장면에서 주인공은 어떤 기분일까?”
“왜 그렇게 말했을까?”
“그 입장에서 너라면 어떻게 했을 것 같아?”
“주인공이 이 상황에서 다른 선택을 했다면 어떤 일이 벌어졌을까?”
이러한 질문은 아이에게 감정선과 사건의 흐름을 따라가게 하고, 글 안에서 일어나는 변화와 갈등, 해결의 과정에 자신의 사고와 감정을 개입시키는 연습이 됩니다. 즉, 이야기를 따라가는 데 그치지 않고 이야기 안으로 들어가 보는 훈련이 됩니다.
또한, 이 시기에는 구체적인 장면을 시각적으로 그려보는 활동도 독해에 효과적입니다. 인물의 표정을 상상해서 그려보게 하거나, 장면을 그림으로 그려보도록 하면 아이는 자연스럽게 글의 맥락을 다시 떠올리게 됩니다. 독해란 결국 글 속 세계를 자신의 내면에서 재구성하는 작업이기 때문에, 이런 활동은 단순히 재미를 넘어 이해력을 강화하는 전략적 경험이 될 수 있어요.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이 모든 과정에서 부모나 어른의 반응과 공감입니다. 아이가 자신의 생각을 이야기했을 때 “그건 아니지”라고 정답을 제시하기보다는,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네” “아, 그건 흥미로운 시각인데?”와 같은 반응을 보여주세요. 그 경험이 누적되면, 아이는 글을 읽을 때마다 자기 생각을 붙들고 고민하는 습관을 갖게 됩니다.
읽기란 결국 ‘이해하는 힘’이거든요. 독해는 정답을 찾는 것이 아니라, 글을 통해 스스로를 표현하고, 타인의 감정을 상상하는 법을 배우는 시간이어야 합니다.
초등 3~4학년이 되면 아이들은 이야기 중심의 읽기에서 벗어나, 점점 다양한 유형의 글과 마주하게 됩니다. 설명문, 안내문, 정보글, 규칙문, 보고서와 같은 글들은 서사 구조가 아니라 정보 전달의 구조를 가지므로, 이야기 책과는 읽는 방식, 읽기 전략 자체가 달라져야 합니다. ‘어떻게 읽느냐’에 따라 글의 이해도가 크게 달라지게 되지요. 따라서 초등학교 3학년을 넘어가면 글의 구조를 인식하고 따라가는 훈련이 필요합니다.
제목과 중심 문장 찾기: 이 글은 무엇을 말하고 있는가? 중심 내용은 무엇인가?
문단의 흐름 정리하기: 어떤 순서로 정보가 나열되어 있는가? 인과관계나 비교의 구조는 어떤가?
도식화하기: 표, 그림, 순서도, 마인드맵 등을 활용해 글의 구조를 시각적으로 재구성해보기
이런 활동을 통해 아이는 글을 덩어리로 파악하는 힘, 즉 구조적 읽기 능력을 갖게 됩니다. 이 능력은 이후 논설문, 비평문, 설명문 등을 읽고 쓸 때 핵심적인 기반이 될 수 있어요.
특히, 이 시기의 아이들과는 중심 문장 찾기 놀이나 문장 재배열 게임처럼 활동 중심으로 접근하는 것이 효과적입니다. 예를 들어 글 속에서 중요한 문장과 세부 정보를 구분해서 색연필로 밑줄을 긋거나, 글의 각 문단을 작은 카드로 나누어 순서대로 다시 배열해보게 할 수도 있습니다. 이런 활동을 통해 아이는 자연스럽게 “이 문장은 왜 중요하지?” “이 문단이 다음에 오는 이유는 뭘까?” 같은 텍스트 구조에 대한 인식을 키울 수 있거든요.
처음부터 어렵게 접근하지 말고 글을 읽은 후 아이에게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져보세요.
“이 글에서 제일 중요한 말은 뭐였을까?”
“글쓴이는 우리에게 뭘 알려주고 싶었을까?”
“이 글을 그림으로 정리해 볼까?”
내용을 정리하고 재구성하는 힘은 학습의 바탕이 됩니다. 아이가 ‘글은 구조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인식하도록 도와주세요. 구조를 읽는 힘은, 글을 ‘외우지 않고 이해하는 능력’으로 이어지며, 나아가 비판적 사고와 글쓰기 능력의 바탕이 될 수 있습니다.
초등 중학년은 독해의 깊이가 확장되는 시기입니다. 따라서 책을 읽는 양보다 어떻게 읽는지, 어떤 전략으로 접근하는지에 주목해 주세요. 구조를 따라가는 독해가 익숙해지면, 아이는 어떤 글도 두려워하지 않게 됩니다. 읽기가 낯선 정보와 친해지는 기술이 된다는 것을 깨닫게 될 수 있습니다.
독해력은 국어 수업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수학 문제에서 ‘무엇을 묻는지’ 이해하지 못하면 아무리 연산을 잘해도 점수로 이어지지 않습니다. 과학이나 사회도 마찬가지입니다. 배경지식이 없더라도 글을 읽고 추론할 수 있다면 따라갈 수 있지만, 독해력이 부족하면 낯선 개념 앞에서 주저앉고 맙니다.
독해는 글자를 ‘보는’ 능력에서, 글을 ‘이해하는’ 능력으로의 전환입니다. 어휘를 외우는 것만으로는 부족하고, 단순히 읽는 연습만으로도 채워지지 않습니다.
아이와 함께 질문하고, 이야기 나누고, 정리해 보는 과정을 통해 독해력은 자라납니다.
다음 글에서는 독해력을 키우기 위해 가정에서 실천할 수 있는 구체적인 활동들을 소개해보겠습니다.
읽기란 결국, 세상을 이해하는 방법이니까요.
뭐가 그리 바쁜지 띄엄띄엄 연재하고 있네요. 그럼에도 읽어주시는 여러분들께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