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절대 재수는 안 되고, 대학을 졸업하고 회사 생활을 1년 정도 하다가 결혼을 하고, 아이는 일찍 낳아야 한다던 엄마의 로드맵을 그대로 따랐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게 그대로 되었다는 것도 신기하지만, 한편으로는 한 번쯤은 좀 우겨볼 수도 있었을 텐데 그게 정답인 줄 알았던 나도 참 순진했구나 싶다. 여하튼 나는 스물여섯 봄, 여자들이 많았던 대학 동기 중에서도 가장 먼저 결혼했다. 그리고 서른이 되기 전에 아이 둘을 모두 낳았다. 가끔 요즘 젊은이(?)들이 결혼을 준비하는 이야기를 들으면 그들이 얼마나 똑똑한지 감탄이 절로 나온다. 서로 다른 두 사람이 함께 살기 위해서는 얼마나 많은 약속과 이해, 다짐이 필요한지 그때 나는 미처 몰랐다.
“나는 정기적으로 여행이 필요한 사람이야.”
당시 남자친구에게 그저 내가 받고 싶었던 약속은 정기적인 여행뿐이었다. 어리고 철없던 나는 떠날 수 있는 몸과 마음의 여유만 있다면 세상 어떤 것도 괜찮을 것 같았다.
결론적으로, 남편은 약속을 잘 지켰다. 지난 24년 동안 남편이 그 약속을 기억하고 있었는지, 지키려고 노력했던 것인지는 모르겠다. 어쩌면 나의 역마살을 그저 못 말린 것이었을지도. 어쨌든 우리는 숱하게 여행을 다녔다. 파란색 아기띠에 돌이 막 지난 발육이 남다른 남자아이를 메고, 초록색 경량 유모차에는 네 살짜리 여자아이 태웠다. 유모차 손잡이에는 아이들에게 필요한 짐을 매달았고, 몇 개 안 되는 우리의 옷가지는 남편 등에 졌다. 우리는 버스를 타고, 지하철을 타고 하루에 3만 보씩 걸었다. 대중교통에서 아이들이 소리를 지르거나 앉아야 할 구간에서 떼를 썼다면 여행은 오래가지 못했을 것이다. 숱한 여행의 공로자는 아이들이었던가. 아이들은 잘 따라다녔고 우리는 아이들과 함께하는 여행이 즐거웠다. 돌이 막 지난 둘째와 처음 도전한 도쿄 자유여행에서 자신감을 얻은 우리는 일본의 도시를 도장 깨듯이 다녔다. 핸드폰 구글맵도 없던 시절이었다. 나는 엑셀 시트로 만든 여행 일정과 함께 지하철 노선도, 대중교통 시간, 지도, 맛집리스트, 쇼핑센터 정보 등을 한데 모아 책으로 만들었다. 그렇게 우리의 여행은 대만으로 태국으로 베트남으로 그리고 유럽으로 점점 더 넓어졌다. 그사이 우리도 자랐고, 아이들도 쑥쑥 자랐다.
텍스트를 읽는 것은 세상을 읽는 일이라고 한다. 아이들을 낳으며 나의 바람은 크지 않았다. 아이들과 좋아하는 책을 함께 읽고 싶었고, 내가 좋아하는 여행을 함께 다니고 싶었다. 그리고 그 순간에 대해 이야기 하고 싶었다. 어쩌면 내가 독서 교육을 꽤 오래 공부한 것도, 열심히 여행을 다닌 것도 그 바람 때문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세상의 모든 것은 읽을 대상이 된다. 그런 점에서 독서와 여행은 참 닮아있다. 세상을 읽고 나를 읽는 일이다. 우리 아이들은 읽으며 자랐다. 여행지에서 풍경을 읽고, 문화를 읽고, 사람을 읽고, 때로는 텍스트를 읽었다. 그리고 나는 아이들과 함께 자랐다. 아이들이 좋아하는 책을 함께 읽었고, 내가 좋아하는 여행을 함께 했다. 나는 아이들을 읽었고 나를 읽었다.
우리 아이들과 함께했던 여행을 기록해보려고 한다.
이 글은 우리 아이들의 성장기이자 나의 성장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