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가 추적추적 내리고 있었다.
비옷을 입히고 아기띠를 하고 우산을 쓰고 있었지만, 쑥 나온 아들의 양말은 점점 축축해지는 것 같았다.
내 키가 작은 탓도 있지만, 아들의 다리가 돌쟁이치고는 유난히 길었다. 평소에도 아기띠를 하고 있으면 동네 지나가던 할머니들이 이제 내려와 걸으라며 한마디씩 했다. 유모차를 태워도 마찬가지였다. 할머니들은 말을 해보라며 시킬 때도 있었다. 그럴 때마다 나는 “이제 돌 지났어요.”라고 변명 아닌 변명을 해야 했다.
나는 아기띠 밑으로 길게 나온 다리가 시릴까 봐 우산을 들고 남은 한 손으로 아들의 다리를 자꾸 쓸고 있었다. 남편은 한참 뒤에서 따라오고 있었다. 비가 오는 탓에 간이 유모차를 가지고 나오지 않았다. 남편은 분홍색 비옷를 입고 걷는 딸아이의 손을 잡고 허리를 숙인 채 발걸음을 맞추느라 애쓰는 중이었다.
지난 도쿄 여행에서도 비가 왔다. 우산도 안 챙긴 초보 여행객들이었다.
신주쿠역에 도착했지만 우리는 한 발도 나갈 수 없었다. 아이들만 아니라면 남편과 나는 저기 보이는 호텔까지 뛰어갈 수도 있었다. 하지만 타국에서 아이들이 감기라도 걸리면 큰일이었다. 남편은 우산을 사 오겠다며 낯선 거리로 뛰어들었다. 오고 가는 인파 속에 아이 둘과 내가 덩그러니 남았다. 한참 후, 비에 제법 젖은 남편이 돌아왔다. 우산을 어디서 파는지 몰라 길거리 가판대에서 샀는데 엄청 비쌌다고, 가판대를 찾기까지 얼마나 애를 먹었는지 그 무용담은 호텔에 도착할 때까지 계속되었다.
이번 여행에서는 다행히 우산은 있었다.
“하루 종일 야외 일정을 짜놓은 날 하필 비가 올 게 뭐람. 이른 벚꽃을 보려고 했는데……. 비가 오면 더 운치 있으려나? 분명히 역에서 10분만 가면 보인다고 했는데…….” 나는 계속 중얼거리고 있었다.
오사카성 입구에만 도착하면 오사카성을 한 바퀴 도는 관광 열차를 탈 계획이었다. 알뜰한 여행자인 우리는 날씨만 좋았다면 직접 발로 걸었겠지만, 이런 궂은 날씨에 유모차도 없는데 아이들과 더 걷는 것은 무리였다. 차양을 길게 내린 가게 앞으로 잠시 몸을 피한 나는 우산을 접고 가방에서 얇은 책을 꺼냈다. 스프링 제본된 A4 절반 크기의 책에는 3박 4일간의 일정과 오사카 대중교통 노선도, 우리 목적지 인근 지도, 맛집 리스트가 정리되어 있었고, 각 관광지에 비치된 도장을 찍을 수 있는 빈 종이도 끼워져 있었다. 나는 여행 때마다 책을 만들었다. 지난번 까막눈 여행이 답답했던 터라 코팅된 뒷 표지에는 히라가나 표와 가타카나 표도 붙여 두었다.
오늘의 일정을 확인하고 도보 경로를 그려놓은 지도를 펼쳤지만 어디가 잘못된 것인지, 왜 헤매고 있는지 알 수가 없었다. 멀리서 남편의 목소리가 들렸다.
“여기가 맞아?”
마음이 급했다. 내가 길잡이를 잘못하면 고생할 사람이 셋이나 되었다.
“잠깐만. 물어보고 올게.”
저 멀리 고급스러운 건물 앞에 정자세로 서 있는 경비아저씨가 눈에 들어왔다.
잰걸음으로 가까이 다가가 보니, 생각보다 훨씬 젊은 청년이었다.
“저……. 스미마셍.” ‘스미마셍’은 지난 도쿄 여행에서 배운 단어였다. 일본에서는 일단 ‘스미마셍’만 하면 반 쯤 해결되는 느낌이었다. 가까운 역을 찾지 못해 헤매다 거리 청소를 하던 분에게 ‘스미마셍’ 하고 말을 건 적이 있었다. 우리가 찾고 있는 역이름을 보여주었더니 그분은 쓸던 빗자루를 길가에 세워두고 손짓을 했다. 10분 남짓 따라가니 역이 나왔다. 말을 할 수 있지만 서로 통하는 말은 하지 못했던 우리는 몇 번의 손짓을 나누었고, 그분은 아주 쿨하게 자기 자리로 돌아갔다.
“데려다 달라고 한 건 아니었는데…….”
그 일을 겪은 후 우리는 미안한 마음이 앞서 한동안 길을 묻지 못했다.
그래도 이번에는 물어야겠다. 보아하니 이 청년은 자리를 이탈할 수는 없을 것 같았다. 일단 ‘스미마셍’하고 부르기는 했는데, 뭐라고 물어야 하지? 성을 일본어로 뭐라고 하지?
“오사카 음……. 오사카 음…….”
청년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나를 바라봤다. 나보다 더 안절부절못하는 표정이었다.
한동안 망설이던 나는 우산을 어깨에 끼고 책 여백에 한자로 城(성)을 적었다.
다시 “오사카”라고 말하며 책을 쑥 내밀었다.
그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왼쪽으로 손을 쭉 뻗었다.
나는 기쁨에 넘쳐 남편을 향해 소리 질렀다.
“맞대! 이쪽으로 가는 거래!”
여행에서 돌아온 나는 더 이상 까막눈 여행을 하고 싶지 않았다. 히라가나와 가타카나를 공부하고 아주 기초적인 여행 일본어를 외웠다. 그 뒤로 시어른과 조카들까지 함께 갔던 가마쿠라 여행에서는 택시까지 부를 수 있었다. 물론 조금, 아주 조금 잘못 알아듣는 바람에 택시가 늦게 오기는 했지만…….
그저 기세로 밀어붙이는 나의 여행 언어는 이때부터 시작이었나 보다. 이탈리아 아시시에서 자꾸 말을 거는 택시 기사에게 내 스타일 대로 영어를 내뱉다가, 입을 잘 안 떼던 사춘기 아들이 보다 못해 등판한 뒤 아이들은 나 대신 소통을 담당했다. 그래도 급할 때 빨리빨리 대답하는 건 여전히 나를 따라올 수는 없지.
그날의 오사카성은 어땠냐고?
빨간 관광 열차를 타고 오사카성 한 바퀴 도는 동안 비가 그쳤다. 분홍색 비옷과 빨간색 비옷을 입은 두 아이가 막 피기 시작한 벚꽃 아래서 뛰어다니는 사진이 남았다. 우리는 그곳에서 한참 동안 놀았다. 집에 돌아갈 때 딸아이는 오사카성이 제일 재미있었다고 말했다. 지금도 나는 오사카성을 떠올리면 귀여운 비옷을 입고 누나를 쫓아 아장아장 서툴게 뛰던 돌쟁이 아들이 떠오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