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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읽기] 조선판 주홍글자 <옥씨부인전>

드라마 읽기와 매체 변용 / <주홍글자> 너대니얼 호손

by 기혜선
JTBC 드라마 <옥씨부인전>


이름도, 신분도, 남편도 모든 것이 가짜였던 여자의 진짜 이야기. 진가쟁주담(眞假爭主談)

-JTBC 드라마 <옥씨부인전> 프로그램 정보 중


진가쟁주담(眞假爭主談) : 진짜와 가짜가 서로 자신이 진짜라고 우기는 이야기. 대표적으로 옹고집전을 떠올릴 수 있다. 쥐가 옹고집의 손톱을 먹고 진짜를 내쫓고 진짜 행세를 한다. 가짜가 진짜가 되어 펼쳐지는 이야기.


지난 11월 30일 시작한 드라마 <옥씨부인전>의 정보에서 '진가쟁주담'이라는 문구가 가장 먼저 눈에 띈다. 옥씨부인이라는 제목과 포스터에 노비 차림의 임지연 배우를 보니 노비가 양반집 규수가 되어 펼쳐지는 이야기구나 쉽게 유추할 수 있다. 엄격한 신분제와 남녀 차별이 만연하던 사회에서 여성의 신분 위장이라니 뻔하지만 매력적인 소재가 아닐 수 없다. 어떻게 풀어낼까?


옥씨부인전의 프로그램 정보에 따르면 1542년 프랑스에서 벌어진 남편이 뒤바뀐 실제 사기 사건과 1607년 조선 선조 때 실제로 벌어진 가짜 남편 사건을 모티브로 한다고 한다. 판사 쟝드코라스가 기록한 ‘마르팅게르의 귀환’과 백사 이항복이 사실을 바탕으로 쓴 소설 ‘유연전’을 재해석했다고. 옥씨부인이 된 구덕이를 중심으로 청수연의 에피소드가 펼쳐지고 외지부인 옥씨부인이 해결해가는 이야기가 아닐까 조심스레 예상해본다.


나는 세상의 모든 이야기를 좋아하는 터라 드라마도 매우 좋아한다. 서사구조와 디테일한 연출, 명대사와 배우들의 연기가 조화를 이루는 드라마를 볼 때만큼 행복한 시간도 없다. 어떤 날은 대사를 곱씹다 받아 적기도 하고, 어떤 날은 연출에 감탄하다, 배우들의 섬세한 연기에 울고 웃는 날은 숱하게 많다.


다양한 미디어가 등장하는 최근에는 드라마를 복합양식 텍스트로 인정하고 있다. 즉 드라마를 보는 것을 의미 구성의 측면에서 독서의 과정과 크게 다르지 않다고 보는 것이다. 시청자는 독자로서 자신의 맥락과 환경에서 나름의 의미를 만들어낼 수 있으며 각자의 삶에서 서로 다른 특정 사유와 성찰 등의 사고 활동을 유발할 수 있다. (물론 뇌 발달이나 학습으로의 논의는 다를 수 있다. 독서(종이책 읽기)를 의미 구성 과정이라고 했을 때 드라마 읽기도 같은 맥락에서 이야기될 수 있다는 점이다.)


드라마 읽기


나에겐 드라마 철학(?) 같은 게 있다.

첫째, 몰아보기를 선호하지 않는다. 드라마는 종합 예술이다. 텍스트성으로 이야기하면 움직임, 음악, 언어적 요소 등 다양한 의미 구성 요소가 복잡다단하게 엮인 복합양식 텍스트이다. 따라서 좋은 드라마는 장면 구성, 대사의 메타포, 복선 등에서 다양한 해석과 생각할 거리를 얻는다. 그런데 몰아보면 내용과 서사에만 집중하게 되는 경우가 많다. 쉽고 빠르게 내용만 취하는 느낌이랄까. 내가 ott 드라마 시리즈를 그닥 선호하지 않는 이유이기도 하다. 일주일에 방영되는 횟수와 구성도 연출에 중요하게 반영되는 요소인 만큼 그 규칙을 최대한 존중하고 영위하고자 한다. 다음 화를 기다리며 이번 화를 곱씹어보는 드라마 맛이란 마치 책을 꼭꼭 씹어 읽는 느낌이랄까.


둘째, 주체적인 시청자(독자)이고자 한다. 쉽게 말하면 드라마를 그저 보는 것에 그치지 않고 다양한 해석과 의미구성에 참여한다. 과거에는 개인적으로 드라마를 소비했다면 최근에는 유*브에 드라마를 해석해 주는 채널이 많아졌고 드라마 공식 사이트에서도 다양한 맥락으로 쪼개고 분해하여 재구성한 영상을 배포한다. 이를 향유하는 시청자(독자)는 다양한 방식으로 드라마를 리뷰하고 앞으로 전개를 예측하고, 자신이 구성한 의미를 드러낸다. 무엇보다 드라마 상황과 비슷한 직업, 처지의 사람들은 현실세계를 기반으로 정보를 제공하고 새로운 서사를 생성하기도 한다. 이러한 새로운 관계성은 의사소통과 새로운 표현물이 되어 공유되는 것이다.


언젠가 드라마 <밀회> 이야기를 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벽을 타고 들어가는 카메라 워킹이 독자로 하여금 훔쳐보는 느낌을 갖게 한다고 이야기했다가 '드라마를 뭘 그렇게까지 보냐'라고 핀잔 들었던 경험을 떠올려보면 요즘 드라마 읽기는 얼마나 재미있는지. 당시에는 나만 그렇게 드라마를 보는 줄 알았다.


<옥씨부인전> 첫 장면


-어디, 어떤 대단한 X이 남편이 둘이야?

-노비 출신이라며?

-어디서 양반 행세를 해?


죄인 행렬과 같이 걷는 양반 여인. 관군이 포박을 하려고 하자 자신은 혐의만 있다며 당당히 말하는 데서 여성의 성격을 엿볼 수 있다. 수군대는 사람들의 목소리. 광화문 앞 단상에 올라서서 돌을 맞는 여인.


광화문 광장 단상에 오르는 여인을 보며 떠오르는 소설이 있었으니 너새니엘 호손의 <주홍글자>였다. 흰색 옷의 죄인들 사이에 여인의 복색만 주홍색인 건 우연이 아닐 터. 돌을 맞는 여인의 당당함은 흡사 주홍글자의 주인공 헤스터 프린의 실제 같았다.

주홍 글자 (너새니얼 호손)

1850년 미국 청교도 사회를 배경으로 헤스터 프린이라는 여성의 삶을 그린 소설 <주홍글자>는 사회적 고립과 수치 속에서도 강인하게 자신의 삶을 개척하는 여성의 모습을 그린다. Adultery(간음)의 글자를 가슴에 새기고 살았던 헤스터 프린의 A가 훗날 Able, Angel로 승화되어 회자되는 이야기는 죄와 참회, 사회적 규범, 처벌 등에 대한 통찰을 제공한다.


너희 중에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쳐라.

양반의 신분으로 모두를 속인 노비는 요망한 악녀인가? 가짜 신분인 채로 살았지만, 진짜에게 인정받은 삶이었다면, 그 삶을 보다 가치 있게 일궈냈다면, 그들은 면죄부를 받을 수 있을까?

-JTBC 드라마 <옥씨부인전> 프로그램 정보 중


<주홍글자> 속 헤스터 프린의 삶과 닮아있으리라 생각되는 <옥씨부인전>이 기대되는 아주 큰 이유는 다양한 모티브의 영리한 매체 변용에 있었다.


매체변용


최근의 드라마는 원작을 가지고 있는 경우가 많다. 예로부터 재미있는 소설이 영화나 드라마화되는 일은 많았다. 최근에는 인기 있는 웹소설이나 웹툰이 드라마로 변용되면서 원작과 비교하는 재미가 추가된 것이다.

소설 즉 텍스트의 영화화, 드라마화는 단순히 '베끼기'를 의미하지 않는다. 오히려 원작의 '해체', '재탄생'을 의미하며 새로운 창작행위로 이해되어야 한다. 매체의 특성 즉 드라마는 드라마답게, 영화는 영화스럽게 재창조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드라마 <옥씨부인전>은 출신 신분의 한계, 사회적 규범의 부당함에 대해 이야기할 것임을 1화 첫 장면에서 대사와 조선판 주홍글자를 구현함으로써 분명하게 보여주고 있다. 영리한 매체 변용 사례로 손꼽힐만하다. 첫 장면에서 주홍글자를 떠올린 독자(시청자)들은 드라마에 대한 기대가 한층 높아졌으리라. 떠올리지 못했다고 해도 주제를 던져놓고 과거로 돌아가는 액자식 구성은 가히 소설적이었다. <옥씨부인전>이 1~2화 동안 노비의 부당한 대우에 대해 충분히 설명했고 시청자의 공감을 얻어냈다면 이제 옥씨부인의 당당한 행보를 힘차게 보여주길. 부디 뒷심 빠지지 않고 끝까지 기대에 부응해 주길 기대한다.


드라마는 의미를 구성하고 확장하는 자원으로 활용할 수 있다. 드라마의 다양한 요소를 읽고 그 의미를 생성하며 읽기 경험을 쌓아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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