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쓰기 경험에 대한 단상
글쓰는 목요일
SNS에 독서모임 광고가 떴다.
알고리즘은 기가막히게 나의 관심과 니즈를 알아차린다. 요즘같은 시대에 뭐라도 나를 알아주는 기쁨 때문인지 늘 현혹되지 말자면서도 이내 혹해버린다. 처음에는 어떤 프로그램을 운영하는지 보자는 심산이었다. 읽고 쓰기에 진심이 사람들은 어떤 방향이던 나에게 인사이트를 제공한다는 믿음에서.
독서모임 플랫폼이었다. 다양한 프로그램이 운영 중이었다. 책이나 영화로 이야기를 나누는 모임이나 독서 일지 작성 팁을 알려주거나. 달리기 크루를 모집하기도 한다. 얼마 전 독서와 달리기를 조합해서 프로그램을 만들고 싶다던 선생님이 생각났다. 그녀는 달리기와 독서가 참 닮았다고 말했다.
여러 프로그램 중에서 나의 눈에 들어온 것은 '글쓰는 목요일'이었다. 목요일 마다 만나 소설을 쓰는 모임이라고 했다. 소설이라.. 나의 글쓰기 영역에서 한번도 고려해보지 않은 장르였다.
4주 프로그램을 덜컥 결제하고 말았다. 결국 알고리즘에 말린 것이다.
소설을 써야겠다
소설 쓰기는 오래된 꿈 같은 것이었다. 실제로 일어날 것이라 생각해보지 않았기에 꿈이라고 표현한다. 소설읽기는 오랜시간동안 나의 안식처이자 도피처였다. 글을 읽고 몽글몽글 피어나는 마음이 좋았다. 현실 세계에서는 쉽사리 느낄 수 없는 마음들을 소설에서 만났다. 마지막 장을 덮으며 내쉬는 깊은 한숨에서 희열을 느꼈다. 이런 이야기를 생각하고 이런 문장을 써내는 작가들은 천재라고 늘 생각했다. 내가 할 수 있는 영역은 아니었다.
실제로 소설읽기가 사회 정서적으로 도움이 된다는 연구는 지속되어왔다. 특히 공감능력과의 관련성은 자주 언급된다. 소설 읽기를 통해 다른 사람의 삶과 감정 상태에 대한 사회 이해 능력을 향상시킬 수 있다는 점에서 문학이 갖는 중요성은 크다. 사회적 관계 향상을 위해서 어린 시절부터 소설, 시, 낭독 등을 통한 관계지향적 독서교육의 효과성은 여러 연구에서 보고된다.
그런데 갑자기 소설을 써보자는 마음이 생긴건 나의 무용한 삶에 대한 회의감이 차올랐기 때문이었다. 돌아보니 하고 싶은 것만 하고 산 삶이었다. 무엇이 되어야 겠다는 생각은 못하고 그저 구름 속에서 꿈결만 좇아 살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여전히 무엇이 되지는 못하고 무엇을 해야할까 고민하면서 꿈결을 탐하고 있는 것만 같았다. 이런 나의 삶에 도리어 감사해야하는 건 아닌가 싶으면서도 나의 본질에 대한 질문이 돌아왔다. 나의 문제에 대한 끝없는 번민과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없다는 무력감과 대단한 사람인양 대하는 사람들 앞에서 약자 코스프레나 하고 있는 무능력함을 마주하고 있었다. 나는 나라는 주문이 통하지 않았다. 굴레에서 벗어나야 했다.
긴장과 기대 속 첫 시간. 온라인에서 만났다.
글쓰기 모임의 리더이자 모임 내내 선생님이라고 불렸던 그녀는 자신을 전업작가를 꿈꾸는 습작생으로 소개했다. 이번 회기 수강생이 단지 두사람이라 운영을 해야 할까 고민했다는 말에서 운영자 입장의 어려움이 공감되면서도, 한편으로는 깊이 있는 모임으로 만들 수 있겠다는 느낌이 들어 설렜다.
그랬다. 결국 자기 이야기를 풀어낼 수 밖에 없었다.
자기 치유의 글쓰기
쓰고 보니 알았다. 나의 감정을 파고 들어가는 일기에 비해 소설이라는 장르는 픽션이라는 울타리를 치고 나를 타자화시켰다. 나와 완전히 동떨어진 이야기에서 시작할 수는 없다. 살아오면서 나에게 영향을 끼친 사건이나 주요 감정이 이야기의 소재가 되었다. 내가 가지고 있는 내적 고민이 등장인물의 고민으로 옮겨가고 행동으로 그려내자 그 고민의 크기가 작아졌다. 다른 모양으로 빚어낸 사건은 멀어졌다.
쓰다보니 어떤 해결책이 생긴 것도 그간의 질문에 답을 찾은 것도 아닌데 앞서 깊은 고민들이 거짓말처럼 괜찮아졌다. 침잠하던 감정의 굴레에서 가벼워진 나는 매우 캐주얼하게 그 상황에 마침표를 찍었다. 물론 삶에서 깊게 얽힌 실타래는 여전히 감겨있고 나를 속박하지만 중간에 엉켰던 매듭은 나에게 자국이 조금 남더라도 풀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의 감정을 발견하고 감정에 파고 들어가는 일기와는 또다른 치유였다.
소설가 정진영은 소설은 자신의 실패를 바탕으로 쓰여진다고 했다. 나의 상처와 실패가 이야기 글감이 된다. 나의 무용한 삶에 대한 고민은 어쩌면 소설쓰기에서는 유용한 것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라이터스 하이
요즘 러너스 하이라는 말이 유행한다. 운동을 하면서 특히 달리기를 하면서 강력하게 행복감을 느끼는 순간을 말하는 듯하다. 사실 힘든 일을 빠져나왔을 때 느끼는 성취감, 효능감 만큼 짜릿한 맛도 없다.
글쓰기도 그렇지 않을까. 라이터스 하이를 위해 오늘도 써보자. 다람쥐가 도토리 모으 듯 꾸준하게 나의 이야기를 모아가야겠다.
당신이 태풍으로부터 걸어 나왔을 때, 당신은 태풍으로 걸어들어갔던 사람과 절대 같은 사람이 아니다. 그것이 태풍의 존재 이유이다. -무라카미 하루키-
당신이 글쓰기를 시작한 후 당신은 이전과 같은 사람은 아니다.
#라이터스하이
#치유적글쓰기
#이야기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