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었지만 사색하게 한 것들에 관하여
어느 주말 저녁 기가 막힌 글감에 대한 아이디어가 하나 떠오릅니다.
이 아이디어대로만 써진다면, 저는 어쩌면 노벨 문학상이나 노벨 경제학상이라도 받을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상금으로는 무엇을 할까 즐거운 상상을 하기 시작합니다.
일단 노벨상의 상금을 받자마자 어제 봐 두었던 노트북 한 대를 사야지 생각하면서 가격을 알아보러 인터넷에 접속합니다. 그러다 보니 인텔 칩과 애플칩의 차이가 궁금해져 인터넷을 검색해봅니다. 그러다 보니 애플의 애플카 뉴스가 궁금해져 다시 뉴스탭을 검색해 봅니다.
그렇게 오후의 시간을 죽이고 있는 중에 주말의 약속시간이 다 되어 가네요. 편하게 차려입고 나간 친구들과의 저녁 약속 자리는 즐겁고, 술은 술술 들어갑니다.
술자리를 마치고 홀로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뭔가를 잊은 것 같은 생각이 듭니다.
‘아. 아까 오후에 나를 스쳐갔던 그 노벨상 감의 아이디어. 뭐였지 그게?’
뭔가 중요한 것을 잃어버린 것 같아 슬퍼지려고 하던 그때 휴대폰 알람이 울립니다. 출근시간에 울리는 것과 똑같은 알람이, 밤 열한 시에 갑자기 울리는 것은 무슨 연유일까요. 쳐다본 휴대폰에는 “돈과 시간의 관계에 대해 글쓰기”라는 알람 제목이 붙어 있습니다.
아.. 맞다. 노벨상감의 글감이 이 주제였지? 돈과 시간의 관계. 그래도 여섯 시간 뒤의 나를 믿지 못해 알람을 설정해둔 과거의 내가 대견하다고 느낍니다.
하지만 문제는, 다시 돌이켜 생각해 보니, 이 주제가 더 이상 노벨상 감이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는 것입니다. 여섯 시간 전의 나는 무척 관대한 녀석이었나 봅니다.
여하튼 지금은 술에 취해 글을 쓰지 못할 테니, 내일 저녁 퇴근길의 나에게 다시 글감의 구체화를 미루기로 합니다. 다시 휴대폰으로 내일 저녁 여섯 시의 알람을 맞추고, 알람의 제목은 더 간단히 “돈, 시간, 글”이라고 이름을 붙입니다. (사실 술에 취해서 “동, 시가으,글” 이라고 적었지만, 알아볼 수는 있겠지요.)
내일 알람이 울리면, 늘 '오늘의 나'보다 더 부지런할 것 같은 믿음직한 '내일의 내'가, 부지런히 또 아이디어를 발전시켜 주겠지요. 아니면 대부분의 경우에 그렇듯, 내일의 나는 또 그냥 오늘의 나를 욕하면서 글감을 묻어버리고, 새롭게 노벨상에 어울리는 글감을 찾을 수도 있을 테고요.
그렇게 제가 이제껏 죽여버린 아이디어들 중에는, 세계 사람들의 삶을 바꿀 획기적인 아이디어와, 또 기존의 통념을 송두리째 바꿀만한 아이디어, 혹은 시간여행의 기초 아이디어까지도 있습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그 아이디어들을 구체화하기에는 시간이 너무 부족하고 할 일이 너무 많아서 다 놓쳐버렸다는군요.
그래도 혹시나 하는 마음에 저는 오늘도 알람을 설정해 봅니다. 알람의 이름은 “행복과 시간의 상관관계에 대한 고찰을 구체화하기”. 이번에는 노벨 생리학상을 노려볼 만한 아이디어 아닌가요.
그렇게 알람을 설정해 놓고 나면, 어느 사색하기 좋은 저녁에, 뜬금없이 핸드폰 알람이 울리기도 합니다. 노벨상은 아니더라도, 최소한 제 인생의 가치관 하나를 다시 한번 사색해 볼 수 있는 좋은 시간이라고.
“행복, 시간, 관계” 띠리리리 띠리리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