숫자로 가려놓은 것들

by 잭변 LHS

혼자 카페에 앉아 책을 읽고 있는데, 옆자리에 앉은 사람들이 꽤 시끄럽게 떠들고 있습니다. 이럴 때를 대비해서, 이어폰을 늘 가지고 다니지만, 하필이면 오늘 이어폰도 집에 놓고 왔네요. 사람들의 이야기가 그대로 귀에 꽂혀 도저히 책에 집중할 수가 없었습니다.


옆 테이블의 한 남자가 큰 목소리로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내가 테슬라 사라 그럴 때 사지 그랬어."

"테슬라로 얼마 벌었는데?"

"야 내가 수익률이 벌써 200% 넘었어. 오늘도 아마 쭉 계속 갈걸?"

"와. 대단하다. 오늘 너 한 턱 쏴라."


부러워하는 친구들의 감탄을 들으며, 남자는 한껏 들뜬 표정입니다.


그러는 중에 누군가가 음료와 디저트를 가져왔습니다.그러자 한 여자가 디저트가 놓인 테이블을 정리하며 휴대폰을 들이댑니다.


"잠깐만 나 한 컷 찍어줘."

"얘는 뭐하냐?"

"사진 찍어야지. 팔로우 3만 명 유지하기가 쉬운 줄 아니?"

"와 3만 명이나 돼?"


친구들이 이리저리 여자의 지시에 따라 사진을 찍어줍니다. 여자는 핸드폰을 건네받아 이리저리 화면을 확인합니다.


"됐다. 좋아요 500개는 나오겠지?"


알록달록한 디저트가 놓인 그들의 테이블 위에는, 이리저리 숫자들이 쏟아져 뿌려집니다. 누구는 아파트를 사서 몇억을 벌었고, 누구는 연봉이 몇 천씩 올랐답니다.


우리는 미래를 알 수 없기 때문에, 무지의 공포 속에 숫자는 어떤 슬픈 울음소리가 되어 갑니다. 혹은 누구도 행복을 잘 모르기에, 숫자는 막연한 행복의 손쉬운 척도가 되기도 합니다. 끝이 없기에, 그 끝에 닿을 수 없는 숫자의 아득함이, 우리의 밤들을 구슬프게 맴돕니다.


책들을 챙겨 나온 길거리에는, 밤비가 내리고 있습니다. 우산을 받쳐 쓰고 터벅터벅 걸어가는 길에, 우산 한 개를 나눠 쓴 형제가 집으로 발걸음을 재촉하고 있는 모습이 보입니다. 키가 큰 녀석이 동생 쪽으로 우산을 많이 내밀어 줬네요.


"형 다 젖잖아."

"괜찮아. 금방 집에 가잖아."


내리는 빗방울의 개수는 셀 수 없습니다. 수백만, 혹은 수억 개일까요? 하지만, 이 빗방울이 작은 우산 하나를 나눠 쓴 녀석들의 편안한 밤을 방해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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