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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잭변 LHS Mar 26. 2022

산성비가 내리는 행성

VR 게임 ‘노맨즈 스카이’를 플레이하다가

이 낯선 행성에는 산성비가 내리고 있다. 지금 밖으로 나갔다가는 방호복을 뚫고 들어오는 산성비로 체력이 금방 닳는다. 그래서, 나는 내가 만든 작은 오두막에서 비가 그치기를 기다리기로 한다. 나는 그렇게 오두막의 문을 통해 산성비가 내리는 보랏빛 행성의 평원을 바라보고 있다.


나는 지금 ‘노맨즈 스카이라는 VR 게임에 접속해 있다.  게임은, 이름 모를 행성을 탐험하는 게임이다. 스토리를 따라갈 수도 있지만, 그냥 낯선 행성을 혼자 구경다닐 수도 있는 게임이다. VR 기기로 보이는 풍경들이 장관이고 마치 다른 행성에 정말 가 있는 듯한 느낌이 들어서, 나는 게임 속을 구경다니는 것을 더 좋아한다.


그런데,  게임 속 행성들은 하나같이 척박하다. 어떤 곳은 산성비가 내리고,  어떤 곳은 유독가스가 대기의 대부분을 차지한다. 그런 곳에서는 필연적으로 체력에 손상을 입을  밖에 없다. 그래서 나는 게임 속에서 내가 머물만한 베이스 캠프를 만들어, 그곳을 기반으로  행성을 탐험해야 한다.


호기심이 많은 외계 동물 한마리가 내 캠프 밖에서 서성이고 있다. 산성비가 그칠 때를 기다려 동물에게 가까이 다가간다. 말을 닮은 동물인데, 다리가 지구의 동물과는 달리 화려하게 생겼다. 이름을 알 수 없는 이 동물은 내가 가까이 다가가자 나한테서 멀어진다. 그러자 이 행성에 나 혼자만 있다는 생각이 들어 조금 쓸쓸해진다.


 게임은 온라인게임이지만 유저마다 각자의 행성이 구현되기 때문에, 다른 플레이어들을 마주칠 일이 없다. 내가 플레이를 하고 있는 행성은 나만이 탐험할  있는 곳이다. 멋진 집을 짓는 일도,  자유로이 날아다니는 것도 가능하지만, 길을 가다가 마주친 숨막히게 멋진 풍경들을 공유할 사람은 없다.


내가 지구에 혼자 남겨진다면 이런 느낌일까?


조금 쓸쓸해진 나는 다시금 산성비의 침입을 받지 않는 나만의 게임  캠프로 돌아온다. 그리고, 좋은 자리에 앉아서  위험하고 외로운 행성의 낯선 푸른  평원을 바라본다.  가상의 풍경에서는 외로움과 평안함이 자라나 나를 엄습한다. 나는 석양이  때까지도 기다렸다가, 하늘색이 어두워지는  순간의 하늘을 멍하니 잠시 바라본다. 그리고, 개임 속 밤이 찾아오자 내가 만든 오두막을   둘러보고는 게임에서 로그아웃한다.


VR 기기를 머리에서 벗겨내자, 산성비가 내리는 행성과는  다른 푸른 행성의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행성의 파란 하늘은 확실히 눈에 익다. 거실의 창문으로 들어오는 남산모습은,  행성의 주인이  초록 나무들임을 알려준다.


이곳은  마음대로 집을 지을  있는 은 아니고, 제트기를 타고 이곳저곳을 탐험할  있는 곳은 아니다. 하지만,  행성에는 생명을 상하게 할만한 산성비가 내리지도 않고, 대기는  행성의 주인인 나무들이 내뿜는 산소로 가득해서, 나는 방호복이 없이도 나른한 한숨을   있다.


다만, 오늘  행성에서도 조금 외로운 것은, 내가 코로나 양성판정을 아 격리중인 탓일까? 그래도 사람들이 오가는 거리의 풍경이 작게나마 보여서 위안이 된다.


전화를 붙잡고  지구를 함께 탐험하고 있는 누군가에게 전화를 건다.


 그냥. 심심해서 전화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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