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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잭변 LHS Jun 25. 2022

6월의 프라이드

2022년 퀴어문화축제에 부쳐

링크드인(Linked in)이라는 어플이 있다. 전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구인/구직에 특화된 소셜미디어이다. 한국에 진출한 외국 기업들, 예컨대 구글, IBM같은 IT 기업들이나 노무라, 블랙록 같은 금융회사들, 혹은 아고다 같은 각종 외국 서비스 기업들까지 대부분 이 어플을 통해 구인광고를 낸다.


그런데, 6월 한 달간 링크드인에 접속해서, 우리가 관심 있는 외국 회사들을 검색해 보면, 대부분의 외국 회사들의 로고가 무지개색으로 변경되어 있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이들 회사는, 무지개 로고를 만들어 6월 한 달간 성소수자들이 Pride Month라고 부르는 6월을 기념하고 있는 중이다.

무지개 로고로 가득한 링크드인 기업 채용공고 캡쳐 화면

6월이 성소수자들에게 특별한 달이 된 것은, 유명한 ‘스톤월 항쟁’ 때문이다. 매번 의례적으로 일어나던 경찰의 게이바 단속에 대하여, 성소수자들이 처음으로 경찰에 항의한 날이 바로 1969년 6월에 있었던 ‘스톤월 항쟁’이다. 그 이후로, 성소수자들은 자신들에게 주어지는 탄압이 근거가 없으며, 스스로도 부끄러워할 필요가 없다는 점을 자각하기 시작했다. 상대방과 합의해서 잠자리를 가진 것이 도대체 왜 사회적으로 이들을 차별할 근거가 되는지, 반문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렇게 시작된 성소수자들의 스스로에 대한 Pride는, 애매한 타협의 수십 년을 거쳐, 지금은 많은 사회에서 본격적으로 받아들여지기 시작했다. 특히, ‘있는 그대로의 자신’에 대한 믿음은, 비단 성소수자가 아니더라도 많은 사람들에게 긍정적인 감화를 주기에 충분한 명제였다. 다양성을 존중하기 때문에 성장동력이 있는 많은 사회들에서는, 이제 Pride Month는 비단 성소수자들의 행사라고만 부를 수 없게 되었다. 다양성 자체를 존중하는 축제로 변화하고 있는 것이다.

2019년 6월, 뉴욕 지하철이 pride month 를 기념해서 운행하고 있다.

올해 6월 초, 미국과 캐나다 여행을 다녀왔을 때에도, 그곳에서는 어디를 가나 수많은 편의점과 음식점, 리쿼 샵, 심지어는 전자제품 판매상들이 무지개 깃발을 정문에 걸어놓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종업원들은 밝은 얼굴로 모든 사람들에게 ‘Happy Pride!’라며 인사를 건네기도 했다. 이들 나라에서 6월은, 성소수자뿐 아니라, 모든 사람들이 자신의 자부심을 축하하는 달로 변화하고 있는 것이다.


잘 알려진 사실이 아니지만, 광화문에 있는 주한 미국대사관도 매년 6월이 되면, 그 건물 외벽에 커다랗게 무지개 로고를 걸어놓는다. 미국대통령이 진보의 민주당이건 보수의 공화당이건 상관없이 수년째 이어져 오는 전통이다. 그리고, 더 잘 알려지지 않은 사실이지만, 주한 미국대사관과 주한 EU 대사관은 매년 한국의 성소수자 퍼레이드 행사인 ‘퀴어문화축제’에 지지 성명을 발표하고 있다.


이런 쿨내 쩌는 전통들에 대해, 한국의 일부 단체들, 특히나 특정 종교의 단체들이 참 촌스럽게도 반대성명을 내는 일이 많다. 아이러니한 건, 그들 대부분은 정치적 시위를 할 때에는 성조기를 많이 가지고 온다는 점이다.


그런 아이러니에 대해, 다양성을 축하하는 쪽에서야 ‘인생은 원래 그런 거지’ 하고 웃고 놀 수 있겠지만, 다양성을 싫어하는 쪽에서는 그런 인생의 괴리를 어떻게 해결하는지 좀 안쓰럽기도 하다.

광화문 주한미국대사관의 무지개 깃발


2015년, 주한미국대사였던 리퍼트 대사 피습 사건이 있었다. 당시 리퍼트 대사의 병원 앞에서는 미국 대사의 쾌유를 빌며, 한국인으로서 사죄드린다며 부채춤을 추던 보수를 표방하는 단체들이 있었다.


그 단체들은 다음 해 6월 퀴어문화축제 반대집회에도 총출동하여 퀴어문화축제를 규탄하면서 똑같은 부채춤을 추었단다. 그런데, 쾌유된 리퍼트 대사는, 정작 같은 시간 반대편 퀴어문화축제의 무대에서, 지지성명을 발표하고 있었다. 그 아이러니를, 그들은 어떻게 스스로에게 설명하고 있을까?


그렇게 인생은 원래 그렇게 일관된 정답이 없는 거다. 특히 남이 인생을 어떻게 살건, 그게 내가 알고 있던 정답과 다르더라도, 다른 사람의 인간으로서의 정체성은, 오롯이 축하받을 일이다. 그런 간단한 명제를 수용한다면, 화난 얼굴로 미국대사관을 규탄하는 사람들의 자존감도 조금 회복될 수 있을 텐데, 그렇지 못한 겻이 참 안타까운 일이다.


한국에서의 6월도, 모두가 스스로에 대한 자존감을 축하할 수 있는 달이 되었으면 좋겠다. 성소수자이건, 이성애자이건, 남성이건, 여성이건, 인종에 상관없이 서로의 다양성을 축복한 날이었으면 좋겠다.


매년 다양성을 축하해 온 서울 퀴어퍼레이드가 올해는 조금 늦은 7월 16일에 개최된다. 이미 많은 나라들에서 그런 것처럼, 한국에서의 퀴어퍼레이드도 성소수자건 아니건, 다양성을 축하하는 누구나 참여해 볼만 한 축제라는 생각이 든다.

Happy Prid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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