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잭변 LHS Aug 19. 2022

양두구육의 계절

푸줏간 싸움에 시선을 빼앗긴 채 맞이하는, 국가의 위기

참 신기한 일이다.


양의 머리를 내걸고 개고기를 팔아왔노라고 자백하는 여당 대표와, 내부 총질이나 한다며 그를 손가락질하는 여당의 싸움만이 뉴스에 회자되고 있다. 양고기 혹은 개고기를 사버린 국민들은, 정체모를 고기를 손에 들고 고깃간의 내부 싸움을 멍하니 쳐다만 봐야 하는 입장이 되어버렸다.


사실, 이 모든 분쟁은, 이준석 대표에게 아주 유리한 형국이다. 자신에 대한 혐의 내용은 이미 묻힌 지 오래고, 자신은 대통령에 반기를 드는 여당 대표로서의 이미지를 국민들에게 심어두었다. 만에 하나 그 혐의가 진실이어서 수사기관에서 밝혀진다고 하더라도, 정치보복이라는 프레임을 주장하면서 쉽게 빠져나올 수 있게 되었다.


게다가, 이준석 대표가 다음 대선에 국민의 힘 후보로 혹시 출마한다면, 어떤 시나리오가 가장 좋을까? 아마도 이명박-박근혜 식의 정권 연장이 좋은 시나리오일 것이다. 그래서, 마치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가 그랬듯이, 여당의 다음 대통령 후보는 지금부터 대통령과 거리를 두는 것이 가장 현명한 처신이다. 이준석 대표가 "국민도 속았고, 나도 속았다."며 박근혜 씨의 언급을 인용한 게 우연으로만 보이지는 않는다.


심지어 이준석 대표가 대표직을 잃는다고 해도, 지금으로 봐서는 나쁠 게 없어 보인다. 대통령의 지지율이 저지경인데, 1년 8개월 후의 총선에서 여당이 이길 수 있겠는가? 이준석 대표가 억지로 쫓겨나더라도, 1년 8개월 후 공천잡음과 총선 패배로 다시 비상사태를 맞이할 것이 확실해 보이는 국민의 힘은, 그제야 이준석 대표를 대안으로서 고려할 가능성이 크다. 그때 이준석 대표가 당에 복귀한다면, 현 대통령에 대한 정치적 부채마저 없는 여당의 대통령 후보로 단번에 자리매김할 가능성이 높다.


그래서, 다분히 의도되었나 싶기까지 한 이준석 대표의 카메라 독식이다. 그런 와중에, 대통령의 지지율은 역대 최저에 가깝고, 각종 정책에 대한 토론은 예닐곱 줄짜리의 뉴스 포털 제목 어디에도 전혀 보이지 않는다.


더 큰 문제는, 국민들의 이 황당한 감정을 하나의 목소리로 모아낼 야당의 목소리가 전혀 들리지 않는다는 데 있다. 야당은 이미 카메라를 개고기 판매상 이준석 대표로부터 빼앗아 올 능력을 잃어버린 듯하다. 민주당이 하는 이야기보다 이준석 대표가 하는 이야기가 훨씬 더 크게 다가오는 지금, 야당들은 여당의 내홍에 기뻐할 것이 아니라, 얼른 카메라를 빼앗아 올 다른 전략을 세워야 한다.


사실, 수권정당이었던 민주당으로서는, 지금이 국회의 다수당으로서 '정책'을 제시해서 정책정당으로서의 이미지를 가져갈 수 있는 좋은 기회다. 파격적인 정책일수록 좋을 테다. 증세나 이민문제, 동성혼과 같이 본인들이 옳다고 믿었고, 사회적 합의가 필요해 이목을 집중시킬 수 있는 어젠다를 지금쯤 꺼내놓아서라도, 최소한 카메라를 저 개고기 싸움으로부터 정책으로 옮겨와야 할 시점이다.


하지만 자기네 당헌당규 개정 정도로 내홍을 겪고 있다가, ‘북한방송 허용’과 같은 정책마저도 여당에 빼앗겨 버리는, 자신감 없는 모습에서 국민들이 무얼 기대할까?


정의당도 기껏해야 1년 8개월 남은 비례대표 사퇴 문제로 내홍을 겪고 있으니, 국민들의 황망함을 묶어낼 제대로 된 야당마저 없는 이 사태가 안타까울 뿐이다.


의도한 싸움이건 아니건 간에, 개고기를 팔았다는 고깃상과 개고기가 아니라는 도축업자의 막장 싸움에 언론의 이목이 모조리 집중된 채, 대한민국은 경제의 퍼펙트 스톰과 최악의 팬데믹을 맞고 있다. 우리가 샀다는 양고기 혹은 개고기로 몸이라도 보신되면 좋으련만, 정체 모를 고기에 맴도는 파리떼는 전정권의 뒤를 캐느라 바빠 보인다.


제대로 된 경제정책이나 방역정책의 논의조차 여당이나 야당 어디에서도 주목받지 못하는 대한민국 새 정부의 100일에, 생존은 다시 한번 국민의 몫이 되고 있다.

매거진의 이전글 6월의 프라이드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