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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잭변 LHS Sep 16. 2022

호통치는 서울시의원과 푸틴

무엇이 이승복 의원을 소리 지르게 했을까

무엇이 이승복 의원을
소리 지르게 했을까

이승복 시의원이 시민들에게 호통을 치는 장면이 생중계되었다. 이 의원이, 자신의 행위가 녹화되고 있다는 점도 뻔히 알고 있었을 테고, 다른 의원들이 자신의 행위를 보고 있다는 점도 잘 알고 있었을 테다. 그럼에도 감히 호통을 치는 장면을 보자니, 그를 호통치게 만들 수 있었던 무엇이 있지 않을까 하고 생각하게 된다.


감히 추측해 보건대, 이 시의원은 어쩌면 시의회 내부의 위계질서 상, 자신이 나서야 한다고 생각했을 수 있다. 예컨대 의장이 조용히 하라고 했는데도 감히 조용히 하지 않는 시민들에 대하여 자신을 희생해 가며 나선 것일 수 있겠다. 혹은 해당 주민들의 의원이 민주당 소속이었다는 사실 때문에 여당에 대한 그의 충성심으로 소리를 지른 것일 수도 있겠다.


그것마저도 아니라면, 그는 심각한 분노조절 장애가 있는 것이 아닐까?


의회나 정당은 충성할 조직이 아니다


우리 사회에는 ‘알아서 기는’ 사람들이 있다. 어떤 조직 내부에서 자신보다 힘 있는 사람을 위해, 물어뜯는 일을 자초하는 사람들. 그렇기에 굴러가는 조직이 있을 수도 있다. 예컨대, 군대나 조폭과 같이 집단의 물리력이 중요한 집단이 특히 그렇다.


하지만, 의회는 아니다. 개별 의원들은 모두 평등한 시민의 대리인이다. 다선 의원에 비해 초선 의원이 위계가 더 낮은 사람이 아니라는 말이다. 만에 하나, 신월동 의원이 개포동 의원의 눈치를 보아서 시민에게 호통을 친 것이 맞다면, 신월동 주민들의 위치가 뭐가 되겠는가?


그럼에도, 한국 정당의 많은 의원들이 아직도 공고한 위계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 시의회뿐 아니라, 잡음이 끊이지 않는 중앙정치에서도 그렇다. 공천권이라는 권력에 빌붙을 수밖에 없는 하루살이들로 보여 가엽기도 하다.


같은 당 소속의 다른 의원은, ‘주민들도 지켜야 할 일이 있다’며 오히려 주민들을 탓하는 듯이 발언했다고 한다. 그것도 하루살이 같은 정치생명에서 나온 실언일지 모르겠다.


러시아 졸전의 이유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러시아는 졸전을 거듭하고 있다. 그런데, 이에 대한 분석이 참 재미있다. 푸틴 주변의 충성파들이 푸틴의 심기를 거스르지 않기 위해, 푸틴에게 전황에 대해 제대로 보고를 하지 못했다는 분석이다. 그래서, 제대로 된 명령이 내려질 수 없었단다. 푸틴의 수하들도 조직에 충성하느라 국가의 안위를 내팽개친 것이다. 애초에 정당화되기도 어려운 침략이었기는 했지만 말이다.


현대에서만 그런 것도 아니다. 수많은 외란을 겪은 조선시대에도, 소위 충신의 이름으로 왕이나 자신의 당파의 입맛에 맞는 보고를 올리다가 나라를 위험에 빠뜨린 간신들이 어디 한두 명이던가.


그렇게 조직에만 충성하다가 나라를 위험에 빠뜨리는 자들을 기록할 때, 역사는 자비가 없다.


우리가 지켜볼 것들


시민과 국가를 먼저 생각하지 못하는 우매함을, 조직에의 충성으로 과연 만회할 수 있을까?  우리가 겨우 그 정도밖에 안 되는 정치체계를 갖춘 나라는 아니라고 믿는다. 그래서, 조직에 충성하느라 국민을 무시하는 정치인이 있다면, 그 조직은 그를 어떻게 대하는지 우리가 잘 감시해야 한다.


비단 시의회가 아닌 중앙정치에서도, 여당이 아닌 야당을 볼 때에도, 우리가 꼭 생각해 볼 지점이 아닐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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