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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잭변 LHS Sep 22. 2022

인어공주의 피부색

디즈니의 실사 <인어공주>를 기다리며

인어공주의 주제와 변주들


내가 살던 세상과 다른 세상의 누군가를 만나 사랑에 빠지지만, 곧 현실의 벽에 부딪혀 그 사랑이 이루어지지 않는 이야기는 많은 작품들에서 변주된다. 심지어 안데르센의 동화에서도 그 이야기는 ‘인어공주’라는 동화로 만들어져 있다.


이 인어공주는, 다소 슬픈 결말의 안데르센의 원작 버전도 유명하지만, 디즈니가 만든 해피엔딩의 애니메이션도 매우 유명하다. 디즈니의 인어공주는 안데르센의 원작과는 완전히 다르게, 인어공주와 왕자가 현실적인 제약을 모두 극복하고 사랑을 이루는 결말로 끝을 맺는다.


어쩌면, 원작과 애니메이션의 이렇게 다른 결말은, 서로가 자란 환경이 다른 두 사람의 사랑이 그 시대에 어떻게 받아들여지는가에 대한 각 시대의 기대가 다르기 때문은 아닌가 싶다.


사랑을 방해하는 ‘인종에의 편견’

과거와는 달리, 현대에는 두 사람의 사랑을 방해하는 사회적인 요소들이 많이 사라지고 있다. 그리고, 우리 사회도 그런 사회적인 요소들은 사라져야 한다는 자각을 더 많이 하고 있다. 하지만 그럼에도, 사랑에는 여전히 사회적인 장애물들이 많이 남아있다.


단일민족이라는 진부한 신화에 여전히 빠져 아예 고민의 흔적조차 잘 보이지 않는 우리나라에서는 아닐지 모르겠지만, 많은 다른 나라에서는 민족이나 인종에 대한 편견도, 그런 선명한 장애물 중 하나이다.


물론, 백여 년의 투쟁을 통해 인종에 대한 선입견은 점차 사라지고 있다. 하지만, 그럼에도 눈에 보이는 외모로 사람들의 본성이 다르다고 치부하고 싶은 편견들이 많운 나라에 남아있다. 그런 편견은, 개별 사람의 성격에 대해 깊이 생각하지 않는 인간의 나태함 때문인데, 그런 나태함이 인종에 대한 무의식적인 차별까지 자아내고 있다.


사실 ‘피부색이 다르다고 사람들이 다르지 않다’는 명제를 수용한다면, 가상의 캐릭터의 인종이 무엇이든 무슨 상관일까? 실사 영화의 비늘 색깔이 애니메이션 원본과 다르다고 누구도 화를 내지 않는 것처럼, 피부의 색깔이 애니메이션 원본과 다르다고 화를 낼 일도 아니다. 애초에 그 애니메이션 원본조차, 결말부터도 안데르센의 픽션 원본과 전혀 다른, 하나의 변주일 뿐이다.


낯섦이 불편할 때


낯섦은 불편한 감정을 일으킬 수 있다. 하지만, 그럴 때 낯섦을 탓해서만, 불편한 감정을 사라지게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성숙하게 자신의 감정을 살펴볼 줄 아는 사람이라면, 내 감정의 불편함이 어디에서 기인하는가를 곰곰이 생각해 볼 테다.


더군다나 인종과 같이 오랜 기간 사람들이 ‘낯섦’을 ‘차별’의 근거로 삼아왔던 요소라면, 이에 대한 내 불편한 감정이 잘못되었을 가능성은 매우 크다.


디즈니의 실사 ‘인어공주’가
기대되는 이유


이번 디즈니의 실사 ”인어공주“는 낯선 환경에서 자란 두 사람의 사랑이라는 작품의 주제를 잘 표현할 것으로 기대된다. 그 과정에서, 아름다운 목소리를 가진 배우의 열연이 애니메이션 작품이 다 표현해 내지 못한 현실감을 북돋아줄 것을 기대해 본다. 논란이 되고 있는 그녀의 피부색은 오히려 사랑이 극복해 내야 할 장애물들, 예컨대 ‘피부색에 대한 편견’을 드러내 주는 좋은 장치가 될 수도 있지 않을까 싶다.


언어, 종족, 피부색 등 다른 요소들에 더 집중하는 불쌍한 영혼들 (Poor Unfortunate Soul)이 그 사랑을 이해해 내지 못한다면, 그건 그들이 극복할 문제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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