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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잭변 LHS Jun 26. 2022

범주화라는 폭력에 대해 생각하다.

룰루 밀러의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를 읽고

우리가 쓰는 척도들을 불신하는 것이 우리가 인생을 걸고 해야 할 일이라고. 특히 도덕적, 정신적 상태에 관한 척도들을 의심해봐야 한다. 모든 자ruler 뒤에는 지배자Ruler가 있음을 기억하고, 하나의 범주란 잘 봐주면 하나의 대용물이고 최악일 때는 족쇄임을 기억해야 한다.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 룰루 밀러



사람의 뇌는 무척 효율적이다. 뜨거운 음식을 먹으면 바로 뱉어내고, 파리가 들끓는 쓰레기는 급히 피해서 걸어가는 류의 행동들이, 별다른 사고 없이도 금방 일어난다. 끊임없이 변하는 외부환경의 변화에 대하여 즉각적인 판단을 내기 때문에 진화한 결과이다.


그런 효율성을 추구하다 보니, 사람의 뇌는 외부환경을 쉽게 범주화하려고 한다. 눈에 익숙한 것들은, 위험성이 없는 것으로 범주화하고, 낯설어 보이는 것은 위험한 것으로 범주화한다. 또 비슷하게 생긴 것들을 분류화해서 그 차이를 찾아내려는 노력을 계속한다. 이런 방식의 범주화는 오랜 시간 꽤 효율적이었기 때문에, 인류가 외부세계를 이해하는 과학을 발전시키는 데 큰 도움이 된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세상이 진정 ‘범주화’로 이해할 수 있는 곳일까? 우리가 이해하기 쉽게 만든 척도일 뿐인 그 범주대로, 세상이 이루어져 있는 것일까? 범주에 벗어나는 새로운 발견들은, 우리를 끊임없는 의심에 빠져들게 한다.


가장 큰 문제는 이런 범주화가, 사람에 대해 가해질 때 벌어진다. 외부 환경을 범주화해서 위험성을 분류해 효율성을 추구하려는 습성이, 때로는 다양한 이야기를 가진 ‘다른 사람들’을 판단할 때에도 발현되고 마는 것이다.


인종에 따르는 차이가 있다고 생각하거나, 성별에 따른 삶의 방식이 달라야 한다고 전제한다거나, 국적에 따라 도덕관념이 떨어지기 십상이라고 치부하는 식의 척도 말이다.


하지만, '사람'은 단순한 요인들에 좌우되는 사물이 아니다. 타인의 삶 하나하나는 오롯이 그만의 이야기를 담고 있기 때문에, 오만한 한 개인이 이들을 함부로 범주화하는 것은, 폭력이다. 타인에게 가해지는 많은 폭력과 전쟁범죄들은, 그런 ‘범주화의 오류만 없애도, 대부분 사라지게 할 수 있을 테다



룰루 밀러의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이에 대한 마법과 같은 이야기이다. 장르를 넘나드는 룰루 밀러의 유려한 문체는, 데이비드 스타 조던의 인생과 룰루 밀러의 삶으로, 독자들을 가져다 놓는다. 그렇게 이야기를 잘 따라온 독자들이라면, 책의 마지막에 이르러 인생의 깊은 심연을 두려움 없이 바라볼 수 있는 용기를 얻을 수 있다. ‘타인에 대한 범주화’와 같은 싸구려 방식을 쓰지 않더라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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