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성년자 자녀를 가진 성전환자의 성별정정 사건
민주사회에서, 사법부는 정의의 보루였던 적이 많다.
서슬퍼렇던 군사정권 시절에도, 많은 시국사건들에서 사법부는 정권의 입맛에 맞징 않은 판결들을 내는 경우들이 있었다. 그런 사법부 선배들의 노력이 있었기에, 우리나라의 법치주의는 이름 뿐인 장식적 헌법의 시대를 지나 민주적 헌법의 시대로 들어설 수 있었다.
시대는 흘러 민주적인 절차의 정당성은 좀 덜 고민해도 되는 나라가 되었지만, 성소수자들에 대한 사회의 시선은 여전히 갑갑할 때가 많다. 커다란 정치인들의 담론들에도 성소수자들의 이야기는 "나중에" 언급되는 것으로 치부되는 경우가 많아졌다.
그런 와중에, 사법부는 묵묵하게 성소수자들을 위한 의미있는 판결들을 내기 시작했다. 올해 초에는, 동성군인간의 합의된 성관계에 대하여는 군형법에 따르는 추행에 해당하지 아니한다는 취지의 판결을 내렸다. 또한, 이달 초에는, 건강보험료와 관련하여 동성커플의 지위를 인정하는 고등법원 판결이 나와 큰 환영을 받기도 했다.
이에 더 나아가, 어제는 미성년자 자식이 있는 성전환 부의 성별정정을 허용하는 취지의 전원합의체 판결을 냈다. (전원합의체 판결은 기존의 대법원 판결이 있음에도 대법원이 새로이 의견을 변경하고 싶을 때 자주 구성된다.) 그런데, 이 판결에서는 소수자를 들여다 보는 사법부의 변화된 시선이 느껴진다. 물론, 반대의견을 제시한 두 대법관도 계시지만, 다수의견은 미성년자의 자식이 있는지 여부로 부의 성별정정을 가로막지 못한다고 결론내려서, 기존에 부정적이었던 대법원의 의견을 변경했다.
특히, 김선수 대법관님과 오경미 대법관님은 다수의견에 대한 보충의견에서, 성전환자에 대한 따뜻한 시선을 유감없이 드러내셨다.
성전환자의 성정체성 및 성별정정 문제는 제도에 앞서는 인간 실존의 문제임을 깊이 성찰하여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이는 반대의견의 언급과 달리 ‘사회적인 찬반양론’의 대상이 될 수 없다. 성전환자는 인류 사회의 역사와 함께 존재하여 왔음에도 근래에 와서야 그 존재가 긍정되고 있다. 이러한 긍정을 바탕으로 성전환자(transgender)라는 용어도 생성되어 정착되었다. 여기에 이르기까지 성전환자가 소수자로서 감내해야 했던 고통과 좌절이 어느 정도였을지 짐작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대부분 사람들은 생물학적 성과 개인적으로 느끼는 내적인 성 사이에 불일치가 없어 성정체성 문제를 거의 겪지 않기에, 이러한 불일치의 간극에서 오는 근원적인 공포, 자기 부정의 심연이 어떤 것인지 알기 어렵다. 자신의 성정체성을 찾기 위해 성전환자가 내적 분열과 자기 부정을 극복하고 온전한 자 아상을 형성하고자 분투하면서 겪는 어려움에 대해서도 그러하다. 성전환자가 아닌 대다수 사람들은 이 사회의 다수자의 시각에서 다수자의 기득권에 기대어 그 들을 대상화하고 관찰할 여지가 많기 때문이다. 성전환자가 성정체성의 문제로 겪 을 수밖에 없는 이러한 본래적 어려움은 자신을 차별하고 부정하는 사회의 시선에 의하여 극도로 강화된다.
다시 한 번, 대법원은 소수자의 편에 섰다. 이렇게 자랑스러운 대법원에 걸맞는 따뜻한 사회를 만들어갈 책임은 이제 우리 몫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