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잭변 LHS Nov 28. 2020

사랑을 갓 마친 D에게

그렇게 사랑을 마친 너는 아마, 혼자 세상에 내버려진 것 같은 느낌이겠다.

'나도 겪어봤다'는 위로는 너무 흔한 이야기라 와닿지 않을 수도 있겠지.


하지만, 니가 잠못들고 갑갑한 밤이 있으면, 나도 그랬던 적이 있다는 것을 꼭 믿어주기를 바래. 나 말고 세상 사람들은 모두 행복한 것 같아 괴로운 생각이 드는 날이 있으면, 나도 그런 생각이 든 적이 있다는 것도 꼭 믿어주기를 바래. 자존심 때문에 미처 말하지 못하는 어떤 응어리진 이야기를 누군가에게 다 털어놓고 싶지만, 차마 털어놓지 못해 가슴에 콘크리트를 부은 것 같은 적이 있으면, 나도 그랬던 적이 있으니까 꼭 믿어주기를 바래.


내가 꼭 너처럼 엄청 힘들어 하던 어느 날이 있었는데, 그 때 나는 친구 C를 만나 술잔을 기울이다가 물어봤었어. "너는 그 사람의 기억이 잊혀지던?" 하고. 사실, C는 오랫동안 못잊었던 사람이 있었는데, 이루어지지 못하고 지금은 다른 사람과 결혼해서 가정을 꾸며 행복하게 잘 살고 있거든. C는 웃으면서 대답하더라. 그 때 그 사람에 대한 감정은 분명 잊혀지지 않고, 기억이 남아 있노라고. 하지만, 그 감정이 인생의 다른 일들로 하나하나 덮어진다고 하더라. 부모님에 대한 걱정으로, 가족에 대한 사랑으로, 심지어는 일상의 무료함으로.


나는 그게 무슨 말인지 그 때는 몰랐는데, 이제는 알 것 같아. 너의 그 감정이 언젠가 사라질 것이라고 내가 위로한다면, 거짓말이겠지. 사라지지 않을거야. 아마도 우리 마음 속 한 곳에 끌로 새긴 흉터로 남아 있을 수 있어. 


하지만, 내가 약속할 수 있는 게 있어. 그런 흉터가 네 마음에 남더라도, 그걸 품고 있는 네 마음은, 시간이 갈수록 무척 자라서, 그 작은 흉터는 신경쓰지 않게 될거라는 것이야. 그래서 어느 날은, 그 감정이 있는 것조차 더이상 신경쓰지 않는 너 자신이 보여서, 스스로 참 대견한 어떤 날이 올거라는 것은 내가 약속할게.


서둘러 그 감정에서 벗어나려 발버둥치지 않아도 돼. 그 감정 때문에 당분간은 네가 아프더라도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니야. 그냥 천천히 거기서 걸어 나가도록, 내가 같이 걸어가줄게.


니가 나한테 오래전에 그래주었던 것처럼 말이지.

매거진의 이전글 직업병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