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암동 싸이드

나의 아지트 소개

by 잭변 LHS

후암동 용산고등학교를 마주 보고 있는 작은 건물의 2층에는, "후암동 싸이드"라는 이름의 작은 와인바가 있다. 나와 내 친구들은 그곳을 "후싸"라고 줄여서 부른다. 넓은 매장도 아니고, 기껏해야 10평 남짓 되는 정사각형의 매장에는, 항상 사장님 혼자서 여러 테이블을 관리하고 있다. 그리고, 사장님의 곁을 지키는 "하쿠"라는 강아지 한 마리만 빼면, 다른 종업원은 없다.


내가 후싸에 처음 가게 된 계기는, 우연히 동네 산책 중에 본 간판 때문이었다. "Wine $5"라는, 다소 투박한 간판에 살짝 웃음이 나면서 호기심이 들어, 친구와 처음 후싸에 발을 들이게 되었다. 과연 간판에 적힌 대로, 그 집의 와인은 한잔에 5천 원짜리부터 준비되어 있었고, 와인 한 병은 9,900 원부터 2,3만 원대까지도 저렴하게 준비되어 있었다. 사장님이 선별한 정말 맛있는 고급 와인들은 6,7만 원대까지도 준비되어 있었지만, 사장님은 특별히 비싼 와인을 주문하지 않아도 항상 웃음으로 손님을 맞아 주고 있었다.


처음 후싸에 발을 들이게 된 이후로는, 가끔 후싸에 혼자서 책 한 권을 들고 가기도 했다. 후싸의 창가에는 혼자서 앉아 책을 보면서 와인을 즐길 수 있을 정도로 아늑한 자리가 있었기 때문이다.

후싸의 명물, 2층 오픈 테이블

그곳에서 와인 한 병과 또 3천 원짜리 치즈 플레이트를 먹으면서 책을 읽고 있으면, 후싸의 특별 종업원인 강아지 "하쿠"가 심심하다고 놀아달라고 내 다리 밑으로 들어오기도 했다. 그러면, 나는 하쿠가 좋아하는 테니스 공 모양의 장난감을 던져주기도 했는데, 하쿠는 그걸 물어다가 금세 또다시 던져달라고 가지고 와서, 내 독서를 방해하기도 했다. 사실 나도 독서보다는 하쿠를 보고 싶어서 간 적도 꽤 되니까, 사장님 이야기대로 "하쿠는 밥값을 하는 강아지"였다.

후싸의 유일한 종업원 하부장 "하쿠"

그렇게 1년간 혼자 오가면서 독서 스폿이 되어준 후싸에서, 나는 어느덧 말없이 혼자 책을 읽고 가는 단골이 되어 있었고, 사장님도 나를 반갑게 맞아주었다. 그러다가 어느 주말 저녁, 손님들이 가득 찬 테이블로 자리가 없어 돌아나가려던 나를, 사장님 친구들이 자신들의 테이블로 초대를 했고, 나는 후싸의 사장님과 그의 친구들과도 금방 새로운 친구가 되었다. 그렇게 후싸에 4년간 들락날락하는 동안, 후싸에서 알게 된 우리는 서로 인생의 이야기를 하며, 또 즐거운 여행을 함께 하며 친해져 갔다.


나는 회사 때문에 후암동에 살기 시작했는데, 이 동네에 산 지 이제 6년이 넘었다. 그동안, 좋고 비싼 아파트를 장만할 기회를 놓치기도 했고, 또 이 후암동이 조금 지겨워지기도 했다. 하지만, 이 동네에는 후싸가 있어서, 또 내 친구들이 머물고 있는 곳이라는 안정감이 있어서, 차가운 서울의 삶이지만 후암동은 조금 더 따뜻하게 느껴진다. 그래서 내가 이 동네를 쉽게 떠나지 못하기도 한다.


코로나 사태 때문에 잠시 문을 닫기도 했던 후싸는, 거리두기 완화로 다시 영업을 재개했다.


아마 이번 주말에도 후싸의 문을 열면, 하쿠가 신나서 달려오는 소리가 들리겠다. 가끔은 좋은 사람들과 힘든 이야기를 하느라, 또 즐거운 이야기를 하느라, 혹은 책을 읽느라, 하쿠의 테니스공을 못 던져주면 하쿠가 삐져버릴 때도 있을 테다.


그렇게 내가 환영받는 공간에서 편안히 취해서 흘러가는 저녁시간이야 말로 행복한 일상이 아닐까. 그런 행복한 시간에는, 하쿠도 어느덧 내 옆 소파 자리에서 편안한 마음에 나에게 몸을 기대고 앉아, 조곤조곤 펼쳐지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가만히 듣고 있을 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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