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넘의 그녀

Driver(3회)

by 이은호



"기사님, 수고 많으셨습니다. 오늘 오빠가 정말 좋은 분을 만나서 다행이네요."


그녀가 그에게 냉수를 건네며 감사 인사를 했다.


"뭘요. 시민의 발인 택시 드라이버로서 마땅히 할 일을 했을 뿐인데요!"


그는 냉수 한 컵을 단숨에 들이켜고 나서 말했다.



그는 차에서부터 그 넘 집까지, 비록 그녀가 부축하였다고는 하나, 후들거리는 발걸음을 한발한발 옮기며 축 늘어진 그 넘을 업고 이동하였다. 그 넘의 체구가 그다지 큰 건 아니었지만 어찌나 무겁던지, 한 걸음 한 걸음 발을 떼면서 기필코 보약을 지어먹어야겠다고 다짐하였다.


겨우겨우 그의 집까지 이동하여 그 넘을 침대에 눕히고 나서야 그는 긴 숨을 내쉬며 비 오듯 흐르는 땀을 닦았다. 다행스럽게도 이번엔 세차용 걸레가 아닌 그녀가 건네는 은은한 향까지 나는 깨끗한 수건이었다.


알고 보니 그녀는 그 넘의 와이프가 아닌 여동생이었고 그 넘과는 달리 외모가 괜찮아 보였다. 그리고 말투나 분위기도 차분하고 지적이어서 그는 은근히 그녀에게 호감을 느꼈다.



차에 기대어 축 늘어져 있는 오빠 모습과 차 뒷좌석이 엉망이 된 모습을 보고 첨에 그녀는 많이 놀랬었다. 그리고 전적으로 자신에게 유리하게 둘러대는 그의 말을 듣고는, 술에 잔뜩 취해 진상 노릇을 톡톡하게 한 오빠를 세심하게 돌봐준 멋진 택시 기사인 그에게 아주 고마워하였다. 그녀의 공손한 태도를 보고 어깨가 으쓱해진 그는 자진하여 그 넘을 둘러업고 집까지 이동하였던 것이다.



".. 그럼 오빠 잘 돌보시고 안녕히 계십시오."


빈 컵을 건네며 그가 인사를 하였다.


"..저... 이것 받으세요. 차비하고 세차비는 받으셔야죠. 시간도 많이 뺏기셨는데 어떡하죠?"


그녀가 빳빳한 만 원짜리 몇 장을 그에게 건네며 말했다.


"아이고~ 괜찮습니다. 남는 게 시간이고 세차가 취미인걸요.^^ 제가 다 해결하면 됩니다. 그리고 오늘은 수입도 좋아서 이러지 않으셔도 됩니다."


그는 자신의 의지와는 달리 이상스럽게 나오는 말과 그녀가 건네주는 돈을 뿌리치는 손을 쳐다보며 그 집을 나섰다.


"내가 왜 이럴까?"


"그래도 차비를 받으셔야 하는데.. 아이참.. 어쩌지?"


그녀의 안타까워하는 목소리가 뒤에서 들려왔다.


그는 택시로 돌아와 차에 올라 시동을 걸었다. 클러치를 밟고 끼리릭 기어를 넣고 차를 출발시켰다. 너무 오랜만에 무리하게 힘을 써서인지 엑셀레이터를 밟는 발이 달달달 떨렸다. 핸들과 변속레버를 잡은 팔이 덜덜덜 떨렸다. 그리고 차 안은 창문 네 짝을 다 열어놨음에도 불구하고 시큼털털한 냄새가 진동을 하고 있었다.



"킁킁~ 이게 뭐야? 아무래도 뭔 냄새가 나는 것 같은데?"


그의 2교대 파트너가 차 안을 이리저리 살피며 중얼거렸다.


"냄새는 무슨. 차가 오래돼서 그렇지..."


"그런가?"


"쓸데없는 소리 말고 오늘 돈이나 열심히 버셔!"


"알았어. 그럼 나중에 보자구!"


그의 2교대 파트너는 차를 몰고 휑하니 가버렸고 그는 반대편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몇 걸음을 옮기던 그는 걸음을 멈추고 안주머니에서 까만색 지갑을 꺼내 들었다. 그리고 잠시 생각을 하더니 이내 도로 집어넣고 발걸음을 재촉하였다.




그가 눈을 떴다. 커튼 사이로 강렬한 빛이 들어오고 있었고, 그는 눈이 부셔서 도로 감아 버렸다. 밖의 놀이터에서 아이들이 떠드는 소리가 들려오고 있었다. 시간이 얼마나 됐을까? 그는 다시 눈을 살며시 뜨고 벽시계를 쳐다보았다. 오후 2시 40분.


"시간이 꽤 됐군."


그는 오랜만에 늘어지게 잠을 잤다. 택시 드라이버를 하다 보니 수면시간이 일정치 않아 늘 깊은 잠에 빠지지 못하고 잠을 설치곤 했는데, 지난밤엔 모처럼 힘을 쓴 덕분인지 세상모르고 잠들었던 것이다.


오늘 그는 비번이었다. 그는 느긋한 마음으로 드립커피를 내려 커다란 머그잔에 따르고는 담배 한 개비를 입에 물고 창가로 다가갔다. 햇볕이 따사로이 내리쬐는 놀이터엔 아이들이 즐겁게 놀고 있었다. 그가 창문을 열자 제법 시원한 바람이 불어왔다. 그는 담배연기를 후~ 내뿜었다. 담배연기가 흩어지며 그사이로 한 여인의 어렴풋한 윤곽이 떠올랐다.



띵동! 띵동! 그가 몇 번이나 벨을 눌렀지만 안에선 아무런 기척이 없었다.그가 한참을 망설이다 이내 발길을 돌리려는데 안에서 말소리가 들렸다.


"누구세요?"


어제 새벽 그녀의 목소리인 듯했다.


"..저... 어제 새벽에 왔었던 택시 드라이번데요..."


".. 그러세요? 그런데 무슨 일이시죠?"


그녀의 조용한 그러면서도 품위 같은 게 깃든 목소리가 들려왔다.


"..저... 차에 보니까 손님 지갑이 떨어져 있더라구요. 그래서 전해 드리려고..."


"! 죄송하지만 잠시만 기다려주세요."


몇 분의 시간이 흘렀다. 그가 새로 빼어 문 담배 한 개비가 다 타들어 갈 즈음 문 열리는 소리가 나고 그녀의 얼굴이 보였다. 그녀의 머리가 젖어있는 걸로 봐서 아마도 씻고 있었던 모양이었다. 화장도 안 한 그녀의 맨 얼굴엔 청초한 아름다움이 배어있었고 옅은 비누향이 났다. 그녀의 얼굴을 보면서 그는, 그래서 벨을 눌러도 대답이 없었던 것이군 하며 생각하였다.


"어서 오세요. 자꾸 신세를 지는군요. 안 그래도 오빠가 지갑을 찾더라구요."


그녀는 살짝 미소를 지으며 말하였다. 미소를 띤 그녀의 얼굴엔 청초한 아름다움에 더해 부드러움까지 배어있었다.


"그래.. 오빠는 좀 괜찮으신가요?"


그도 미소를 지으며 예의상 오빠의 안부를 물어보았다.


" 괜찮습니다. 좀 늦게 출근하긴 했지만..."


"다행이군요. 그때 당시론 상당히 취하셨던데..."


"다 기사님 덕분이죠. 좋은 분을 만나서..."


"자~ 여기..."


그가 그녀에게 손에 든 지갑을 내밀었다. 그녀의 조그맣고 하얀 손이 가만히 지갑을 회수해갔다. 이어 그를 쳐다보며 그녀가 말했다.


"아! 이거 밖에서 실례했군요. 손님이신데... 안으로 좀 들어오시죠."


"손님은 뭘요! 볼일도 다 봤고 그냥 가볼게요."


"그러시면 안 되죠. 들어오셔서 차라도 한잔하고 가세요."


"..... 그럼.. 차나 한잔 얻어 마실까요?"


들어오지 말래도 밀고 들어갈 판에 그는 마지못해 응하는 듯 뜸을 들이다 안으로 들어갔다. 여자 혼자 있는 집에 자신이 입성한다는 긴장감에 그의 가슴이 벌렁벌렁 뛰었다.


"식구가 별로 없으신가 봐요?"


그녀가 안내하는 거실 소파에 앉으며 그가 말했다.


". 오빠랑 저랑 둘이 살고 있어요. 부모님은 고향에 계시고요."


".. 그렇군요. 이곳에 사신지는 오래되셨나요?"


" 3년쯤요."


"그 전에는요?"


"...."


순간적으로 그녀의 얼굴에 찬 기운이 스쳐 지나가는 걸 그는 느낄 수 있었다.


"제가 괜한 걸 물어봤군요."


"아.. 아니에요."



"자 그럼 이만 일어나야겠네요. 커피 잘 마셨습니다."


그가 커피 잔을 비우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저.. 연락처라도 좀 남겨주세요. 오빠한테 지갑을 전해드리면 아마도 찾을 텐데... 이래저래 신세 진 게 많아서..."


그녀가 따라 일어서며 그에게 메모지와 펜을 건네주었다.


"신세라니요, 별말씀을. 택시 드라이버로서 당연히 해야 할 일을 할 뿐인데."


말은 그렇게 하면서 그는 메모지와 펜을 빼앗듯이 건네받아 큼지막하게 자신의 연락처를 적어 나갔다. 손에 힘을 주어 꾹꾹 눌러쓰는 그의 입가에 살포시 미소가 잡혔다.



Best Driver 한 성 수
01×-8××-××××>




<4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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