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누구?

Driver(4회)

by 이은호


(4회)



한성수! 그는 누구인가? 여기서 잠시 이 소설의 주인공인 그를 돌아볼 필요가 있겠다. 아무래도 글의 주인공이라고 하면 그 정도 대접은 해줘야 되지 않을까?



올해 서른여섯인 그는 노총각이다. 요즘엔 나이 많은 노총각들이 장가도 안 가고 독립도 안 하고 부모에 얹혀사는 경우가 많다고 하는데, 그는 적어도 그 정도는 아니니까 조금은 철이 들었다고나 할까?


그는 혼자 살고 있다. 아침에 눈을 뜨면 잘 잤냐고 인사를 나눌 사람도, 아플 때 많이 아프냐고 약 사다 주며 위로해줄 사람도, 기쁜 일이 있을 때 기쁨을 함께 하고 슬픈 일이 있을 때 슬픔을 같이 나눌 사람도 없다. 그가 이렇게 혼자 사는 이유는? 어떻게라도 대 볼 부모가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 그는 고아다. 외아들이었던 그는 어린 시절에 사고로 부모를 잃고 친척집에 맡겨졌다. 그렇게 가까운 친척은 아니었는데, 그 집에는 자식이 없었고 나이가 많은 그들 부부는 그를 친자식 이상으로 애지중지 키웠다.


하지만 친부모의 온전함을 채우지 못해서인지 아님 원래 종자가 그랬는지는 모르지만 그는 어지간히도 말썽을 피웠다. 학창 시절 그는 못된 짓이란 못된 짓은 죄다 하고 다녀 노부부는 늘 학교로 파출소로 불려 다녀야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 노부부는 그에게 싫은 소리 한마디 하질 않았다. 다만 그가 있음에 감사할 뿐이었다.


세월이 흘러 그가 세상에 눈을 떴을 때 그의 곁엔 아무도 없었다. 아마도 그의 불효가 한몫했음인지 아님 그들의 운명이 그렇게 정해져 있었음인지, 그들 노부부는 비교적 일찍 차례로 세상을 떠났고 그는 때늦은 후회를 하며 눈물을 흘렸다. 그리고 세상을 혼자 살기로 결심하였다.


가정을 꾸리고 아이를 낳아 키운다는데 자신이 없었다. 자신의 2세가 자신과 같은 전철을 밟지 말란 법이 없었으므로...



그런 그가 택시 드라이버로 나선 지는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그는 군 제대를 하고 번듯한 회사에 생산 관리자로 취직을 하여 평범한 삶을 살았었다. 하지만 그에게 그런 사치는 애당초 어울리는 일이 아니었다. IMF가 터지고 그 번듯한 회사는 경영난에 대규모 정리해고에 나섰다. 그는 노조의 최일선에 서서 정리해고에 반대하여 투쟁하였고 결국은 회사 업무방해로 구속 수감되었다.


3개월 후노사 간 합의로 풀려나 복직되긴 했지만 그는 그 번듯한 회사에 염증을 느껴 미련 없이 사표를 던졌다. 대신 처자식이 딸린 다른 가장 한 명이 정리해고 대상에서 구제되었다.


때가 때인지라 다른 번듯한 회사에서, 더군다나 적극적인 노조활동 전력이 있는 그를 받아줄 리가 만무하였고, 그도 직원들을 기계부품 정도로만 생각하는 그딴 회사들만 즐비한 세계에는 머물고 싶은 마음이 없었다.


세월을 죽이다 그는 좀 더 자유스럽게 여기저기 마음껏 돌아다닐 수 있는 택시 드라이버라는 직업에 매력을 느꼈다. 그리고 선택하였다. 택시 드라이버로 새로운 삶을 살아보자고. 그리고 그렇게 몇 년을 보내면서 택시 드라이버란게 나름 할만한 직업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삐리리리~ 삐리리리~'

그가 집에 돌아와 비스듬히 누워 TV를 보고 있는데 핸드폰이 울렸다.


"여보세요?"

"한성수씹니까?"

" 그런데요.. 제가 한성숩니다."

"아.. 안녕하십니까? 저는.. 엊그제 신세를 졌던 택시 손님입니다. 고맙게도 제 지갑까지 찾아주셨더군요."


전화를 걸어온 사람은 바로 그 넘이었다.

".. 그러세요?" 그는 짐짓 태연하게 대답하였다.


"그때는 정말 고마웠습니다. 제가 사실은 술을 잘 못하는데.. 그날은 너무 취해서요. 뭐라고 감사의 말을 드려야 할지.. 뭔가 보답을 해야 할 텐데 말입니다."


그 넘은 그때의 기억이 전혀 없는 모양이었다. 그가 억지로 끌어낸 일, 땅바닥에 눕힌 일, 세차용 걸레로 얼굴을 박박 닦은 일 등등... 게다가 바지며 팬티까지 벗겨진 사실을 알면?


"뭘요~ 별일도 아닌데.. 그냥 신경 끄십시오. 저도 그러고 싶은데..."

그는 어둠속에서 희끄무레하게 빛나던 볼기 두짝을 떠올리며 말했다.


"그래도 그렇지가 않지요. 사람이 신세를 졌으면 보답을 해야죠. 언제 시간 좀 내주시겠습니까? 식사 대접을 하고 싶은데..."


그 넘은 제법 끈질기게 늘어지고 있었다. 혹시 저 넘이 말은 저렇게 하지만 그날의 복수를 하려는 건 아닐까? 그는 그 넘의 말에 의심이 들었다.


"그냥 잊으시면 되는데..." 그의 말꼬리를 흐리는 대답에...


"아닙니다~! 꼭 그러고 싶군요!!"

그 넘은 마치 상대방의 약점이라도 잡은 듯 단호하게 말하였다.


뭐야? 꼭 복수혈전을 벌이겠다는 강력한 의지의 표현인가? 그렇다면 할 수 없지! 결투에 응하는 수밖에... 그는 마지못해 결론을 내렸다.

"...그러면.. 그렇게 하지요."


"감사합니다. 혹시 쉬는 날이 언제시죠? 쉬는 날 저녁 시간에 저희 집으로 와주시면 좋겠습니다. 밖에서 대접하는 건 성의가 없다며 동생이 꼭 집으로 모시자고 하네요."


"예?! 아~ 예.. 그.. 그렇다면 꼭 가야지요. 돌아오는 월요일에 가도 될까요?"


"네.. 괜찮습니다. 그럼 그날 뵙겠습니다."


저 넘이 홈그라운드로 불러들여 피비린내 나는 복수전을 꿈꾸는 모양인데, 그래도 그녀 얼굴을 볼 수 있다면 호랑이 굴이라도 가야지! 그는 전화를 끊으며 굳게 의지를 다졌다.




'띵동! 띵동!'

그는 오랜만에 정장을 하고.. 몸이 부자연스럽고 쑥스럽기도 했지만.. 화사한 장미 꽃다발을 들고 그 넘.. 아니 그녀의 집 벨을 누르고 있었다.


"네~ 잠깐만요!"

차분한 여자 목소리가 들리는가 싶더니 잠깐만도 필요 없이 이내 문이 열리고 그녀의 얼굴이 나타났다.


"어서 오세요. 이렇게 와주셔서 감사합니다!"

고개를 숙이는 그녀의 모습에 그도 황급히 고개를 숙여 인사를 하였다.


"그동안 잘 지내셨나요?"


"네.. 덕분에요."


적당히 화장을 하고 화사한 옷차림을 한 그녀의 모습엔 지난번에 보았던 청초한 아름다움과 부드러움 위에 섹시함까지도 갖추고 있었다.


그가 들어선 집안에는 그녀 말고는 아무도 없었다. 대신 식탁에는 음식이 잔뜩 차려져 있었고 맛있는 냄새가 솔솔 그의 군침을 돌게 했다.


"우선 이쪽으로 앉으세요. 오빠한테 연락이 왔는데 도착할 때가 다되었거든요."

그녀는 그를 소파로 안내하였다.


뭐라고?! 손님을 초대해놓고 쥔이 없어? 순간적으로 그는 기분이 나빠지려다가 그녀와 단둘이 있다는 생각에, 그 넘이 갑자기 뭔 일이 생겨 아예 안 왔으면 좋겠다고 생각하였다.


"오늘 뵈니 꽃보다도 아름다우신 것 같군요. 이거 받으시죠!"

그가 꽃다발을 내밀며 말했다.


"아유~ 무슨 꽃다발씩이나... 아무튼 그렇게 칭찬해주시니 고맙습니다."

그녀가 얼굴을 살짝 붉히며 대답하였다. 그리고 말을 이었다.


"그쪽도 그렇게 양복을 차려입으시니까 멋지신데요. 기사복 입었을 때도 괜찮았지만요."


역시 오는 정이 있으면 가는 정이 있다고 이렇게 서로 칭찬을 주고받으니 얼마나 분위기가 좋은가! 그는 속으로 흡족한 기분이 들었다. 더욱이 그녀도 자신을 나쁘게 보지는 않은 것 같지 않은가 말이다.


"그런데 실례지만.. 성함을 아직 모르는군요. 제 메모대로 저는 한성수라고 합니다만..."


".. 그렇네요. 저는 미혜예요. 차미혜!"


"차미혜.. 이름도 예쁘시군요!"

그는 내친김에 용기를 내었고, 그렇게 그녀의 이름을 알아낼 수가 있었다.



'띵동! 띵동!'

제법 분위기가 잡히려고 하는데 분위기를 깨고 이 울렸다. 아마도 그 넘이 별일 없이 무사히 귀가하는 듯싶었다. 미혜 씨가.. 이제 이름을 알았으니 그녀가 아니고 미혜 씨다.. 현관문을 열고 오빠를 맞았다.


"오빠! 손님 오셨어요."


".. 그래? 내가 늦었군."


남자의 목소리와 인기척이 들리고 거실에 그 넘의 모습이 나타났다.


그 넘은 그를 보며 씩~ 웃고 있었다.

그도 그 넘을 보고 씩~ 웃어 주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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