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날 오전 한성수는 복잡한 도심의 한가운데 있었다.
기름 한 방울 나지 않는 나라에 무슨 놈의 차들이 이렇게나 많은지.. 1분에 1미터도 전진을 못하는 차량의 행렬에.. 그는 울화를 겨우겨우 삭이고 있었다.
출근시간이 한참 지난 시간임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차가 밀리는 걸 봐서는.. 근처 백화점에서 세일이라도 하는 모양이었다.
남이야 달랑 한 잔에 일백만 원짜리 양주를 마시건.. 달랑 한 장에 삼백만 원짜리 금팬티를 걸치건 그가 상관할 바는 아니었지만.. IMF가 왔던 게 불과 엊그제인데 벌써 모두들 까맣게 잊고 흥청망청하는 것 같아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금붙이 팔고 땅 팔고 기업 팔아 나라의 국부를 모두 외국넘들에게 헐값에 넘겨주고는.. 그 대가로 들여온 외국자본을 마치 어디서 공돈이라도 생긴 양 흥청망청 쓰고 있는 것이다.
서민들이 느끼는 경기는 아직도 최악이고 소득은 쥐꼬리인데.. 연일 최저치를 기록하며 떨어지는 금리는 마치 사탄의 달콤한 유혹과 같아서.. 마구잡이로 대출을 받아 그걸로 막 긁어대고 있는 셈이다. 뒷감당은 그야말로 뒷전이고...
그는 요즘 정부 주도로 온 국민을 빚더미로 몰아넣고 있다는 느낌을 강하게 받는다.
소득 수준은 저 밑바닥이지만.. 남들이 하니까 나도 한다는 식으로 너도나도 차를 끌고.. 그것도 기왕이면 고급 차로.. 복잡한 도심으로 꾸역꾸역 기어 나오니 차가 밀릴 수밖에 없지 않은가?!
해서 운전으로 먹고사는 택시 드라이버의 입지는 점점 좁아지고 있었다.
이러다가 택시 드라이버는 존재의 이유마저 사라져 버리는 게 아닐까? 최소한 공존의 의미라도 찾아야 할 텐데...
♪♬ ..지금 이 순간이 가장 행복할지도 몰라 잡히지 않는 걸 잡으려 애쓰면 세월이 나를 버리고 바쁘게 살다가 나 힘이 없을 땐 누가 곁에 있을까.. ♬♩
그는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노랫가락에.. 마음을 최대한 진정시키려고 애쓰고 있었다.
그런데 문제가 발생하였다.
저 밑바닥에서 고약한 신호가 올라오고 있었던 것이다.
이름하여 배변의 고통...
보통의 경우.. 원재료가 인체라는 공장에 들어가서 온갖 공정을 거쳐.. 완제품으로 만들어져 출고되는데 24시간이 걸린다고 한다.
그래서 하루에 한 번 출고시키는 게 정상인데.. 그렇다면 아직 여유가 있는데...
이런 이상 징후는 어디서 오는 것일까?
그는 서서히 조여 오는 아랫배의 진통과 뒤쪽으로의 은근한 통증을 느끼며 생각하였다.
"그렇구나! 어제 내가 과식을 했지!!"
어젯밤 그는 그녀.. 미혜 씨 집에서 오랜만에 포식을 하였다.
혼자서 국밥이나 비빔밥을 사 먹든지.. 아님 집에서 라면을 끓여먹던지 푸석푸석한 빵조각이나 씹던 그가 아니었던가?
그런데 포근한 가정집에서 정성이 가득 담긴 따뜻한 밥과 푸짐한 요리를.. 이런저런 얘기로 웃음꽃을 피워가며 먹었으니 어찌 과식을 하지 않을 수가 있었으랴!
게다가 예쁜 그녀가 옆에서 고운손으로 이것저것 자상하게 챙겨주는데 말이다.
그 넘.. 아니 그녀의 오빠 차상호는 알고 보니 진상이 아니고 진국이었다.
말짱한 모습을 보니 점잖은 신사였고 외모도 남에게 뒤처지지 않을 정도로 준수하였다.
언행도 부드러워 그가 택시 기사라고 무시하는 듯한 태도는 조금도 찾아볼 수가 없었다.
IMF의 파고를 극복하고 그런대로 잘 나가는 벤처기업의 임원인 그는.. 엉망이 되어버린 그날.. 굉장히 좋지 않은 일이 있었다고 했다.
그래서 평소에도 잘하지 못하는 술을.. 빈속에 마구잡이로 뱃속에 쓸어넣은 끝에.. 그렇게 망가지게 된 것이었다.
물론 본인은 그렇게까지 엉망으로 무너진 줄은 모르고 있었다.
차상호가 그랬다.
기억은 나지 않지만.. 온몸에 흙투성이고 맨살에 긁힌 자국도 있고.. 무릎에 시퍼런 멍도 있고 옆구리도 결리는 게.. 누구랑 다투기라도 한 것 같다고...
그러면서 한성수에게.. 혹시 모르겠냐고 물었다.
한성수는 맘 졸이면서 당근 모른다고 했다.
다만 자신은 ×물까지 쏟아낸 그를 깨끗이 닦아주고.. 집까지 업어다 주었을 뿐이라고 했다.
차상호는 고개를 끄덕이며 한성수의 빈 잔에 술을 따라 주었다.
꾸르륵~ 꾸르륵~!
인체의 공장에서 생산된 완제품이 밑으로 빠져나가지 못하고 계속 헛돌기만 하자 뱃속에서 이상 신호가 울렸다.
하지만 차는 밀려 빠져나갈 구멍은 없고.. 손님과 차를 내버려 둔 채 비상 탈출할 수도 없어.. 그는 어디 버틸 때까지 버텨보자며 뒤쪽 괄약근에 잔뜩 힘을 주어 오므렸다.
5분.. 10분.. 차가 조금씩 빠지기는 했지만 여전히 거북이걸음이었고.. 손님의 목적지는 까마득히 남아있었다.
손님을 내리라고 하면 승차거부로 고발당할 것이고.. 사정을 얘기하자니 추잡스럽고.. 억지로 참고 버티는 그의 얼굴은 하얗게 질리고 진땀이 삐질삐질 흘렀다.
"어디.. 아프세요?"
얼굴이 찌그러졌다가 실실 웃었다가 하얗게 변하고 진땀을 흘리는 그를.. 아까부터 근심스럽게 살펴보던 뒷좌석의 손님이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물었다.
요즘 뽕 맞고 운전하는 택시 드라이버가 있다는데.. 혹시 그런 넘이라도 아닌가 싶은 모양이었다.
"..저.. 그.. 그런 게 아니라..."
수용한계에 도달하였는지.. 자동공정 시스템은 제품을 뒤로 밀어내고 있었고.. 눈까지 하얗게 뒤집어진 그의 입에서 나오는 말은 떨리고 있었다.
룸 밀러를 통해 그를 쳐다보던 손님의 표정이 아주 심각하게 굳어졌다.
그리고 잔뜩 쫄은 목소리로 조그맣게 말하였다.
"..저..기.. 여기서 내리면 안 될까요?"
아.. 하느님이 보우하사~ 우리나라 만세!!
"아~예!! 그렇게 하세요! 가.. 감사합니다~!!"
"...?!"
그는 손님이 내리고 채 문이 닫히기도 전에.. 차를 골목길로 돌려 엑셀레이터를 밟았다.
적당한 장소를 찾느라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얼마를 달렸을까.. 저쪽 건너편 건물 2층에 허름한 다방 간판이 보였다.
그렇다! 고지가 바로 저기다~!
그는 차를 세웠는지.. 시동은 껐는지.. 키는 챙겼는지.. 아무런 생각이 없었다.
다만 고지를 향하여 한발 한발을 내딛는데 최선을 다할 뿐이었다.
조금이라도 아랫배에 충격을 주면 자칫 대형 참사가 생길지도 몰라.. 조금씩 조금씩...
하지만 고지의 점령은 역시 쉽지가 않았다.
1층에서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이.. 그에게 결코 호락호락하지가 않았다.
그는 발걸음을 앞으로 옮기지 못하고 모로 서서 몸을 꼬아가며 한 계단 한 계단을 밟아 올라갔다.
마침 위에서 내려오던 사내 하나가.. 땀을 삐질삐질 흘리며 괴상하게 몸을 비틀어 올라오는 그를 이상한 듯 쳐다보며 스쳐 지나갔다.
마지막 계단을 그는.. 끙차~! 힘을 내어 올라섰다.
드디어 험난한 장애물을 다 넘었다고 기뻐하는 순간.. 피식~ 뒤로 바람 새는 소리가 났다.
"아이쿠~! 고지가 바로 저긴데.. 이젠 다 틀렸구나!!"
그는 정지했다. 그리고 온 신경과 감각과 후각을 뒤쪽으로 모았다.
썩은 계란 냄새가 서서히 풍겨 나고 있었다.
그는 잔뜩 긴장하여.. 천천히 오른손을 엉덩이 쪽으로 뻗어.. 바지 위로 만져보았다.
휴~! 다행이었다! 그건 단지 가스 새는 소리에 불과했던 것이다.
"어서오..."
다방 마담의 인사를 잘라먹고.. 그는 헐레벌떡 화장실로 들어갔다.
이런.. 덴장!
하나뿐인 화장실에서 종업원 아가씨가 물청소를 하고 있었다.
"저기.. 아가씨! 볼.. 볼일 좀 먼저 보면 안 될까요?"
사색이 다된 얼굴로 몸을 배배 꼬는 그를 보고 다행히도 아가씨가 순순히 물러나 주었다.
그는 아가씨가 나감과 동시에 변기에 걸터앉았다.
그리고 바지를 먼저 내렸는지.. 아님 그게 먼저 나왔는지는 생각이 나질 않았다.
단지 엄청난 소리와 함께 뭔가가 그의 뱃속을 빠져나갔고.. 아까 와는 달리 구수한 냄새가 화장실 안에 은은히 피어오르고 있었다.
그는 눈을 지그시 감고.. 시원함을 넘고 쾌감을 넘어.. 강렬하게 온몸에 퍼지는 엑스터시를 느끼고 있었다.
그가 정신을 차리고 눈을 떴을 때 자신의 눈에 비치는 광경은.. 신발과 바지 밑단이 물에 촉촉이 젖어 있었고.. 거의 산만한 엄청난 양의 배설물이..
화장실 변기를 가득 채우고 있었다.
그는 스스로 놀랐다. 이런 엄청난 양이 자신의 뱃속에 들어 있었다니...
스스로 대견해하며 그는 물 내리는 손잡이를 살짝 돌렸다.
그런데 거기서 그는 중요한 사실 하나를 간과하였으니.. 스스로가 대견해했던 그 엄청난 양의 배설물이 과연 제대로 이상 없이 처리될 수 있을까 하는 점이었다.
적어도 그 정도의 양이면 한번쯤은 고민을 했어야 했는데 말이다.
손잡이를 내림과 동시에.. 물과 함께 서서히 차오르며 회전을 하다 쏴~ 하고 내려가야 할 것들이.. 꾸역꾸역 물과 함께 차오르더니..
이내 밖으로 조금씩 흘러넘치는 게 아닌가?
이미 물이 흥건한 바닥에 새로운 내용물이 더해지고.. 더러는 그의 신발이며 바지 밑단에 점점이 묻어 얄궂은 모자이크를 형성하고 있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