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성수는 시외의 한적한 국도를 달리고 있었다.
빽빽한 도심을 떠나 한적한 도로를 씽씽 달리는 건 언제나 기분 좋은 일이었다.
비록 어두워지는 저녁 무렵이라 시야는 좋지 못했지만.. 운전대를 2박3일 잡아본 것도 아니고.. 그냥 눈감고 달려도 될 정도로 충분히 익숙한 길이었다.
손님은 세 명을 태웠다. 남자 한 명에 여자 둘.
"인당 일만오천원 정액이니까.. 음.. 한 번에 사만오천원. 괜찮은 수입이군!"
그의 입가로 미소가 번졌다.
요즘 며칠 딴짓을 한 덕분에 수입이 별로 좋지 못했다. 그래서 그는 장거리를 뛰기로 했고.. 첫 탕으로 손님을 태우고 가는 길이었다.
남자 손님은 잘 모르겠고.. 여자 둘은 외모를 보아하니 술집 아가씨가 분명하였다.
요즘은 대도시 주변의 중소도시에 술집이 많이 생겨.. 거기로 출퇴근하는 아가씨들이 많았다.
계속되는 지역개발로 땅 팔고 논 판 졸부들이 많이 생겼고.. 그들이 갖고 있는 거라곤 시간과 돈이 다였다.
게다가 공해에 찌든 대도시를 떠나 생활거점을 옮긴 부유층도 많아.. 대도시보다 차라리 그쪽 사람들의 돈 씀씀이가 더 나았다.
돈 있는 곳에 술집들이 들어서고.. 술집 있는 곳에 사람들이 모이고.. 남녀가 뒤엉켜 매일 밤이 불야성이었다.
술집이며 모텔들이.. 그것도 초호화의.. 날이 갈수록 늘어났고 이제는 대도시의 술손님마저도 그쪽으로 원정을 갈 정도가 되었다.
덕분에 술손님이건 술집 아가씨건 장거리 택시 손님들이 많이 늘어났고.. 복잡한 시내에서 뺑뺑이 도는 것보다는 그게 훨씬 돈이 되었다.
오늘 아침 그는 다방에서 절체절명의 위기에 처했었다.
넘쳐흐른 ×물에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정말 난감했었다.
한참의 고민 끝에 결정한 것이.. 최고의 전략.. 삼십육계 줄행랑~!!
그는 일단 신발과 바지 밑단에 점점이 묻어있는 모자이크를 휴지에 물을 묻혀 털어 내었다.
냄새야 남겠지만.. 겉으로는 제법 단정하게 닦인 걸 확인한 다음.. 그는 화장실 문을 빼꼼 열고 동정을 살폈다.
아싸~! 일단 종업원 아가씨는 안 보이고.. 마담은 주방 안쪽에서 뭔가를 하고 있었다.
그는 당당하게.. 사실 마음은 허겁지겁.. 밖으로 나갔다.
"지금 바빠서 그러는데.. 담에 올게요."
그는 마담이 서 있는 주방 테이블에 위에 만원짜리 한 장을 놓고 적당한 힘으로 톡 밀었다.
탄력을 받은 배춧잎은 테이블 안쪽으로 미끄러져 나풀나풀 떨어졌고...
"어머~! 괜찮은데.. 그럼 다음에 꼭..."
마담은 주방 바닥에 떨어진.. 배춧잎을 줍기 위해 말꼬리까지 자르며.. 잘 접히지 않는 허리를 접었다.
분홍색 스커트가 거의 터질 정도로 동산만 하게 부풀어 오른 마담의 엉덩이를 눈을 똥그랗게 뜨고 쳐다보던 그는.. 문득 뭔가를 깨달은 듯 잽싸게 다방 문을 나섰다.
그리고는 후다다닥 계단을 뛰어 내려가 차를 세워둔 쪽으로 갔다.
다행히도 차는 그 자리에 그대로 서 있었고.. 그는 급히 시동을 걸고 차를 출발시켰다.
그가 차를 몰고 한참을 가다 룸 밀러로 뒤를 보니..
마담이 계단 아래에서 삿대질을 하며 뭐라고 뭐라고 소리 지르는 모습이 점점 작아지고 있었다.
그는 아침 일을 떠올리며 씩 웃었다.
다시 생각해봐도 절체절명의 위기상황을 잘 넘긴 것 같았다.
비록 택시 드라이버 복장에 ×칠은 했지만.. 만일 붙잡히기라도 했으면 얼마나 ×망신을 당할 뻔했더란 말인가!!
자칫 인상 팍 쓰고 있는 종업원 아가씨 앞에서 하루 종일 화장실 청소를 하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그런데 그게 따지고 보면 자신의 잘못도 아니었다.
적어도 일인분의 양이면 그 정도에 관계없이 제대로 처리되도록 설비가 되어 있어야 했다.
자신이 뭐 코끼리도 아니고 그렇다고 뭐 요코즈나도 아니고 정상 체격의 성인 남자인데.. 싸 봤자 그 양이 얼마나 된다고 넘친단 말인가?!
거기에 까지 생각이 미치자.. 한성수는 오천원짜리를 쓸걸 괜히 만원짜리만 날렸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딴생각을 하며 엑셀레이터를 지그시 계속 밟고 있었고.. 제한속도 70킬로의 국도를 차는 100킬로 가까운 속도로 달리고 있었다.
한참을 정신없이 가는데.. 뭔가 눈앞에서 번쩍 하는 것이었다.
"이크~!" 그는 깜짝 놀라며 브레이크를 밟았다.
그러나 이미 때는 늦은 일~! 룸 밀러에 감시카메라의 뒤꼭지가 보이고 있었다.
"이게 뭐야? 감시카메라잖아!! 여기에 언제 감시카메라가 생겼지?!?!"
그렇다. 그는 과속 감시카메라에 걸린 것이었다.
그러고 보니까 오늘은 그에게 정말 재수 없는 날인 모양이었다.
장거리 한번에 사만오천원 벌이는 고사하고.. 범칙금 오만원에 벌점 15점까지 보너스로 받는 순간이었다.
우리나라는 정말 재수 없는 나라라고 그는 생각했다.
맨날 맨날 늘어나는 감시카메라에 운전도 못해먹을 짓이었다.
더구나 요즘엔 신고포상금 제돈가 뭔가 하여.. 온 백수들이 고리대금 빚까지 내어 첨단장비를 갖추고는.. 곳곳에서 찍어대니 정말 보통 일이 아니었다.
그들이 투하자본을 회수한답시고.. 고리 이자에 전문가 수준의 일당으로 환산해서.. 얼마나 찍어대고 있느냔 말이다!
짜쌰들.. 그 좋은 장비 가지고 모텔 구석에서 졸부들 불륜 장면 한장만 건져도 떼돈을 벌텐데.. 뭐한다고 애꿎은 택시 뒤꽁무니를 쫓아다니는지 모르겠다.
할 말은 또 있다.
그렇게 벌어들인 세금을.. 과연 나라에선 정말로 부족한 도로를 확충하고 교통시설을 개선하는 데 쓰고 있냔 말이다.
더 많은 세금을 벌어들이기 위해 감시카메라나 더 설치하고.. 편법과 불법으로 예산을 전용하고.. 국민을 속이고.. 결국엔 끼리끼리 해쳐먹은(열받은 김에 할 말 다하자!!) 구멍 메우느라.. 공적자금으로 다 들어가지 않느냔 말이다!!
사실 공적자금 용도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부실금융이라는 게.. 어디 일반 서민들이 잘못해서 생긴 것이더냐?!
일반 서민들한테야 문턱 높은 그곳 양반들이 꼬박꼬박 담보 잡고 이자 다 받아 처먹으면서.. 권력자들의 입김을 뒤에 업은 대기업들의 하수인 노릇해서 생긴 게 아니냔 말이다~!
감시카메라 플래시 한방에 잔뜩 열받은 한성수는 제정신이 아니었다.
그리고 차까지 열을 받아 커브 건 내리막이건 더욱 속력을 내어 달렸고.. 옆과 뒤에 앉은 손님들은 잔뜩 졸아 손잡이를 있는 힘껏 움켜쥐고 있었다.
특히 옆에 앉은 사내는 진땀을 삐질삐질 흘리며 하얗게 질려있었다.
한성수가 한참을 열받아 씩씩거리며 달리는데.. 저 멀리 경광등이 번쩍이는 게 보였다.
이크~!! 저건 또 뭐야?!?!
그는 본능적으로 브레이크를 밟았다.
총알만큼이나 빠른 속도로 날아가던 차의 속력이 서서히 줄어들자.. 휴~! 손님들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이마에 흐르는 땀을 닦았다.
경광등이 번쩍이는 곳에서는 경찰들이 임시 바리케이드를 치고 불심검문을 하고 있었다.
경찰의 지시봉에 따라 그의 택시가 정지하자.. 다른 경찰이 다가와 거수경례를 붙였다.
그리곤 고개를 들이밀고 이곳저곳을 기웃거렸다.
운전기사는 얼굴이 벌게 가지고 씩씩거리고 있었고.. 손님들은 후줄근하게 늘어져 땀을 닦고 있었다.
의경은 고개를 갸웃하며 한성수와 옆의 남자 손님을 향해 말하였다.
"면허증 좀 보여주시겠습니까? 그쪽 손님은 신분증을 제시해 주시구요."
의경이 기분 나쁘게도 택시 드라이버인 한성수에게 면허증을 요구하고 있었다.
"나요? 난 택시 드라이버란 말이요. 엄연히 직무수행 중에 있는데.. 무슨 면허증?!"
한성수가 인상을 쓰며 기분 나쁘다는 듯이 말했다.
"그건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저도 직무수행 중에 있다는 말입니다. 저는 면허증을 요구할 권리가 있고 기사님은 면허증을 제시할 의무가 있습니다.
순순히 면허증을 주시겠습니꺄~? 안 주시겠습니꺄~!"
그 넘도 기분 나쁘다는 듯 인상을 쓰며 자칫 지원군이라도 부를 듯 뒤를 돌아보았다.
"어라?! 이 넘.. 쎈 넘이네~!"
한성수는 꽁무니를 바로 내리고 순순히 면허증을 건네주었다. 사실 그는 불법 장거리를 뛰고 있는 중이었던 것이다.
그의 면허증과 손님 신분증을 확인한 의경이 거수경례를 붙이며 물러났다.
한성수는 신경질적으로 기어를 넣고는 차를 급출발시켰다.
차바퀴가 끼기긱 급회전하며 의경 얼굴로 흙먼지가 피어올랐다.
한성수가 목적지에 손님을 모셔다 드리고 돈 사만오천원을 받고 돌아오는 길이었다.
갑자기 소변이 마려워진 그는.. 한적한 산기슭 도로가에 차를 세우고.. 숲으로 들어가 볼일을 봤다.
쏴~~~!
소나기의 세찬 빗줄기라도 맞는 듯.. 풀잎파리들이 사정없이 흔들렸다.
오랫동안 참았던 만큼 배설의 쾌감은 너무 좋았다.
부르르~ 마지막 한방울까지 짜낸 다음 그는 허리춤을 추스르며 숲을 나와 자신의 차로 다가갔다.
그가 차에 올라 막 시동을 거는데 반대편 숲에서 한 사내가 나오는 모습이 보였다.
그리고는 손짓을 하며 택시 쪽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가까이 다가서는 그 사내의 모습은 키가 180은 넘어 보였고.. 건장한 체구에 아래위로 검은색 옷을 입고 있었는데.. 왠지 서늘한 느낌을 주는 모습이었다.
"고속버스 터미널로 갑시다."
뒷좌석에 깊숙이 몸을 기댄 그 사내의 목에서 굵직한 저음이 흘러나왔다.
한성수는 긴장하며.. 룸 밀러를 통해 그 사내를 훔쳐보았다.
눈을 감고 있는 그 사내의 왼쪽 뺨에 길게 그어진 칼자국 흉터가 빛나고 있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