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연일까 아닐까

Driver(7회)

by 이은호



그는 오늘 정말 열심히 일했다.

며칠 어영부영 농땡이 부린 댓가를 만회키 위해 시외로까지 영역을 확장하여 정말 열심히 했는데.. 결과는 돈벌이는커녕 감시카메라에 찍혀 범칙금까지 물게 되었다.

그는 생각했다. 세상은 참 불공평하다고...

"나처럼 성실한 사람이 잘사는 사회는 언제나 오려나?!"



그나저나 그의 배속이 꼬르륵 거리며 신호를 보내고 있었다.

밥달라~ 밥달라~ ♪

그러고 보니까 그는 어제 과식한 대가로 아침에 거사를 한바탕 치룬 다음.. 지금까지 변변한 식사를 하지 못했던 것이다.

그는.. 다 먹고살자고 하는 일인데.. 생각하며 일단은 배를 채우기로 했다.


"보자.. 이쪽 어디에 괜찮은 식당이 있었는데..."

그는 편도 1차로의 지방도를 천천히 차를 몰고 있었다.

한참을 두리번 거리며 식당을 찾는 덕분에 택시 뒤로 차가 죽 밀렸고 뒤에서 연신 빨리가라고 빵빵거리며 성화였다.

급기야 검정색 승용차 한대가 중앙선을 넘어 추월하며 창문을 열고 손가락 욕을 하며 지나갔다.

연이어 하얀색 승용차가 똑같이 중앙선을 넘어 추월하며.. "야~이 ×끼야! 운전 빨랑빨랑 안할래?!" 고함을 지르며 지나갔다.

"저런.. 성질 드러운 놈들~! 니들 그러다 저승길도 지름길로 간다~!"

그는 혀를 끌끌차며 마침 모습을 드러낸 '만점 기사식당'을 향해 오른쪽으로 핸들을 꺾었다.

그리고 널찍한 주차장 한구석에 차를 주차시키고 식당 안으로 들어갔다.


"어서 오세요~!"

하늘색 제복을 깔끔하게 차려입은 여종업원이 밝게 웃으며 그를 빈자리로 안내하였다.

새로 생긴 식당이라서 그런지 식당 안이 깨끗하여 그의 맘에 들었다.

게다가 여종업원의 밝은 웃음까지... ^^


그는 정식에 굴비구이를 추가로 주문하고 TV로 눈을 돌렸다.

마침 뉴스를 하고 있었는데.. 서부경찰서에서 흉악범이 탈옥하였단다.

천신만고 끝에 잡은 흉악범이.. 경찰서 유치장에서 감시 소홀을 틈타 달아났다고 한다.

"에이구~ 걔들이 하는 일이 다 그렇지.. 쯧쯧쯧~!"

그는 혀를 차며 앵커가 이야기하는 흉악범의 인상착의에 귀를 기울였다.

건장한 체구에.. 뺨에 칼자국이라...

"이거.. 어디서 본 듯한데... 어디서 봤더라?!?!"

그의 뇌리에 아까 뒷좌석에 탔던.. 기분 나쁜 분위기의 손님이 떠올랐다.




그가 잠시 볼일을 보려고 한적한 산기슭에 차를 세웠을 때 차에 태웠던 그 손님은.. 한성수가 생각하기에 너무나도 기분 나쁘고 으스스 하였다.

칼자국하며 착 가라앉은 목소리하며...

"예감이라는 게 있는데.. 혹시라도 택시강도면 어쩌지?! 더구나 오늘은 하루 종일 안좋은 일만 있었는데..."


그는 차를 몰면서 이리저리 잔머리를 굴렸다. 그리고 손님 눈치를 보며 슬며시 말을 꺼냈다.

"저기.. 고개 넘어 다리 못미쳐 경찰이 검문을 하고 있던데.. 혹시 이 동네에 무슨 일이라도 있나요?"

아니나 다를까 순간 그 손님이 흠칫하더니.. 착 가라앉은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아.. 저 앞에 세워주세요. 잊은 게 있어서..."

오~예! 작전성공!!


그 손님은 차에서 내리더니.. 차비도 주지 않고.. 샛길로 빠져 숲으로 들어가 버렸다.

하지만 한성수는 그깟 차비가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했다.

어차피 오늘은 드럽게 재수 없는 날.. 최악의 상황만 없으면 감사할 일이었다.

한성수는 그 손님의 뒤통수가 사라지는걸 보고.. 휴~!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엑셀레이터를 밟아 빠르게 그곳을 빠져나왔다.


임시검문소에서는 여전히 경찰들이.. 반대편 차선에서 검문을 하고 있었다.

한성수는 먼지를 뽀얗게 뒤집어쓰고 검문하는 의경들이 불쌍하게 보였지만.. 오늘은 자신의 처지도 그들보다 나을게 없다고 생각하며.. 검문소를 스쳐 지나갔다.




"식사 맛있게 드세요~!"

여종업원이 식탁에 음식을 내려놓고.. 꾸벅 인사를 하고 갔다.

음식은 제법 정갈해 보였고 맛도 그런 대로 괜찮았다.

그는.. 자신도 돈을 좀 모으면 이런 식당이나 해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돌아다니는 게 좋아서 선택한 택시 드라이버지만.. 술에 취해 횡설수설하는 손님이나 아까 같은 수상한 손님을 태울 때면.. 가끔은 딴 생각도 먹게 되는 그였다.


만일 그 손님이 아까 경찰이 바리케이트까지 쳐놓고 찾던 그 넘이라고 생각해 보라!

검문소에서 걸렸을 때.. 한성수 자신이 그 넘의 인질이 되어.. 큰 고역을 치룰 수도 있는 일이 아닌가?! 목숨이 왔다리 갔다리 하는...

그런 생각을 하자.. 그의 등골에 소름이 오싹하고 끼쳐왔다.



삐리리리~ 삐리리리~

얼마 만에 만나는 밥이냐?!

그가 반갑게 밥을 잔뜩 욱여 넣고 우걱우걱 입을 놀리는데 핸드폰이 울렸다.

"여.. 여버세여..?"

밥풀 두어 개가 튀어나와 그의 핸드폰에 맞고 식탁위로 떨어졌다.


"여보세요? 저.. 한성수씨 맞나요?"

가녀린 여자의 목소리였다.

".. 맞습니다만.. 누구시죠?"

"저.. 차미혜예요. 어제 잘 돌아가셨나 하구요.."

"아~예! 안녕하세요? 당연히 잘 돌아갔지요."

잘 돌아가?! 어째 어감이 이상한데?! oO;;


"제가 솜씨가 없어.. 음식이 입에 맞았는지 모르겠네요."

"무슨 말씀을요.. 그렇게 맛있는 식사는 정말 난생처음이었습니다. 덕분에 오늘 아침 큰일도 치뤘... 아.. 아닙니다."

한성수는 황급히 입을 막았다.

하마터면 아침의 황당한 생리적 사고를 스스로 고백할 뻔하다니.. 것도 숙녀분께.. 것도 밥상을 앞에 두고...

그는 경솔한 자신의 입을 손바닥으로 쳤다.


"아~ 아야!"

"예?! 무슨 일이 있나요?"

그녀의 목소리 톤이 올라갔다.

".. 아니고요. 제가 먼저 감사 인사를 드렸어야 하는 건데.. 이렇게 안부 전화를 받자니.. 제가 좀 뻔뻔한 것 같군요. 그나저나 미혜씨께 어떻게 감사표시를 해야 할지..."

"별말씀을요.. 그나저나 식사가 맘에 드셨다니 다행이에요. 다시 한번 자리를 마련해야겠군요. 호호호~"

"그럼 더욱 감사하지요. 하하하~"


그와 그녀는 제법 맞장구를 쳐가며.. 오랜 시간을 꽤나 다정하게 통화하였다.

여자와의 대화에 별로 말주변이 없는 한성수로서는 의외의 상황전개였다.

그녀에 대한 호감과 그녀의 다정한 목소리가.. 그에게 지나친 용기를 준듯 싶었다.

한참을 통화한 끝에.. 한성수는 돌아오는 비번 날 자신이 그녀를 찾기로 하고 전화를 끊었다.

"오예~!"

그는 핸드폰을 쥔 손을 번쩍 들어 올리며 쾌재를 불렀다.

이제는 그녀의 전화번호도 손에 넣었고 그녀와 다시 만날 약속까지 잡은 것이다.

그의 입가로 흐뭇한 미소가 흘렀다.



사실 한성수도 자신의 신상을 그녀에게 제대로 밝히지 않았고.. 자신이 없었던 탓에.. 그녀의 신상도 제대로 물어보지 않았었다.

다만 좋은 느낌을.. 좋은 감정을.. 느꼈던 걸로 만족했었다.

자칫 스쳐지나갈 수도 있었던 그들의 인연의 끈이.. 그렇게 조금씩 이어지고 있었다.



전화를 끊고 그는 숟가락을 다시 들었다.

밥도 국도 어느덧 차갑게 식어버렸지만.. 그것이 문제가 아니었다.


오늘은 비록 조금 전까지 하루를 잡쳤었지만.. 인간지사 새옹지마라고 이렇게 좋은 일이 생길 줄 어떻게 알았으랴~!

어쩌면 내일은.. 좋은 일이 생기지 않을까.....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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