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날 아침 한성수가 눈을 떴을 때는 해가 중천에 걸려있었다.
그는 찌뿌둥한 몸을 억지로 일으켰다. 머리가 깨어질 듯 아파 왔다.
그는 인상을 구기며.. 습관적으로 담배를 찾았다.
하지만 방안 어디에도 그리고 그의 옷 호주머니에도 담배는 없었다.
"이런 덴장~"
그는 할 수 없이 재떨이를 뒤져.. 비교적 상태가 좋은 꼬바리를 주워 들었다.
다행히도 며칠째 재떨이를 비우지 않고 있었다.^^;
그는 꼬바리에 불을 붙이고.. 길게 한 모금 빨아들였다.
꽁초래도 담배는 역시 담배!..라고 기대하며 빨아들였건만.. 평소의 첫 담배처럼 온몸의 세포를 신선하게 자극하며 짜르르 가슴을 적셔오는 그 맛이 아니었다.--;;
입안도 텁텁하고 머리가 띵 아파 왔다.
그는 꼬바리를 재떨이에 비벼 완전한 꽁초로 만들어 버렸다.
그리고 머리를 감싸 쥔 채.. 어젯밤에 무슨 일이 있었던가를 떠올려 보았다.
그녀.. 차미혜의 집 앞에서 '닭 쫓던 개 지붕 쳐다보는 꼴'이 되어버린 후.. 그는 많은 생각을 하였다.
깍두기들과 선글라스 낀 사내.. 그들의 정체는 뭘까? 그리고 그녀와의 관계는?
아무리 잘 봐야 그들은 조직에 몸 담은 패거리로 보였는데.. 순순히 뒤를 따라나서는 그녀의 모습으로 보아 납치되는 모습은 아니었다.
그렇다면.. 음.. 그녀가 보스의 여자?! 내가 조직을 건드렸단 말인가?!?! oO;;
아니지! 아니지!!
그녀는 결코 결혼한 여자 같지는 않았어!!
결혼한 여자가 오빠와 같이 살리도 없잖아?!
그리고 집안에.. 결혼사진이나 아이들의 흔적도 전혀 없었고...
그렇다면.. 혹시.. 고리대금이라도 빌려 썼다가 협박을 받는 건 아닐까?
아니지! 아니지!!
오빠가 잘 나가는 벤처기업의 임원이라고 했잖아!!
그녀 역시 고리대금으로 협박받을 처지로는 보이지 않았단 말이지~!
그럼 뭐야?! 그녀가 왜 그 넘들을 따라간 거야!!
한성수는 그녀 걱정에 속이 탔고 계속해서 밀려오는 궁금증에 어쩔 줄을 몰라했다.
이럴 줄 알았으면.. 그냥 집에서 전화를 걸어 약속을 정하는 건데.. 눈으로 보지나 않았으면 걱정이나 안 하잖아?!
문득 드는 그런 생각에 한성수는 깜짝 놀라며 자신의 머리를 한 대 쥐어박았다.
"이런 이기적인 놈.. 지금쯤 그녀가 커다란 위기에 처했을지도 모르는데..."
그는 천천히 발걸음을 옮기며 온갖 생각에 잠겼다.
자신이 지금 어디에 있는지.. 어디로 가는지도 잊은 채...
"빵빵~!!"
한성수는 깜짝 놀라 뒤를 돌아다보았다.
거의 도로 한복판을 걸어가고 있는 그의 옆으로 차들이 씽씽 달리고 있었고.. 모범택시가 지나가며 경적을 울렸던 것이다.
깜짝 놀란 그는 얼른 길가 인도로 올라섰다.
그의 앞에 쫄래쫄래 기어가는 강아지가 보였다.
그 녀석은 뒤에 사람이 오는 줄도 모르고 가다말고 땅바닥에 코를 처박고 있었다.
그는 앞에서 걸리적거리는 강아지의 엉덩이를 툭 찼다.
"깽~!!"
갑자기 영문도 모르고 한 대 차인 강아지가 꽁지가 빠지게 달아났다.(주, 지금은 애완견이 사람 이상 대접받는 세상이지만 이 소설의 배경이 되는 20년 전엔 개는 그냥 개취급 받는 어두운 일면도 있었답니다.^^;)
쏜살같이 달아나는 강아지를 물끄러미 바라보던 한성수는 자신의 품에서 지갑을 꺼내 뒤적이더니 명함 한 장을 찾아냈다.
<빛나리정보통신 영업총괄 상무 차상호>
그는 핸드폰을 꺼내.. 명함에 적힌 전화번호를 꾹꾹 눌렀다.
뚜~ 뚜~
"네~ 빛나리정보통신입니다." 맑고 상냥한 아가씨의 음성이 흘러나왔다.
"차상호 상무님 부탁합니다."
"잠시만요.. 아.. 오늘 차 상무님 휴가라고 하십니다."
"그래요? 예 알겠습니다."
차상호는 회사에 없었다. 휴가라... 아무래도 분위기가 이상한걸?!?!
한성수는 명함에 적혀있는 차상호의 핸드폰 번호를 꾹꾹 눌렀다.
뚜~ 뚜~ 뚜~
"지금은 가입자 분이 전화를 받을 수 없는..."
역시 맑고 상냥한 아가씨의 음성이 흘러나왔다.
그는 전화를 끊었다. 아무래도 분위기가 이상해... 불길 하단 말이야!!
그는 자꾸만 조여 오는 가슴을 진정시키지 못해 안절부절 하였다.
한성수가 한참을 걷다 문득 정신을 차려보니.. 다시 그녀의 아파트 앞이었다.
그는 저만치 보이는 아파트 경비실로 발걸음을 옮겼다.
제법 나이가 든 경비아저씨는 그 아파트에서 경비를 본 게 일 년이 넘었다고 했다.
그리고 그녀에 대해 자세히는 모르지만.. 결혼은 하지 않은 것 같다는 것과 사람은 좋은 사람이라고 했다. 가끔 경비실에 먹을 것도 챙겨주는...
그러나 중요한 건.. 감히 경비 본연의 임무를 망각하고.. 그녀가 납치되던 그 시점에 자리를 지키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한성수는 자신의 핸드폰 번호를 적은 쪽지와 만원짜리 두 장을 경비한테 건넸다.
"담배 값이나 하시구요.. 그녀가 보이면 이 번호로 연락 좀 부탁드립니다."
다른 곳에서 노닥거린다고 자신의 임무를 망각한 경비는 책임을 통감하고.. 잽싸게 돈과 쪽지를 낚아채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아~ 글쎄 걱정하지 말어.. 내가 꼭 연락드릴게~!"^^;
그녀의 아파트 경비실을 나선 한성수는 뭘 해야 할지 몰랐다.
평소에 느지막이 일어나 뭉기적거리던 비번 날에.. 오늘은 아침 일찍부터 설쳐댔으니.. 여전히 해는 하늘에 걸려있었다.
그는 눈에 보이는 술집으로 들어갔다.
불안한 마음을 진정시키는 데는.. 역시 마취효과가 있는 술이 제일일 것 같았다.
정신은 마취시키고.. 몸은 마비시키고... @@;
그래도 마취되는 정신의 끝자락을 잡고.. 그녀의 집과 핸드폰으로 전화를 걸었으나 번번이 허탕을 칠 뿐이었다.
"이런 덴장.. 도대체 어떻게 된 거야?!?!"
그랬다. 그는 어저께 대낮부터 시작한 술이..
언제 끝났는지.. 어디 어디를 거쳐.. 언제 어떻게 집에 들어왔는지.. 도저히 기억이 나지 않았다.--;;
다만 그런대로 자신의 상태가 온전한 걸 봐서는.. 지난번 차상호가 자신의 차에서 그랬던 것처럼.. 그렇게 엉망으로는 망가지지는 않은 것 같았다.
짤막짤막 토막 난 기억 속에서.. 어떤 2층 다방에선가 엉덩이가 남산만한 마담하고 다투던 일과.. 빨간 원피스에 립스틱 짙게 바른 여자와 골목길에서 실랑이 하던 기억이 떠올랐다.--;;
한성수는 머리를 절레절레 흔들며 화장실로 들어가 찬물을 뒤집어썼다.
잠시 후.. 수건으로 머리를 닦으며 밖으로 나온 그는.. 그녀의 집으로.. 차상호의 회사로.. 핸드폰으로.. 전화를 걸었다.
그 결과 그가 알아낸 건 차상호가 일주일간 휴가를 냈다는 것과.. 알아내지 못한 건 그녀의 행방이었다.
그는 이미 늦었지만 자신이 근무하는 택시회사로 전화를 걸어 자신의 결근을 통보하였다.
관리부장이 비번 다음날 결근하면 어떡하냐고.. 정신이 빠졌느니 어쨌느니 엄청 떠들어댔다.
그는 그런 관리부장의 잔소리를 한 귀로 흘리며.. 한 번만 봐달라고 사정하였다. 아픈 걸 어떡하냐고.. 마음이 아프다고요~!ㅜㅜ
전화를 끊고 그는 벌렁 드러누웠다.
천장의 옅은 분홍색 꽃무늬가 합쳐지며.. 그녀의 어렴풋한 윤곽이 떠올랐다.
그녀는 어디서 무얼 하고 있을까?!
몇 번 만나지도 않았고.. 아직 그녀에 대해서 제대로 아는 것이 없지만.. 그의 가슴에.. 그녀는 이미 깊게 새겨져 있었던 모양이었다.
그녀 생각에 그의 가슴이 시려오는 것을 보면...
<계속>
<조폭마누라3> 포스터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