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를 찾아서

Driver(10회)

by 이은호



다음날 한성수는 택시를 몰면서도.. 마음은 완전히 딴 데 있었다.

마치 소주 안주로 곧 구워져 접시에 오를 참새의 맘이 콩밭에 가있는 것처럼...


손님이 말한 목적지를 분명히 확인까지 했음에도.. 번번이 다른 곳으로 새다가.. 손님의 지적에 방향을 틀곤 하였다.

"우쒸~ 아저씨 왜 이리로 가는 거예요! 누굴 밥팅이로 알아요?"

자칫 손님에게 바가지라도 씌우려는.. 워스트 드라이버로 오해를 살 정도였다.

자칭 베스트 드라이버인데 말이다.


손님이 없을 땐.. 의식적 무의식적으로 그녀가 사는 동네로 차가 굴러갔다.

그녀가 사는 아파트 주위도 오늘 몇 바퀴를 돌았다.

그녀에게 전화도 하고.. 경비실에도 들려봤지만.. 그녀의 행방은 여전히 오리무중이었다.


"이거 실종신고라도 해야 하는 거 아닌지 몰라... 하지만 경찰이.. 당신이랑 어떤 관계냐고 물으면 뭐라고 하지?!?!"

그는 뾰족하게 대답할 말이 생각나지 않았다. 아직은 그녀와 별 관계를 맺지 않았으니 말이다.


한성수는 그날 끼니를 걸러도 배고픈 줄 몰랐다.

다만 속이 타고 갈증이 심하게 나.. 생수만 몇 통을 비웠다.

덕분에 택시 드라이버의 최대 고충이라고 할 수 있는.. 생리적 문제를 해결하는데 애를 좀 먹었다.

허름한 골목길에 외롭게 서있는 전봇대를 부여잡고 강아지 흉내도 내고.. 가위가 살벌하게 그려진 벽 한쪽에 기대어.. 혹시라도 누가 볼세라 있는 힘껏 쥐어짜기도 하였다.



이리저리 싱숭생숭한 기분에 돈벌이가 잘될 리가 없어.. 오늘 하루는 사납금 맞추기가 힘들 것 같았다.

해는 서산으로 넘어갈 폼을 잡고.. 배에서는 꾸르륵 소리가 나고...

"빈속에 물만 마셨더니.. 탈이 났나?!"

이왕 이렇게 된 거.. 한성수는 자포자기하며 그녀의 아파트 쪽으로 차를 몰았다.

아예 자리를 잡고 그녀를 기다려볼 참이었다.


한참을 달려가는데 저 앞에서 젊은 남녀가 손을 흔들며 신호를 보내고 있었다.

"어쩐다?!" 한성수는 잠시 망설였지만.. 몇 년간의 택시 드라이버 생활에 익숙해진 그는 거의 본능적으로 택시를 손님 앞에 정지시키고 있었다.

"할 수 없군! 택시 드라이버의 사명을 다하는 수밖에..."


"아저씨.. 용왕동쪽으로 가주세요~"

"읔~! 그녀가 사는 동네와 반대방향이잖아?! 왕재수군!"

"뭐라구요?!"

"아.. 아닙니다. 오늘 일진이 좋다구요.. 헤헤~"


갓 스물이나 넘겼을까 뒷좌석에 앉은 야들야들하고 젖비린내 날 듯한 젊은 남녀는.. 뭐가 그리 즐거운지 연신 히히덕거리며 떠들어댔다.

한성수는 울적한 자신의 기분과는 반대로.. 간질간질 귀 끝을 자극해오는 그들의 목소리가 영 거슬렸다.

"우~ 되게 조잘거리네..."

한성수는 그들의 행동이 못마땅했지만.. 손님은 어디까지나 손님이므로.. 찍소리 못하고 대신 라디오를 틀어 볼륨을 높였다.


~ ♪♬ 내가 널 이렇게 목놓아 부르지 않게 한번만이라도 잠깐만이라도 내 앞에 나타나 줘.. 꿈속에서라도 나를 봐 조금씩 무너지는 내 모습을 봐.. 널 찾아 헤매이는 난 지금 힘들어.. 니가 보고 싶어 니가 날 떠난 그 직후부터... ♩♪ ~


한성수 자신의 심경을 말해주듯.. 애절한 노랫말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철없이 겅중겅중 뛰기만 하는 줄 알았더니.. 제법 감정표현을 잘하는군!"

그는 노래 부르는 가수를 칭찬하며.. 힐끗 룸 밀러를 쳐다보았다.


"이런.. 뜨바~!!" oO;;

뒷좌석에 앉은 젊은것들이.. 둘이 딱 달라붙어 난리가 아니었다.

어쩐지 갑자기 조용하다 싶더니만...


지네들이 무슨 치과놀이라도 하는 냥 상대방의 입안을 샅샅이 훑는가 하면.. 암벽등반이라도 하는 냥 절벽이며 계곡이며를 연신 더듬고 있었다.

한성수는 침을 꼴딱꼴딱 삼키며.. 한참 재밌게 구경하고 나서.. 짐짓 점잖게 한소리 하였다.

"이보쇼~! 신성한 택시 안에서 모하는 거요?!"


순간적인 감정을 주체하지 못하고 있는 대로 뒤엉켰다가.. 갑작스런 호통에 깜짝 놀란 그들이 어색해하며 자세를 바로잡고 앉았다.

그리곤 계집애는 여전히 벌게진 얼굴로 옷매무새를 바로잡았고.. 사내 녀석은 창밖을 보며 딴청을 부렸다.


"저렇게 젊은애들도 끼리끼리 물고 뜯고 하는데.. 난 이게 뭐람?!"

한성수는 초라한 자기 신세를 탓하며.. 더욱 크게 라디오 볼륨을 높였다.



삐리리리~ 삐리리리~

갑자기 그의 핸드폰이 울렸다.

"여보세요? 한성숩니다." 그는 얼른 이어폰을 귀에 꽂고 핸드폰을 받았다.

"..저.. 저기 말이죠... 여긴 상곡아파트 경비실인데 말이죠..."

"아~예! 아저씨! 말씀하세요." 혹시나 하고 그의 귀가 솔깃해졌다.

"그런데 말이죠.. 그녀가 나타났는데 말이죠.. 지금 집에 있단 말이죠..."

"알았습니다. 고맙습니다."^o^


한성수는 그녀가 나타났다는 말에 뛸 듯이 기뻤다.

냉큼 그녀에게 전화를 하고 싶었지만.. 꾹 참고 그녀를 찾아가기로 마음먹었다.

그는 잽싸게 차로를 안쪽으로 바꾸고 유턴 신호를 받기 위해 좌측 깜빡이를 넣으며 차를 서서히 정지시켰다.

"어?! 아저씨! 어디로 가는 겁니까?!"

"집에 갑니다. 갑자기 급한 일이 생겨서요."

"그럼 우린요? 용왕동은 아직 멀었는데..."

"요기까지 요금은 안 받을 테니까.. 거기는 알아서 가쇼~!"


벙찐 얼굴을 한 젊은 남녀를 내려놓고.. 한성수는 씽씽 차를 몰았다.

퇴근길이라 다소 복잡해진 도로를.. 그는 요리조리 잘도 빠져나가고 있었다.

"그녀.. 미혜 씨가 왔단다!! 잠시만 기다려라.. 내가 간다~!!"


이미 어두워진 저녁시간.. 드디어 저 앞에 그녀의 아파트가 모습을 보이고 있었다.


그는 골목길에 접어들며 서서히 속력을 줄이며.. 그녀와의 재회의 순간을 상상하였다.

자신은 어쨌든 이틀 만에 그녀를 보는 것이지만.. 아주 오랜 시간이 지난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녈 만나면 무슨 말을 할까? 그녀는 도대체 어딜 갔었던 것일까? 또 그 남자는 누구일까?

그리고 중요한 건.. 그녀는 자신을 반갑게 맞아줄 것인가?



이런저런 생각에 사로잡혀 있는 그의 눈앞에.. 한 여자가 양손에 커다란 가방을 들고 허둥지둥 아파트 현관을 나서는 모습이 보였다.

어두워서 잘 보이지는 않았지만 그 여자를 쳐다보던 한성수의 눈이 반짝 빛났다.

그녀.. 바로 차미혜였던 것이다.


빵빵~!!

"미혜 씨 어디 가세요?!"

자신의 앞에 경적을 울리며 정지하는 차를 보고 그녀는 깜짝 놀랐다.

그리고 이내 운전기사가 바로 한성수인 걸 확인한.. 그녀의 얼굴에 가벼운 미소가 흘렀다.

"여긴 어쩐 일로... 하여튼 잘됐네요. 저 좀 태워주세요~!"


한성수는 뭔지 모르게 불안해하는 그녀의 모습이 이상하게 보였지만.. 그녀의 성화에 자신도 덩달아 급해져.. 서둘러 그녀의 짐을 트렁크에 실었다.

그리고 그녀를 옆에 태우고 차를 돌려 서서히 빠져나왔다.

"이게 아닌데.. 멋진 모습으로 재회를 해야 하는 건데..."


골목길을 막 빠져나올 즈음.. 검은 승용차 한 대가 골목길로 들어오고 있었다.

그 차를 본 그녀는 얼른 반대편 창쪽으로 얼굴을 돌렸다.

두 대의 차가 스쳐 지날 때.. 한성수는 검은 승용차쪽으로 얼굴을 돌렸다.

짙게 썬팅한 검은 승용차의 유리창이 아래로 내려가고.. 승용차 뒷좌석에 깊숙이 앉은 사내의 모습이 보였다.


어두운 밤인데도 불구하고.. 건방스럽게 검은 선글라스를 낀 사내의 검은 선글라스가 반짝하고 빛났다.

한성수를 쳐다보는.. 그 사내의 입 꼬리가 슬쩍 치켜 올라갔다.

한성수도 그 사내를 향해 씩~ 미소를 지어 주었다.

베스트 드라이버는 밝은 미소가 생명~!^^ 일종의 직업병인 셈이었다.


다시 정면을 향하는 그 사내의 왼쪽 뺨에.. 음산한 칼자국이 그어져 있었다.

"어~? 어디서 봤더라?!"

한성수는 왠지 낯설지 않은 칼자국의 기억을 더듬으며.. 차를 큰 도로로 진입시켰다.



"빨리 좀 가주실 수 없을까요?"

자꾸 딴짓을 하며 꾸물거리는 한성수가 답답한 듯 그녀가 재촉하였다.

"알았습니다. 그런데 어디로 가실 거죠?"

"고속버스 터미널로요~."

"어디 먼델 가시나요? 짐도 많던데..."

"고향에 좀 다녀오려구요."

"아.. 예! 그렇군요."


고향이 어디신데요? 고향엔 누가 있는데요? 고향엔 왜 가시는데요? 얼마나 계실건데요? 짐은 왜 그리 많은데요?

한성수는 그녀에 대한 궁금증이 자꾸 생겨나 계속 질문을 하고 싶었으나.. 그녀의 표정은.. "잔소리 말고 운전이나 똑바로 하세요!!"였다.

때문에 한성수는 입 다물고 운전이나 똑바로 하는 수밖에 없었다.



서서히 속력을 붙여 달려 나가며.. 한성수는 습관적으로 룸 밀러를 통해 뒤쪽을 살폈다.

그런데 저 뒤로 검은 승용차 한 대가 골목길에서 빠져나와 큰 도로로 접어들어 한성수의 택시를 뒤 따르는 모습이 보였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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