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로 갈까요

Driver(11회)

by 이은호



"그런데 미혜 씨 고향이 어디지요?"

한성수는 궁금증을 더는 참지 못하고 입을 열었다.

"섬이에요. 여객선터미널에서 배를 타고 2시간쯤 가야 하는..."

"그렇군요. 섬 처녀가 먼 곳까지 오셨네요?"^^

"먼 곳이라구요? 먼 곳이라는 게 어느 정돈데요?"

"그야 뭐.. 섬에서 뭍으로 나오셨으니까요."

"나무 조각 하나도 물 위에 띄워 놓으면 파도에 쓸려 태평양을 건너고.. 나무에서 떨어진 나뭇잎 하나도 바람에 실려 천리를 가는데.. 발 달린 짐승이 어딘들 못 가겠어요?"

"하하~ 발 달린 짐승요? 미혜 씨가요?"^^

"그럼 아닌가요? 사람하고 짐승하고 다를 게 뭐죠? 짐승은 차라리 순수하기나 하지..."

"그렇기는 한데요.. 미혜 씨가 그런 말을 하니까 하나도어울려요."

"저한테 안 어울린다구요? 그럼 어떤 게 저한테 어울리죠?"

"뭐.. 순수 청순 우아함 아름다움 낭만.. 그딴 거요..."

"호호~ 사람 잘못 보셨네요."

"거 봐요! 금방 사람이라고 했잖아요~!"

"예?!?!"

그녀가 어이없다는 듯 살짝 눈을 흘겼고.. 한성수는 그녀의 그런 모습을 보며 미소를 지었다.



한성수는 그녀를 태우고 고속도로를 달리고 있었다.

목적지는 통영.. 남쪽나라 항구도시였다.


평일 한밤중의 고속도로는 한적했고.. 앞차의 불빛만 따라가면 되는 편안한 운전이었다.

더구나 그녀와 단둘이 있다는 사실이.. 한성수의 가슴을 몹시도 설레게 했다.

불과 몇 시간 전만 해도 그녀의 행방을 몰라서 안절부절못했는데.. 이유야 어쨌든 이런 행복한 순간을 맛보게 되다니.. 역시 세상살이는 한 치 앞을 모르는 일이었다.


하지만 이런 행복한 순간이 저절로 얻어진 것은 아니었다.

그가 운전대를 잡아본 이래 오늘같이.. 마치 갱스터 영화의 한 장면을 찍는 것처럼.. 추격과 따돌리기 경쟁을 해본 적이 없었다.

베스트 택시 드라이버로서의 명예를 건 한판 승부의 결과로.. 그는 이러한 행복을 누리고 있는 것이었다.




한성수가 그녀의 아파트를 나서서 열심히 택시를 몰고 가는데.. 검은색 승용차가 한성수의 택시 뒤꽁무니에 바짝 붙어 서서는.. 경적을 울리고 상향등을 번쩍이며 위협을 하는 것이었다.

차를 세우라는 것이었다.


"저런 싸가지가 다 있어?!?!"oO++

한성수가 따지려고 속력을 줄이며 차를 옆으로 빼면서 살펴보니까.. 뒤에 나타난 검은색 승용차는 아까 골목길에서 마주친 바로 차였다.


"우쒸~! 저 깍두기들 심상찮은 넘들인데.. 뒷좌석에 칼자국도 꺼림칙하고... 내가 뭘 잘못했나?!"

한성수는 그 넘들이 무서워 차를 세우지도 못하고 주춤거렸고.. 뒤따르던 검은 승용차는 더욱 위협을 가하며 차를 세울 것을 종용하고 있었다.


주춤거리는 그의 모습을 보며.. 옆에 앉은 그녀가 급한 목소리로 말했다.

"빨리 좀 가주세요! 저 차를 따돌려야 된단 말예요!!"

"예?! 무슨 일이 있나요?"

"저 차에 나쁜 사람들이 타고 있거든요! 그러니 제발 좀 빨리 가주세요... 사정은 나중에 말씀드릴게요!"

"~! 그래요? 알았습니닷!!"



왱~~! 한성수는 엑셀레이터를 깊숙이 밟고 차의 속력을 높였다.

앞차가 엉거주춤 세울 기미를 보이자.. 브레이크를 밟으며 속력을 줄이던 뒤차는.. 급작스런 앞차의 출발에 당황해하는 모습이었다.

덕분에 뒤차와 거리가 조금 벌어졌고.. 탄력이 붙은 택시는 더욱 빠르게 질주해갔다.


한참 후.. 이제는 뒤차가 자신의 꽁무니를 잡지 못할 정도로 차이가 벌어졌다고 생각한 한성수는 엑셀레이터에서 발을 떼며 긴 숨을 내쉬었다.

하지만 그건 한성수의 자만을 넘어선 오만에 불과하였다. 영업용 택시로 몇 년을 굴러먹은 똥차가 가기는 어디를 가겠는가?!

이내 검은 승용차에 바짝 따라 잡히고 말았다.


그때부터.. 쫓고 쫓기는.. 피 말리는 레이스가 이어졌다.

뒤차가 따라오면 옆 차로로 새고.. 좌회전에.. 우회전에.. 차선 무시.. 신호무시...

한성수가 몇 년을 택시 운전하며 위반한 건수를 훨씬 능가하는.. 베스트 드라이버로서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많은 위반을.. 그토록 짧은 시간 안에 해버리고 말았다.

하지만 사랑하는.. 아니 벌써 그런 관계까지?! 음.. 사람을 위해서라면 무슨 일인들 못하랴!!



"지독한 놈들.. 완전 찰거머리군!!" --;;

계속해서 뒤를 쫓는 검은 승용차를 룸 밀러로 쳐다보며 한성수가 내뱉었다.

검은 승용차 운전사도 보통 넘은 아닌 듯싶었다.

그 넘 역시 차선 무시.. 신호무시.. 하기야 자기라고 별수 없었겠지만...


"망할 넘.. 칼자국한테 안 죽으려고 어지간히도 기를 쓰는군!!"

한성수는.. 그 넘들은 필시 기본 소양도 제대로 못 갖춘 삼류에다 뒷좌석에 앉아있는 칼자국은 더한 넘이라고 생각했다.

때문에 만일 붙잡히면 무슨 봉변을 당할지 모른다는 생각에 필사적으로 달아날 수밖에 없었다.



한 시간여를 쫓고 쫓기는 레이스가 펼쳐졌을까?

저 멀리 우측에 고속도로로 빠져나가는 진입로가 보이고 있었다.

"그렇지.. 드디어 떼어버릴 기회를 잡았군~!"

한성수의 입꼬리가 씩~ 하고 올라갔다.


한성수는 편도 4차로의 도로에서 3차로를 달리고 있었다.

그는 좌회전 깜빡이를 켜며 2차로로 차선을 바꾸었다.

그의 예상대로 뒤따르던 검은 승용차도 2차로로 들어섰는데.. 이번에는 좌측 깜빡이를 켜고 있었다.

"짜식~! 기본 소양이 안됐다고 한마디 하니까 대번에 깜빡이를 켜는군! 하여튼 버르장머리 없는 넘들은 한 마디씩 해줘야 한다니까!"


한성수는 다시 1차로로 차선을 옮겼다... 고 뒤차 운전자는 생각했을 것이다.

하지만 한성수는 좌측 깜빡이를 켠 채 1차로로 가는 척하다가.. 그대로 우측으로 차를 뽑아냈다.


끼이익~! 빵빵~~!!!

3차로, 4차로를 달리던 차들이 갑작스러운 택시의 차선 변경에 깜짝 놀라며 허둥거렸다.

하지만 거기서 주저앉을 수는 없는 일~!

한성수는 여세를 몰아 거의 대각선으로.. 차를 고속도로 진입로로 올려버렸다.

"오예~! 완전 성공~!!"

자신이 생각해봐도 멋진 작전이었고.. 베스트 드라이버의 운전 실력을 유감없이 발휘한.. F1 레이싱 그랑프리 우승에 버금가는 쾌거였다.


그렇게 끈질기게 뒤를 쫓던 검은 승용차는 미처 대처하지 못하고.. 고속도로 진입로를 통과해 버리고 말았다.

한성수는 경사가 지면서 비스듬히 올라가는 고속도로 진입로를 유유히 올라가며.. 아래쪽 도로를 내려다보았다.

길 아래 저 앞에.. 비상등을 켜고 브레이크 등을 환하게 밝힌 검은 승용차가 서있는 모습이 보였다.

"피웅신~!"^o^




"그런데 미혜 씨 오빠는 어딜 가셨나요? 회사에 전활 했더니 휴가라고 하던데..."

한성수는 그녀의 눈치를 살피며 다시 말을 붙였다.

".. 예.. 어딜 좀 가셨어요..."

그는 힘없이 대답하는 그녀의 얼굴에 어두운 빛이 흐르는 걸 느꼈다.

"음.. 뭔 일이 있기는 있는 모양이군!"


"댁에 무슨 일이 있었나요? 요즘 미혜 씨 주위가 혼란스러워 보이는데..."

"예? 한성수 씨는 남의 사생활을 들춰보는 게 취미인가요?!"

갑자기 그녀의 말꼬리가 올라가며.. 고운 이마에 살짝 인상이 잡혔다.

"예?! 그럴 리가요... 단지 미혜 씨가 걱정이 돼서..."

한성수는 그녀의 기분이 상할까 봐 눈치를 보며 목을 움츠렸다.

"어두운 밤길인데.. 앞보고 조심 운전하세요~!"

까칠한 그녀의 목소리가 한번 더 그의 목을 꽉 눌렀다.

그리고 보니까 그녀는 외모와는 달리 상당히 날카로운 면이 있었다.

마치 아름다운 장미가 뾰족한 가시를 숨기고 있는 것처럼...


한성수는 한편으로 그녀가 야속한 생각이 들었다.

그녀를 걱정해서 위로해주려는.. 자신의 마음을 이렇게 몰라주다니...

그녀는 어쩌면 한성수의 접근에 의식적으로 담을 쌓고 있는지도 몰랐다.

아님.. 그에 대한 관심을 그런 쌀쌀한 표현으로 대신하는 건가?

그러지 않는가?! 여자는 튕기는 맛이라고...




<통영 2km>

도로 옆에 서있는 표지판이 스쳐 지나갔다.

애초에 그녀는 고속버스터미널까지 태워달라고 했으나.. 쫓고 쫓기는 레이스가 있은 끝에 고속도로에 차를 올리게 되었고.. 한성수는 내친김에 그녀를 목적지까지 태워주기로 하였다.

그녀도 피곤했음인지 그렇게 하자고 했다.

그녀로서는 택시를 이용하고 차비를 지불하면 그만이었다.


차는 통영 톨게이트를 빠져나와 한적한 도로를 달려 여객선터미널로 향했다.

한밤중의 도로는.. 야속하게도 신호등마저 점멸등으로 바뀌어 전혀 막히지를 않았다.

덕분에 그녀와의 오붓한 여행길이.. 아쉽게도 마지막까지 초스피드로 흘러갔다.



여객선터미널에 도착한 시간이 새벽 2시...

그러나 그녀는 머뭇머뭇.. 차에서 내릴 기색을 보이지 않았다.

"미혜 씨.. 다 왔는데요?"

"그렇군요. 수고 많으셨습니다."

그녀는 말은 그렇게 했지만.. 여전히 움직이질 않았다.

또 무슨 꼬투리를 잡으려는 건 아닐까?.. 괜히 주눅이 들은 한성수는 은근히 겁이 났다.


"...저... 저하고 같이 여행하지 않으실래요?"

차미혜가 조용한 목소리로 입을 떼었다.

"예?! 뭐라구요??"oO;;

한성수는 자신의 귀를 의심하였다.

분명 그녀와의 헤어짐에 아쉬움을 느낀 자신이 잘못들은 것이라고 생각했다.

"젊은 나이에 벌써 환청이 들리는군..."


"괜찮으시면.. 저하고 같이 여행을 하시자구요!"

또렷한 그녀의 목소리가 다시 한번 그의 귀청을 때렸다.

"......"

한성수는 정신이 멍해져.. 여전히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죄송합니다. 제가 괜한 말을 드렸군요. 이만 내려야겠네요. 오늘 여러 가지로 수고 많으셨구요.. 또 감사했습니다. 차비는 여기 있습니다."

그녀는 돈을 조수석에 두고 가볍게 목례를 하고는 차에서 내렸다.

그러는 동안 한성수는 그냥 멍하니 앞만 바라보고 있었다.

"내가 무슨 말을 들은거지..?"


"똑! 똑!"

그녀가 차 뒤쪽으로 가 차 트렁크를 두드리고 있었다.

"그렇지.. 가방~!!"

한성수는 차 트렁크 잠금해제 버튼을 누르고 가방을 꺼내기 위해 차에서 내렸다.

그러나 그녀는 이미 가방을 꺼내 양손에 한 개씩 쥐고 서 있었다.

"그럼.. 먼길 살펴가세요."

가볍게 고개를 숙이고 나서 그녀가 돌아섰다.



한성수가 아무 말도 못 하고 멍하고 서 있는 사이.. 그녀는 양손에 가방을 하나씩 끌고 조금씩 멀어져 가고 있었다.

가방을 끄는 그녀의 축 처진 어깨와 손끝에 매달린 커다란 가방 두 개가.. 한성수의 두 눈동자에 맺혔다.


휭~~

그와 그녀 사이로.. 한줄기 바닷바람이 스쳐 지나갔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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