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 서 오 세 요.. 어 서 오 세 요..
캄캄한 도로 한복판에 매달려 점멸하고 있는 신호등의 불빛이.. 마치 어서 오라고 손짓하는 저승사자의 눈빛과도 같았다.
낮에는 3색의 초롱초롱한 눈빛이.. 밤에는 누런 눈깔로 바뀌어 깜박이며...
점멸등을 보며 컴컴한 도로를 달리노라면.. 자신도 모르게 엑셀레이터를 밟은 발에 힘이 들어간다.
한성수 역시 무엇에라도 홀린 듯.. 바쁠 것 없는 시간에 부지런히 달리고 있었다.
"끼기기긱~!!"
잘 달리던 택시가.. 갑자기 휘청거리며 도로 한복판에 멈추어 섰다.
한성수의 머리에 불현듯 한 생각이 떠올랐다.
그렇다! 그 시간에 그녀의 고향으로 떠나는 배가 있을 턱이 없는 것이다.
적어도 그녀를 조금이라도 생각하는 마음이 있었더라면.. 최소한 그녀가 배를 타고 떠날 때까지 그녀 곁에 있어야만 했다.
낯선 곳.. 캄캄한 한밤중에.. 연약한 여자 혼자 내려놓고 돌아서다니...
"역시 난 생각이 모자란 놈이야!!"
한성수는 자신의 우둔함을 탓하며 머리를 몇 대 쥐어박았다.
어쩌면.. 그녀 곁에 있고 싶다는.. 그대로 헤어질 수 없다는 그의 욕망이.. 그럴듯한 구실을 찾아냈는지도 몰랐다.
잠시 후 택시가 중앙선을 넘어 커다란 원을 그리며 회전하였다.
그리고는 저 앞 허공에서 점멸하는 저승사자의 누런 눈깔 아래 커다랗게 벌린 시커먼 아가리 같은 어둠 속으로.. 쏜살같이 달려가고 있었다.
여객선터미널에 다시 도착한 한성수는 여기저기를 기웃거렸지만 그녀를 찾을 수가 없었다.
자신이 되돌아오는 데 걸린 시간은 불과 20여분.. 어디를 갔을까?!.. 혹시나 하는 불길한 생각이 들었다.
길이야 뻔한 길인데.. 더구나 무거운 가방을 두 개나 들고 멀리 움직일 수도 없을 테고...
그렇다면 주변 숙박업소를 찾은 게 아닐까?
그는 차를 몰고 터미널 주변의 숙박업소를 중심으로 찾아보기로 했다.
자신은 아무래도 이래저래 그녀를 찾아다녀야 하는 팔자인가보다 싶었다.
두 블록쯤 지났을까.. 한 모텔 입구에서 젊은 남녀가 실랑이하는 모습이 보였다.
들어가자~ 못 가겠다.. 책임질래~ 못 지겠다.. 모 그런 실랑이쯤 되겠지...^^
당근 이것은.. 다들 이해를 하겠지만..
(여)들어가자~ (남)못 가겠다.. (남)책임질래~ (여)못 지겠다.. 를 말한다.^^;;
한 블록을 더 지나갔다. 역시 어두운 골목길에서 남녀가 실랑이하고 있었다.
한성수는 그들을 힐끗 쳐다보며 천천히 차를 몰고 지나갔다.
그들은 앞의 커플보다는 좀 더 나이가 든 듯싶었다.
"쯧쯧~ 젊은것들이나 늙은것들이나 똑..같.... 엥?!?!" oO;;
갑자기 한성수는 눈이 똥그래지며.. 후진기어를 넣고 차를 후진시켰다.
남녀의 모습이 다시 한성수의 눈에 잡혔다.
그렇다! 골목 안의 여자는.. 바로 그녀였던 것이다.
얼핏 봐도 그들은 연인 사이가 아니었다.
갑작스럽게 이곳에 내려온 그녀가 아는 사람을 만났을 리도 없고.. 이런 허접한 골목길에서 들어가자~ 못 가겠다.. 유치찬란한 실랑이를 할 이유도 없는 것이다.
"미혜 씨! 차미혜 씨!!"
그는 서둘러 차에서 내려서 그녀한테 뛰어갔다.
실랑이를 하던 남녀가 동시에 소리 나는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아.. 한성수 씨!"
그녀의 얼굴에 안도의 빛이 흐르는 게 역력하였다.
반면 그녀와 실랑이를 하던 사내의 얼굴은 잔뜩 찌그러지고 있었다.
"당신 뭐야?! 그냥 가던 길이나 가시지!!"
소리치는 사내의 입에서 술 냄새가 풍겼다.
"짜식! 술도 아주 싸구려 깡소주를 마셨군~!"--+
한성수는 이맛살을 찌푸리며 사내를 째려보았다.
사내는 아무래도 근처를 헤매는 건달이나 술주정꾼인 듯싶었다.
그래도 소싯적에 좀 논다고 부모님 속깨나 썩였던 한성수 아닌가? 그녀한테는 약해도 어지간한 남자한테는 기죽을 그가 아니었다.
"뭐긴 뭐야 이 자식아! 너 같은 치한들을 혼내주는 베스트 드라이버다!!"
한성수는 단박에 사내의 멱살을 두 손으로 단단히 움켜쥐었다.
"켁켁~!!"
술 취한 사내는 힘도 제대로 써보지 못하고 한성수의 손아귀에서 버둥거렸다.
"짜식~ 별 볼 일 없는 게.. 남자 망신 다 시키고 다니네!"
한성수는 사내를 밀어버렸고.. 사내는 힘없이 바닥에 나뒹굴었다.
"자.. 미혜 씨 갑시다."
"정말 고마워요. 이상한 남자를 만나 곤란했는데.. 오늘 여러 가지로 폐를 끼치네요."
한성수는 의기양양하게 그녀의 가방을 양손에 들고 성큼성큼 발걸음을 옮겼고.. 그녀는 조용히 그의 뒤를 사박사박 따랐다.
자신이 다시 돌아오지 않았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그녀가 큰 봉변이나 당하지 않았을까?!
한성수는 좀 전의 상황에 아찔해하며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하마터면 죽 쒀서.. 개 줄 뻔했네~!"
"예? 뭐라구요?!"
"아.. 아닙니다. 헤헤..." ^^;;
"그나저나 이거 어떻게 하지요? 배가 뜨려면 아직 몇 시간 더 기다려야 할 텐데.."
한성수는 그녀를 옆에 태운 채 목적지도 없이 천천히 차를 몰며 입을 열었다.
"글쎄 말예요.. 뭘 하면서 시간을 보내지요? 음.. 그렇지! 우리 해장이나 하러 갈래요? 좀 떨어진 곳에 24시간 문을 여는 맛있는 국밥 집이 있는데..."
"오~ 그래요? 그거 좋은 생각이네요. 마침 출출하던 참이었는데..."
"그러면 이쪽으로 쭉~ 가세요."
그리고 보니까 그는 어제부터 뭘 제대로 챙겨 먹은 게 없었다.
어제는 그녀를 찾는다고 하루 종일을 허둥댔고.. 그녀를 찾고부터는 쫓고 쫓기는 카 레이스에.. 제대로 챙겨 먹을 시간도 마음의 여유도 없었던 것이다.
마음의 여유가 없던 건 그녀도 마찬가지였던 모양이었다.
오랜 시간 같이 고속도로를 달리며.. 딱 한번 생리현상 때문에 휴게소를 들른 것 말고는 그냥 지나쳐 왔던 것이다.
허름한 국밥 집에.. 허름한 탁자에 마주 앉아.. 둘이는 국밥을 맛있게 먹고 있었다.
허름한 분위기와는 달리 국밥은 그녀의 말대로 훌륭하였다.
한성수는 뜨끈한 국물이 뱃속을 채우자.. 몸도 마음도 한결 상쾌해지는 기분이었다.
그제서야 마주 앉은 그녀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콧등에 땀이 송송 맺힌 채 뜨거운 국물을 후후 불어가며 맛있게 먹는 그녀의 모습이.. 그의 마음을 흔들었다.
한성수는 용기를 내서 말을 꺼냈다.
"저.. 미혜 씨! 아까 말씀하신 거.. 아직도 유효한가요?"
"뭐가요?" 그녀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그를 쳐다보았다.
"저.. 그러니까 그게... 같이 여행하자고 하신..."
그의 목덜미로 땀줄기가 흘러내렸다.
"호호~ 왜요? 맘이 바뀌셨어요?"
그녀가 살짝 웃으며 말을 받았다.
"..그.. 그런 셈이지요. 놀이동산도 자장면 먹고 난 다음이라고.. 배가 부르니 여행 생각이 나네요. 그리고 사실 미혜 씨 걱정도 되고요."
"..음.. 좋아요! 아직 유효해요."
"휴~ 감사합니다~! 제가 직업이 기사인 만큼 기사도 정신을 발휘해서.. 최선을 다해서 모시도록 하겠습니닷~!"
"그래요? 그럼 기대해볼까요?"^^
한성수는 뛸 듯이 기뻤다. *^^*
그녀와 단둘이 여행이라니.. 이게 꿈인가 생신가?!
자신한테 이런 행운이 오다니.. 이런 행복을 내가 누려도 된단 말인가.. 한성수는 도저히 실감이 나지 않았다.
어쩌면 꿈속에서 그녀와 함께 있는 게 아닌가 싶어.. 슬쩍 자기 허벅지를 꼬집어 보았다.
"아~ 아야!" 아팠다. 분명 꿈이 아니었다.
"왜 그러시죠?"
갑자기 비명을 지르는 그를 보고 차미혜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아.. 아닙니다."^^*
둘은 국밥집을 나와 부둣가 길을 따라 나란히 걸었다.
바람에 실려 온 비릿한 바다내음이 코를 찔렀고 파도에 정박해 놓은 배가 흔들리며 서로 부딪히는 소리가 간간이 들려왔다.
한성수는 근처 편의점에서 따끈한 캔 커피를 사 가지고 와 뚜껑을 따서 차미혜에게 건네주고 자신도 한 모금 목구멍으로 넘겼다.
밥을 먹고 커피도 한 모금 하고 나니 담배 생각이 간절했지만.. 그녀 눈치를 보며 꾹 참았다.
둘은 그렇게 부둣가에 앉아 별 말없이 커피만 홀짝였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저 멀리 수평선이 붉게 물들면서 해가 솟아오르고 있었다.
조금씩 조금씩 바다 밑에서 올라오는 해는.. 밤새도록 물에 불어서인지 퉁퉁 부어 있었다.
그렇게 점점 떠오른 해는.. 밑 부분만이 물에 잠겨있는 듯싶더니.. 어느샌가 쑥 솟구쳐.. 마치 풍선처럼 공중으로 둥실 떠올랐다.
한성수는 그녀와 나란히 서서.. 일출을 보면서.. 햇살을 온몸으로 받고 있었다.
한성수는 슬쩍 고개를 돌려 그녀의 옆모습을 훔쳐보았다.
눈을 가늘게 뜨고 수평선을 바라보는 그녀의 얼굴이.. 아침햇살로 발갛게 익었고.. 바람에 날리는 머리카락 사이로 그녀의 조그맣고 하얀 귓불이 드러났다.
그리고 귓불 끝에 매달린 귀걸이가 반짝 빛나고 있었다.
한성수는 오늘 아침 그녀와 맞는 우연한 일출이.. 어쩌면 자신과 그녀를 이어주는 축복일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한성수는 일단 그녀를 짐과 함께 여객선터미널에 내려주고.. 택시를 근처 유료주차장으로 끌고 갔다.
차를 빈자리에 주차시키고.. 그는 핸드폰을 꺼내 어디론가 전화를 걸었다.
뚜~ 뚜~ 뚜~
"여보세요?" 한참 신호가 가고.. 남자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오~! 마이 파트너! 나야~ 한성수."
"어 그래.. 무슨 일이야? 이 시간에..."
"문제가 좀 생겼는데.. 이리로 와서 차를 좀 가져가 줘야겠어!"
"거기가 어딘데?!"
"통영 여객선터미널!"
"뭐? 통영이라고?!?! 나보고 거기로 와달라고? 너 제정신이냐?!" oO++
"내가 충분히 보상할 테니까.. 빨리 오셔~!"
그는 주차장에 키를 맡기고 하루치 주차요금에 만원 한 장을 더 얹어 주면서.. 자기 파트너가 오면 차를 넘겨 달라고 부탁하였다.
그리고 그녀가 기다리고 있는 여객선터미널로 발걸음을 옮겼다.
"자 이제 미혜 씨와 여행을 떠나는 거야~!"
아침 햇살이 그의 얼굴을 비추고 그의 뒤로 긴 그림자가 따라오고 있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