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성수 일가(?)와 칼자국 일가(?)의 술래잡기는 한참이나 이어졌다.
쫓아오면 도망가고.. 또 쫓아오면 숨고...
하지만 그건 보통 술래잡기처럼 잡히면 술래나 하면 되는 그런 놀이가 아니었다.
절대로 눈에 띄어서도 안되고 잡혀서는 더더욱 안되는.. 일방적으로 불리한 그런 술래잡기였다.
그들은 선착장에 몇 채 안되는 건물의 모퉁이를 몇 번이나 돌았는지 몰랐다.
사람도 돌고.. 땅도 돌고.. 하늘도 돌고... 헥헥~
하지만 결국엔 한성수의 탁월한 영도력과 그를 믿고 따르는 식솔들의 일사불란한 움직임이 그들을 살아남게 했다.
한 명의 낙오자도 없이!
한참후 뺨에 칼자국과 깍두기 둘이 차를 타고 어디론가 떠나는 뒷모습을 보고 나서야.. 한성수 일가는 휴~ 한숨을 내쉴 수가 있었다.
이제는 이 섬을 무사히 탈출할 수가 있겠구나!
하지만 그전에 한성수가 해야 할 일이 하나 있었다.
바로 곰돌이 구출작전~!
한성수는 긴 막대기 두 개를 구해서 곰 인형이 빠져있는 건물 틈으로 다가섰다.
거기에.. 곰 인형은 여전히 두 팔을 활짝 벌린 채 헤죽~ 웃고 있었다.
나 자바바라~~
한성수는 긴 막대기 두 개를 틈 사이로 밀어 넣었다.
한 개는 곰 인형의 사타구니로.. 다른 한 개는 곰 인형의 머리로...
한성수는 지그시 손에 힘을 주어 곰 인형을 누르고는 살살 끌어올렸다.
좀 전까지만 해도 헤죽 웃고 있던 곰 인형은 사타구니와 모가지가 눌린 채 찌그러져서 꼼짝 못하고 끌려나왔다.
"정말 고마워요!"
곰 인형을 받아든 차미혜의 표정이 확 밝아졌다.
아직도 어린 티를 못 벗었나?! 인형을 저렇게나 좋아하다니...
한성수는 영은이 보다도 더 좋아하는 그녀의 표정을 살피며 고개를 갸웃했다.
잠시 후.. 그들이 다시 선착장으로 되돌아 왔을 때..
그들의 눈앞에 반드시 있어야 할 것이 보이지를 않았다.
그들이 타고 가야 할 배가 깍두기들과 숨바꼭질하는 사이 손님을 다 태우고서 떠나버린 것이었다.
이런 젠장할~! 어떻게 하란 말인가? 좀 있으면 그들이 되돌아올지도 모르는데...
"어쩌죠? 미혜씨! 배가 떠나버렸는데..."
"그러게 말예요, 큰일 났네요."
"모 좋은 수가 없을까요? 어디 뗏목이라도 만들어서 탈출할까요?"
"뗏목요? 음... 여기 잠시 있어보세요. 제가 좀 알아볼게요."
그녀는 그러고서 휑하니 그 자리를 떠버렸다.
엥?!?!
그럼 진짜로 뗏목이라도 타고 여길 뜨겠다는 것인가? 저 망망대해를?!
한성수는 눈앞이 캄캄해졌다.
자신은 헤엄도 칠 줄 모르는데 영락없는 고기밥이 되는 게 아닌가 싶어서였다.
"영은아! 너 헤엄칠 줄 아니?"
"응! 나 헤엄 잘 친다! 옆집 성수한테도 이기는걸?!"
"그래? 부럽다."
"아저씨는 헤엄 못 쳐?"
"그래..."
"하하~ 웃긴다. 어른이 모 그래?!"
"어른이라고 모든 걸 다 잘하는 건 아니거든!"
"그럼 아저씬 헤엄 말고 뭘 잘하는데?"
"응? 그.. 글쎄... 뭘 잘하더라?!?!"
"칫! 모 그래?!"
한성수는 도저히 영은이의 상대가 아니었다.
일방적으로 당하고는 속으로 부탁하였다.
영은아! 이따가 아저씨 물에 빠지면 좀 건져 줘...
"자~ 빨리 서두르세요!"
저 앞에서 차미혜가 빠른 걸음으로 걸어오며 소리치고 있었다.
"자 영은아 가자! 엄마가 뗏목을 구했나보다!"
"뗏목요? 와~ 재밌겠다!"
그녀는 짐을 챙겨들고 영은이와 앞장서 걸어갔고.. 한성수는 뒤에서 미적거렸다.
그런 한성수를 돌아보고 그녀가 서둘러 가야한다며 재촉하였다.
"저.. 그런데 뗏목은 튼튼한가요?"
"뗏목요? 호호~"
"왜 웃지요? 남은 심각해서 하는 소린데?!"
"뗏목은 없어요. 다만 배가 있을 뿐이죠."
그녀가 수배한 배는 튼튼하였다. 적어도 뗏목에 비하면 열배 스무배...
소형 모터보트였는데 이 정도의 잔잔한 바다라면 한번 타볼 만 하였다.
해서 한성수는 짐을 배로 옮겨싣고 자신의 몸도 옮겨 실었다.
그들은 그 배를 타고 여객선의 다음 기착지로 갈 참이었다.
부지런히 간다면 연락선을 충분히 따라잡을 수 있다고.. 스무살이나 됐을까싶은 바다만큼 새파란 모터보트의 젊은 선장은 장담을 하였다.
부아아아~앙~~!!
이후로 모터보트는 엄청난 속도로 물살을 가르며 달렸다.
아니 물살을 가르는 게 아니고 물위를 통~통~ 튀어서 갔다.
풀 이파리 위의 메뚜기가 이 이파리 저 이파리로 튀어 다니는 것처럼...
적어도 드라이빙 업계에서는 결코 빠지지 않는다고 자부해오던 한성수인데.. 헤엄을 칠줄 모르는 관계로 물위에서의 사정은 달랐다.
영은이는.. "와~ 신난다!"
차미혜는.. "아이~ 시원해!"
한성수는.. "으그그그그~"
그들이 중간 기착지에 도착했을 때.. 다행스럽게도 그 배가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야~ 저기 배가 있네요!"
사색이 다된 한성수가 떨리는 손끝을 부여잡고 배를 가리켰다.
"네! 정말 다행이에요~!"
차미혜가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미소를 지었다.
하지만 그들이 탄 보트가 배 가까이로 접근하면서 배에 탄 사람들의 모습이 보이자 한성수는 깜짝 놀라고 말았다.
그들을 기다리는 건 그 배뿐만이 아니었던 것이었다.
어느 틈에 왔는지 뺨에 칼자국이 배 갑판 위에 떡 버티고 서 있었다.
그는 차미혜와 영은이를 쳐다보며 웃고 있었다.
뺨에 칼자국.. "영은아~ 너 어디가니?"
영은이.. "아저씨 안녕하세요?"
차미혜.. "안녕하세요? 아저씨는 어디가시죠?"
엥?! 어째 대화가 이상한데?!?!
어리둥절해하는 한성수의 옆구리를 쿡 찌르며 차미혜가 속삭였다.
"그 사람 형님이에요..."
"아.. 그.. 그렇군요..."
그 사람은 바로 뺨에 칼자국의 쌍둥이 형이었던 것이었다.
그리고 보니까 그 사람은 뺨에 칼자국도 없었고 아까 봤던 옷차림도 아니었다.
"휴~~!!"
한성수는 비로소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콩알만해진 가슴을 쓸어 내렸다.
드디어 그들을 태운 배가 통영 여객선터미널에 도착하였다.
불과 하루 만에 되돌아온 뭍인데.. 한성수는 한참의 세월이 흐른 듯한 느낌이었다.
하지만 여기는 본토!
베스트 드라이버가 뭍에 두 다리를 굳건하게 내딛고 있는 이상.. 이제는 불안에 떨 이유가 없었다. 하 하 하!
"자~ 이제는 어디로 갈까요? 미혜씨!"
한성수는 힘이 잔뜩 들어간 목소리로 당당하게 말했다.
"그.. 글쎄요! 지금 당장 집으로 돌아가는 건 어렵고..."
"음.. 그럼 우리들의 여행을 계속하는 건 어때요?"
한성수는 내친김에 한발 더 나아갔다.
"아~ 맞아요! 우린 지금 여행 중이었지요? 그렇게 해요~!!"
"오예~!"
"그럼 이제 어떻게 하죠?"
"음.. 가만있자... 그러면 짐 보따리도 많고 다니기가 불편하니까 차를 한 대 렌트하죠."
"네~ 그게 좋겠어요."
"그럼 여기서 잠깐만 기다리세요. 제가 알아볼게요."
한성수는 뭔가를 기대하며 그녀를 따라나섰다가.. 허무하게 여행이 끝나는 게 아닌가 싶어 섭섭하던 차에.. 그녀와의 여행이 계속된다는 생각에 힘이 절로 났다.
한성수는 신바람이 나서 전화번호부를 뒤적여 렌트카 업체 몇 군데에 전화를 걸었다.
그리곤 미혜씨에게 잠시 기다리라고 하고.. 그 중 제일 가까운 곳을 찾아 나섰다.
룰루랄라~ 발걸음도 가볍게~~
한시간 남짓 지난 후.. 그들은 시원하게 쭉 뻗은 고속도로를 달리고 있었다.
제법 널찍한 SUB를 타고서...
목적지는 바로 지리산의 시원한 계곡!
맨날 도심에서 쿨룩거리는 택시와는 비교도 안될 정도로.. 주로 장거리로 놀러 다니는데 쓰인 SUB는 탄력을 받아 쭉쭉 잘도 달렸다.
몇 년 동안 휴가나 여행이라곤 가본 적이 없는 그가.. 이젠 섬이며 계곡이며 마구마구 누비고 다니는 상팔자가 되어버렸다.
그것도 엉겁결에 얻은 식솔들을 거느리고...
♪♬ ...굽이 또 굽이 깊은 산중에 시원한 바람 나를 반기네~ 하늘을 보며 노래 부르세~ 메아리 소리가 들려오는 계곡 속의 흐르는 물 찾아~ 그곳으로 여행을 떠나요~ ♬♪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경쾌한 음악을 들으며 한성수는 생각하였다.
비록 바닷가에서 그녀랑 알콩달콩 소라와 고동을 잡으려는 꿈은 깨졌지만.. 지리산 계곡에선 그녀와 하다못해 가재라도 잡으리라~
비록 산장의 툇마루에선 그녀랑 별을 헤다가 버벅거렸지만.. 지리산 계곡에선 하다못해 그녀의 머리칼이라도 밤새 세어보리라~
비록 꿈에서조차 그녀랑 뽀뽀도 못해봤지만..
지리산 계곡에선.. 지리산 계곡에선.. 계.곡.에.선?!
흥~ 아이 좋아라~~*^^*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