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성수 일가(?)가 지리산 계곡의 한 자연휴양림에 도착한 시간은 저녁 5시가 넘어서였다.
그곳은 한 채 한 채 아담하게 지은 통나무집이 아주 정겹게 다가오는 곳이었는데 한성수가 오는 길에 미리 전화로 예약을 해둔 터였다.
아이까지 있는데 잠잘 곳 없어 우왕좌왕하는 꼴은 영 용납이 안되는 일이었다. 안 그래도 한성수를 우습게 보는 영은인데 말이다.
밖에서 볼 때는 아담하고 정겹던 보였던 통나무집이.. 안으로 들어서니 퀴퀴한 냄새도 나고 바닥도 영 지저분한 게.. 한결 더 정겹게 느껴졌다.
"아이 더러워! 그리고 이건 무슨 냄새야?!"
퀴퀴한 냄새를 정겹게 느끼는 한성수와는 달리 영은이는 인상을 찌푸리며 차미혜를 올려다보았다.
"그러게 말이다. 좀 지저분한 것 같지?"
차미혜가 창문을 활짝 열어 제치며 대답하였다.
출입문을 열고 반대편 창문을 열자 밖의 시원한 바람이 불어 들어왔다.
"우리 같이 열심히 치우자! 깨끗이 청소하고 바람도 통하고 하면 괜찮아질 거야!"
한성수가 두 사람을 번갈아 쳐다보며.. 집안이 더러운 게.. 마치 자신의 잘못이라도 되는 양 미안해했다.
"그래요. 한성수씨가 영은이랑 방을 좀 치우세요. 그동안 저는 식사준비를 할게요."
차미혜가 얼른 어색한 분위기를 바꾸려는 듯 화제를 돌렸다.
오늘 길에 이것저것 먹을 것을 준비하였고 기본 취사도구는 통나무집에 마련되어 있었다.
"그러시죠."
"알았어, 엄마!"
한성수는 열심히 청소를 하였다. 영은이에게 자신도 뭔가 잘하는 게 있다는 걸 보여줘야 한다는 목표의식을 갖고...
"아저씨 청소 참 잘하는데요? 아까는 운전도 완전 짱이었어요."
"그렇지? 맞지?! 아저씨도 잘하는 게 있지?"
영은이의 칭찬에 한성수는 대번에 얼굴이 밝아지며 기뻐하였다.
쯧쯧.. 어른이 앤지 애가 어른인지?!
영은이의 칭찬에 더욱 힘을 얻은 한성수는 청소하는데 온 정성을 다 쏟았다.
물걸레로 창문틀까지 깨끗하게 닦았고 방바닥에 윤이 빤질빤질 나도록 문질렀다.
자신의 집안 청소도 이렇게 깨끗하게 해본 적이 없었던 그가.. 기껏해야 며칠 묵었다 갈 곳을.. 놀러 온 건지 청소하러 온 건지 분간이 안 갈 정도로 열심히 땀을 흘리며 광을 내었다.
청소가 다 마쳐갈 즈음 차미혜의 저녁식사 준비도 끝나가고 있었다.
구수한 된장찌개가 보글보글 끓고 김이 모락모락 나는 하얀 쌀밥이 한성수의 입맛을 자극하였다.
그녀의 음식솜씨는 이미 경험했던 터!
이제는 맛있게 먹어주는 일만 남은 것이다.
차미혜는 통나무집 앞마당에 놓여있는 평상 위에 식탁을 차렸는데 한성수가 왔다갔다하며 식사준비를 하는 그녀를 거들었음은 물론이었다.
기쁜 마음으로 평상을 닦고 밥그릇과 수저를 챙겼다.
반면 영은은 엄마와 한성수 사이에 그려지는 미심쩍은 그림자를 보고 따가운 눈총을 보내고 있었다.
열심히 땀 흘리고 나서 오손도손 앉아 즐겁게 먹는 밥맛은 꿀맛이었다.
게다가 그녀의 음식솜씨는 그녀의 미모나 인품에 뒤지지 않을 만큼 훌륭했으니까!
"정말 맛있다! 그지 영은아?"
"난 그지 아닌데... 그지~ 아저씨?"
"....."
한성수는 커다랗게 상추쌈을 싸서 입안 가득히 우물우물 씹으며 차미혜를 바라보았다.
그녀는 조용히 오물오물 음식을 씹고 있었다.
"미혜씨는 음식솜씨가 정말 좋네요. 저번부터 익히 알고는 있었지만..."
"과찬이세요! 그래도 칭찬을 들으니 기분이 좋네요."
"그 미모에 그 인품에 이정도 요리실력이면 어디에 내놔도 손색이 없겠어요."
"아이 왜 그러세요? 부끄럽게..."
"아저씨! 밥 먹을 땐 좀 조용히 하세요. 아저씨 입에서 밥풀이 튀잖아요!"
밥풀 두어 개가 튀어서 평상에 떨어지는걸 보고 영은이가 인상을 찡그렸다.
영은이는 아무래도 한성수의 일거수 일투족이 다 못마땅한 모양이었다.
한성수는 그런 영은이를 슬쩍 째려보았다가 눈길이 마주치자 황급히 미소로 바꾸었다.
점수는 못 딸망정 영은이의 감정을 상하게 해서는 좋을 게 없었다.
다만 속으로.. '조그만 게 벌써부터 잔소리만 늘어서 큰일이군!' 하고 생각했다.
그런 한성수와 영은이의 미묘한 신경전을 차미혜는 빙그레 미소를 지으며 쳐다보고 있었다.
즐거운 식사시간은 그렇게 끝나고 차미혜가 후식으로 과일을 깎는 동안 한성수는 커피를 끓여 가지고 왔다. 커피라고 해야 커피믹스에 끓는 물만 부어서 저은 것이지만...
영은이는 과일을 맛있게 먹고 차미혜는 커피를 맛있게 마셨다. 한성수는 그런 모녀의 얼굴을 번갈아 쳐다보며 쩝쩝 입맛을 다셨다.
그녀는 커피 끓이는 솜씨가 좋다고 칭찬까지 했다.
하기야 뭐 물의 배합비율이랄까 스푼으로 커피를 젓는 회전 방향과 속도 그리고 젓는 횟수에도 커피의 맛이 다르다고 하니까!
한성수는 불현듯 바닷가에서 젊은 친구들이 소라와 고동을 잡던게 생각나서 영은에게 물었다.
"영은아, 우리 개울로 가재 잡으러 갈래?"
"가재요? 게가 아니구요?!"
"응! 가재! 게는 바다에 살고 개울에는 가재가 있단다! 영은이는 민물가재 본적이 있니?"
"아뇨~! 그런데 그거 잡아서 삶아먹으면 맛있어요?"
"삶아먹어?! 글쎄... 먹어보지는 않았는데..."
"왜요? 못 먹는 건가요?"
"...글쎄... 사람들이 먹는 걸 본적이 없어서..."
"그러면 먹지도 못하는 걸 힘들게 왜 잡아요? 가재만 불쌍하게?"
"....."
한성수는 할말을 잃었다. 조그만 영은이하고 붙으면 늘 KO패 당하는 한성수!
옆에서 그들을 지켜보던 차미혜가 빙그레 웃으며 말하였다.
"영은아, 아저씨랑 개울에 가재 잡으러 가자!
민물가재가 어떻게 생겼는지 보고싶지 않니?
엄마가 생각하기에는 재밌겠는걸?!"
"그래? 그럼 같이 가!"
그들은 통나무집으로 들어가 단단하게 무장을 하고 나섰다.
반팔과 반바지 차림에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팔다리가 모기의 집중공격 대상이 되는걸 피하기 위해서 모기약을 충분히 바르고, 개울에서의 원활한 활동을 위해서 슬리퍼를 신고, 한성수는 랜턴을 차미혜는 그릇을 챙겨들고 집을 나섰다.
어두운 밤! 사방은 시커멓고 그들을 인도하는 건 랜턴 하나!
그리고 나무사이로 언뜻언뜻 보이는 하늘에 뜬 달님!
한성수는 오솔길을 앞장서서 걸으며 랜턴을 밝혀 모녀가 가는 길을 세심하게 살폈다.
찌르륵 찌르륵~ 울어대던 풀벌레들이 낮선 인기척에 울음을 뚝 그쳤고.. 깨굴깨굴~ 울어대던 깨구락지들도 울음소리를 뚝 그쳤다.
"산골짜기 깨구락지는 깨굴깨굴 울고요~ 계곡에는 개고락지가 개골개골 운대요~"
한성수가 흥얼거렸다.
한성수의 영도아래 그들은 드디어 사냥터인 개울에 무사히 도착하였다.
사냥감은 민물가재! 사냥도구는 맨손!
이제부터 한성수의 바램이었던.. 비록 바닷가에서 그녀랑 알콩달콩 소라와 고동을 잡으려는 꿈은 깨졌지만.. 지리산 계곡에선 그녀와 하다못해 가재라도 잡으리라던 꿈이 실현되는 순간이었다.
"와~ 가재다! 영은아 여길 봐!"
개울의 조그만 돌덩어리들을 들추어가던 한성수가 바로 뒤에 있는 영은이를 불렀다.
"와~ 가재가 이렇게 생겼구나?!"
랜턴의 불빛을 받아 꼼짝 못하고 엎드려있는 가재 두 마리를 냅다 달려들어 한 손에 한 마리씩 집어들고 영은이는 신기한 듯 바라보았다.
그런 영은이의 전광석화 같은 동작에 한성수는 입을 딱 벌리고 신기한 듯 바라보았다.
무슨 조그만 여자애가 저렇게도 겁이 없담?!
보통 도시의 애들이라면 커다란 집게발까지 달린 가재가 무섭기도 하련만 바닷가에서 커서인지 영은이는 첨보는 가재임에도 불구하고 능수능란하게 다루고 있었다.
오히려 영은이의 손에 잡힌 가재가 두려움에 다리를 바들바들 떨고 있었다.
하기야 사람한테야 장난이지만 가재한테야 생명이 걸린 위기의 순간이 아니던가!
하루종일 피서객들의 눈을 피해 요리조리 숨어 다니다가 이제야 암수 한 쌍이 돌덩이 밑에서 달콤한 휴식을 취하려나 했는데.. 믿고 의지했던 돌덩이가 들춰지고 허공으로 몸이 쑥 솟구치게 되었으니 얼마나 황당하고 당황스러운 일이었겠는가?!
게다가 자기들을 보고 깔깔거리며 웃어대는 사람들의 놀림감이 되고 말았으니 참 기구한 팔자인 셈이었다.
간단히 두 마리의 사냥감을 포획한 한성수는 의기양양해서 계속 수색작업을 폈고.. 영은이는 한 손에 한 마리씩 가재를 잡고 그 뒤를 따랐고.. 차미혜는 빈 그릇을 손에 들고 그 뒤를 따랐다.
그곳이 가재들의 집단 서식처였는지 어땠는지는 모르겠지만 들춰보는 크고 작은 돌맹이 서너 개마다 한두 마리씩 가재들이 모습을 나타내었다.
그놈들은 한결같이 갑작스레 나타난 이방인에 겁먹은 듯 움찔움찔 뒷걸음질을 쳤다. 하지만 잽싼 영은이의 손놀림을 벗어날 수는 없었다.
주워담고.. 주워담고...
그리 오래지 않은 시간에 차미혜가 들고있던 빈 그릇은 가재들로 넘쳐나게 되었다.
민물가재가 바닷가재처럼 속살이 많다면.. 가재껍질에도 키토산이 잔뜩 들어있다면.. 가재가 정력에 끝내주는 효과라도 있다면.. 얼마나 좋았으랴?!
그는 초등학교시절 자연시간에 민물가재가 '폐디스토마의 중간숙주'라고 배웠던 기억이 불현듯 떠올랐다.
"중간숙주라?! 그렇다면 사람이 날것으로 먹으면 폐디스토마에 감염된다는 얘기고.. 그렇다면 사람들이 먹었다는 얘기가 아닌가?!"
한성수는 꼼지락거리는 가재가 마치 대하처럼도 보여.. "저 넘을 구워먹으면 제법 맛이 나겠는데!" 하는 생각에 입맛을 쩝쩝 다셨다.
"아야~!"
한성수가 멍하고 있는 사이 랜턴 불빛도 없는 깜깜한 곳에서 헤매던 영은이가 그만 발을 헛디뎌 물속에서 엉덩방아를 찧고 말았다.
"어디 안 다쳤니? 괜찮아?!"
차미혜가 영은이를 일으켜 세우며 다친 곳이 없나 살펴보고 있었다.
"아니, 괜찮아~"
하지만 영은이는 옷이 흠뻑 젖고 말았다.
"한성수씨! 이제 그만 돌아가야겠어요!"
"그럴까요? 그나저나 영은이 옷이 다 젖어서 어떻게 하지요?"
"그러게 말예요. 추울텐데..."
"영은아! 아저씨한테 업힐래? 그러면 한결 나을텐데..."
"그래요. 좋아요!"
"자, 그럼 얼른 업혀라!"
영은이는 비록 짧은 시간이었지만 가재를 잡으며 친해진 덕분인지 아님 피곤해서인지 쉽게 한성수에게 업혔다.
"끙차~ 이거 영은이가 생각보단 무거운걸?!"
"히히~"
한성수는 영은이를 업고 차미혜는 랜턴을 밝히고.. 그들은 개울을 나와 오솔길을 따라 내려갔다.
밤하늘의 달님이 은은한 달빛으로 그들의 앞길을 밝혀주고 있었고.. 청명하고 신선한 숲속의 향기가 그들을 상큼하게 감싸주고 있었다.
그렇게 걸어가는 한성수의 등에서는 김이 모락모락 피어올랐고.. 등에 업힌 영은이는 따스한 체온을 느끼며 어느새 새끈새끈 잠들어 있었다.
두 팔을 한성수의 겨드랑이에 끼고 옷깃을 잡은 손에 힘을 꼭 준 채.....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