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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은호 Oct 24. 2022

오늘은 푹 쉬려고 했는데...



요즘 내 체력을 오버하여 좀 무리를 했더니 몸이 천근만근 많이 무거워진 느낌이었다.


그래서 오늘만큼꼼짝도 하지 말고 집에서 푹 쉬어야지.. 단단히 결심을 하고 안마의자에 푹 파묻혀 꼬박꼬박 졸고 있는데 핸드폰 벨이 울리는 것이었다.

뭐 또 광고 전화나 여론조사 전화겠지 하고 무시하려는데.. 아내가 전화 안 받는다고 시끄럽다고 성화다.


"에이..."

할 수 없이 안마의자에서 내려와 드폰을 확인해보니 잘 아는 형님 전화였다.

"네~ 형님.. 접니다~!"

"어.. 오늘 뭐 하는고? 별일 없으면 가볍게 바람이나 쐬러 가지?"

"..어... 그게..."

"왜? 일이 있는가..?"

"아.. 아닙니다. 가.. 가시죠!"


올해 나이 70 된 형님한테 이제 60 된 내가 몸이 무거워서 못 가겠다 하는 것은 영 아닌 거고.. 또 사실상 거절하기도 힘든 관계라.. 하루 쉬겠다는 결심은 불과 채 30분도 안되어 그렇게 무참히 깨지고 말았다.


"지난번에 자네가 몰운대에 가본 지 오래됐다고 하지 않았나? 거기 한번 가보세!"

"네.. 그러시죠!"

"그럼 10시에 전철역에서 만나세~!"

"네.. 알겠습니다. 이따 뵙겠습니다."


나는 서둘러 원두커피를 내려서 보온병에 담고.. 사과와 단감을 깎아서 식초물에 살짝 담갔다가 꺼내 락앤락 통에 담고(이렇게 하면 소독도 되고 색이 변하는 걸 방지할 수 있음).. 지난번에 만들어 두었던 모닝빵도 챙겨서 물과 함께 등산가방에 차곡차곡 넣었다.

그리고 대충 씻고 나와 잽싸게 옷을 챙겨 입고 집을 나섰다.




우리는 전철로 거의 한 시간이나 걸려 부산의 서쪽 낙동강 하구에 위치한 다대포해수욕장 역에 도착하였다.


'몰운대(沒雲臺)'는 다대포해수욕장 왼쪽에 자리 잡고 있는 해안가 바위 언덕으로.. 해운대, 태종대와 더불어 부산의 3대(三臺)로 불리는 명소이다.

원래는 섬이었다고 하는데 오랜 세월 퇴적물이 쌓여 육지와 연결되었고.. 늘 구름과 안개가 끼어 앞이 잘 보이지 않는다고 하여 '몰운'라는 이름을 얻었다고 한다.


오랜만에 찾은 다대포해수욕장은 해변이 잘 정비되고 공원도 잘 가꾸어져 있어서 주민들이 여유로운 휴식을 즐길 수 있는 쾌적한 공간으로 거듭나 있었다.



우리는 가벼운 마음으로.. 그리고 난 무거운 몸을 끌고.. 해변가 산책로를 걸어 아담한 바위에 도착하였고.. 거기서 가지고 온 커피를 마시며 시원하게 펼쳐진 바다의 풍광을 감상하였다.




잠시 휴식을 취한 우리는 그곳을 돌아 나와 옆에 위치한 몰운대 공원으로 향했다.


몰운대 공원은 원래 사유지인데 시민들의 휴식을 위해 개방하였다고 하니 그 소유자의 통 큰 베풂의 마음씨에 감사하면서.. 먼저 왼쪽 길로 접어들어 화순대라고 하는 곳으로 향했다.



화순대를 돌아 나와 자갈마당을 거쳐 전망대로 향했다. 몸은 피곤하였지만 전망대에서 바라보는 끝없이 펼쳐진 푸른 바다는 마음을 한결 시원하게 해 주었고.. 가을의 정점에서 해안가의 풍광을 맘껏 즐길 수가 있었다.




전망대에서 바다 풍경을 한참 즐기시던 형님이 왼쪽으로 멀리 보이는 육지를 보며 말씀하셨다.
"저기 왼쪽에 보이는 곳이 어딘고?"

"제일 뒤쪽 어둡게 보이는 곳이 태종대 같은데요..!"

내가 어렴풋한 짐작으로 대답을 하였다.

"그럼 그 앞쪽에 송도가 있겠네~?"

"그렇겠지요..?"

"그럼.. 태종대는 멀어서 안 되겠고 우리 송도에나 가보세~!"

"..예?! 송도엘요?? 거길 지금 가자구요..?"

"아니.. 왜 그렇게 놀라나~?!"

"휴-! 아.. 아닙니다..."--;




몰운대 공원에 옛날 임진왜란 때 왜구와의 해전을 지휘했던 다대진 동헌이 위치해 있다는 사실을 이번에 알았다.




마침 다대포해수욕장에서 송도로 가는 시내버스가 있었다.

우리는 그 버스를 타고 거의 한 시간 만에.. 가는 내내 난 꼬박꼬박 졸았고.. 송도해수욕장에 도착하였다.


송도해수욕장은 내가 대학교에 다니던 시절 과 단합회식 등으로 가끔 가던 곳이었는데.. 세월이 세월이니만큼 엄청난 변화가 있었다.


우선은 바닷가 바로 옆에 초고층 아파트가 들어서 있었고 구름다리며 해안가 산책로 등이 잘 갖추어져 있었는데.. 아쉽게도 지난번 태풍 때 피해를 입어 곳곳에 출입금지 팻말이 세워져 있었다.

한편 2017년부터 새롭게 해상 케이블카가 운행되고 있어서.. 부산 사람들은 물론 외지인과 외국인들도 많이 찾는 관광명소가 되어 있었다.



태풍으로 바닥 곳곳이 훼손되어 눈앞에 두고도 올라가지 못하는 구름다리를 아쉬워하면서.. 머리 위로 슝슝- 지나가는 케이블카를 쳐다보던 형님이 말씀하셨다.

"저 케이블카를 타면 주변 경치가 훨씬 잘 보이겠는데? 우리 케이블카 까?! "

"예? 형님이랑 저랑 둘이서 케이블카를 타자구요? 저건 연인들이 타는 건데요?!"

"뭐 어때~! 자 가자구~!!"

"..예.. 알.. 알겠습니다." --;


그렇게 둘이.. 형님은 경로우대 2,000원 요금할인까지 받고서.. 연인끼리 탄다는 케이블카를 늙은 남자 둘이서 탔다.ㅎ


그날따라 바람도 많이 불고 케이블카 운행속도도 빠른 편이라서 그런지 많이 흔들렸다.

늙은 남자 둘이서 탔지만 어쨌든 허공에 높이 올라가니 주변 풍경도 잘 보이고 기분은 좋았다.^^




반대편 정거장에 도착하여 케이블카에서 내리니.. 안내요원이 우리더러 포토존에서 사진을 찍으라고 한다.


"뭐.. 뭐시라?! "oO;

늙은 남자 둘이서  사진을 찍는단 말이고?

뭐.. 연인들처럼 어깨라도 감싸고 찍을까.. 아니면 개구쟁이들처럼 양손에 V자라도 그리고 찍을까~!


형님은 안내요원의 주문에 어찌할까 엉거주춤 서 계셨고.. 나는 보면 모르겠냐는 듯 안내요원을 한번 째려주었다.--+


안내요원은 우리 둘의 표정과 차림새를 살피더니.. "..아.. 아님 그.. 그냥 가십시오..."하고 꼬리를 내렸고.. 우리무사히 포토존을 패스해 밖으로 나올 수 있었다.


하마터면 늙은 남자 둘이 연인들이 타는 케이블카도 모자라 추억의 기념사진까지 남길 뻔하였다. 헐~




오늘은 꼼짝 않고 푹 쉬려고 했는데.. 얼떨결에 다대포해수욕장과 송도해수욕장까지 다녀왔다.

정말 사람 일은 한치 앞도 알 수가 없다.


집에 돌아오니 다리가 너무 아파.. 따끈한 물을 받아 한참 동안 족욕을 했다. 그러고 나서 샤워를 하고 나니 그나마 좀 나아지는 것 같았다.

그러나 여전히 발이 화끈거린다.


오늘 하루 1만6천보.. 10.6km를 걸었다. 헐~!




내일은 꼭 쉬어야지.. 다짐해 본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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