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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은호 Dec 16. 2022

오너의 친화력

이야기로 엮는 리더십



H기업은 자동차 부품을 제조하는 중견기업이다.

엔진과 관련된 부품을 제조하여 국내외 완성차 업체에 납품하는 1차 더인데 그 기술력이 제법 탄탄하여 비록 큰 수익을 올리지는 못하지만 건실한 회사를 유지하고 있다.


다른 업계도 사정이 비슷하겠지만 자동차 업계도 마진율이 상당히 박한 편이다. 

우선 경쟁입찰을 통하여 납품업체 선정 및 납품가 결정을 하기 때문에 높은 가격을 써내기가 힘들고, 납품이 시작되고 나면 해마다 일정 비율의.. 명목상으로는 원가절감을 통한 단가조정(CR, Cost Reduction) 이라 하는.. 단가인하까지 감수해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해마다 임금인상, 물가상승 등 비용 부담은 커지는데 반해 납품단가는 떨어지는 이중고를 치러야 한다.

비교적 단가가 좋은 신차종 수주를 계속 추진해서 수익성 악화를 일정 부분 만회하기는 하지만 원가절감과 수익성 제고는 떼려야 뗄 수 없는 과제여서 일 년 내내 허리띠를 바짝 졸라매고 기업을 운영해야 하는 것이다.


완성차 업체에서는 신모델 설계 시부터 부품업체를 참여시켜 공동개발을 하는데, 부품업체에서는 각 단계마다 시제품을 만들어 납품하고 테스트를 거쳐 보완하는 과정을 여러 번 거치게 된다.

따라서 부품업체의 기술력도 상당한 수준이 되어야 하고, 경우에 따라 완성차 업체에서 선진기술, 신기술 적용을 요구하는 경우도 많아 기술개발에 많은 노력과 투자를 해나가야 1차 더업체로서의 위상과 경쟁력을 유지할 수가 있다.




H기업의 오너 겸 회장은 자동차 업계에서 수십 년을 버텨온 베테랑이었다.

성격도 굉장히 활달하고 적극적이어서 여러 분야의 사람들과 폭넓게 교류하였고 특히 완성차 업체 쪽 인사들과도 친분을 유지하는데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1차 더업체를 운영하다 보면 완성차 업체에서 많은 점검이 나오기 마련이었다.

조립산업이란 게 가격도 중요하지만 부품의 품질이 담보되지 않으면 사업 자체가 불가능한 경우이므로 완성차 업체의 부품업체에 대한 품질지도가 아주 엄격하였다.

해마다 품질, 기술, 납기 등 각 분야에 대해 심사를 하여 점수를 매겼고 평가결과를 토대로 부품업체에 대한 혜택을 달리하였다.


H기업의 회장은 완성차 업체에서 사람이 나오면 그 사람의 직급에 관계없이 꼭 직접 응대를 하였다. 가능하면 밥 한 끼라도 같이 먹으려고 하였고 사정이 여의치 않으면 차 한잔이라도 함께 하며 짧게라도 만남의 시간가졌다. 

사실 완성차 업체에서 나왔다고 해도 1차 벤더업체의 회장을 매번 만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어서, 사람들은 회장의 성의에 좋은 인상을 받았고 한결 부드러워진 분위기에서 업무가 진행될 수 있었다.


회장은 사람을 보는 눈이 남달랐는데 사람의 단점보다는 장점을 찾아내기를 즐겼고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완성차 업체에서 나온 직원들한테도 마찬가지여서 좋은 점을 찾아내면 메모해 두었다가 나중에 그 직원의 상사를 만나서 이야기를 해주었다.

그냥 겉치레로 '누가 좋더라' 식이 아니고 '지난번에 점검을 나왔을 때 이런 아이디어를 알려주어서 많은 도움이 되었다' 또는 '타 회사의 비슷한 사례를 알려주어 불량을 줄이는데 상당한 효과가 있었다' 등 구체적인 사례 들어가며 상대방으로 하여금 믿음이 가게 하였다.

비록 납품업체지만 기업의 회장이 자신의 부하직원 칭찬을 하는데 기분이 좋지 않을 사람은 없었다.


그러다 보니 완성차 업체 사람들은 그 회장은 물론 H기업도 좋게 인식하게 되었고 하나라도 더 H기업을 도와주려는 우호적인 우군들이 많이 생겨나게 되었다.




비슷한 부품을 납품하는 P기업의 사장은 성향이 좀 달랐다.

그는 오직 실력만이 살길이라고 직원들을 닦달하였고 완성차 업체와의 관계도 '갑을 간의 거래관계' 딱 그거였다.

완성차 업체에서 점검을 나와 지적을 받거나 심사 점수가 좋지 못하면 '그런 것도 제대로 준비하지 못하고 뭐했냐'며 경을 치기 일쑤였고, 사람의 장점보다는 단점을 크게 보는 사람이었다.


직원들은 사사건건 까다롭게 따지는 사장을 두려워하게 되었고 사장 앞에선 몸과 입이 얼어붙어 더 더듬거렸다.

사실 회사에서 직원들에 대한 교육훈련 투자를 충분히 하는 것도 아니고, 공정개선이나 기술개발에 대한 투자도 부족한 상황에서 '네가 알아서 잘하라'식이었으니 직원들의 사기는 떨어지고 회사에 대한 불평불만은 늘어만 갔다.

그러다 보니 문제가 터져도 근본적으로 해결하기보다는 사장의 눈에만 안 띄게 땜질식의 처방에만 급급하게 되었다.


이러한 회사 사정은 완성차 업체에서 점검을 나온 사람들에게도 고스란히 노출되어 결국 좋은 점수를 받지 못하였고, 사장은 목에 핏대를 세우고 직원들을 더 닦달하곤 하였다.


P기업은 부품업체 평가에서 최하위 등급을 받았고 다음 해 오더 수주를 기대하기 힘든 코너에 몰리고 말았다.




H기업의 회장은 스스로가 영업 최일선에 선 세일즈맨이었던 반면, P기업의 사장은 회초리를 든 훈육주임이었다.



* 직위가 당신에게 명령할 권한을 주지는 않는다. 단지 다른 사람들이 모욕을 느끼지 않으면서 당신의 지시를 받을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하는 의무를 부과할 뿐이다.
(존 어데어)






* 이 글의 내용은 특정회사나 특정인물과 관련이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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